이번 클로저스 성우 대란과 이어진 ㄹㅈ코믹스 불매 운동이 인터넷과 서브컬쳐계에 큰 이슈가 되고 있죠.
거기서 이번 일을 '페미니즘에 어긋난다.'라고 곡해하거나 아예 매운갈비를 지지하는 분들 중에
그 유명한 ㄷㄴ 평론가나 여러 문학가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 트윗을 몇 번 봤는데 이번에 개봉한 영화 서프러제트에 대한 트윗과 리트윗이 많더군요.
특히 예고편에서 "폭력이 남자들이 들어주는 유일한 말이니까요"라는 말을 가지고
ㅁㄱ의 행위를 영화 속 여권참정론자들의 시위와 동일시하며 행위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우선 저는 페미나치를 극혐하며 남녀평등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남혐 못지않게 여혐도 이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폐기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육아 지원, 평등한 처우 확립에도 찬성합니다.
그렇지만 ㅁㄱㄹㅇ와 그 파생형들에게는 절대 찬성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저는 예전부터 서양 근-현대사에 흥미를 느끼고 나름대로 그 방면의 지식을
머리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이 글은 그 지식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기에 부족할 수도 있고 잘못
안 게 있을 수도 있으므로 잘못된 점 지적과 추가의견은 환영입니다.>
우선 여성의 참정권이 확립되게된 계기는 영화에서 나오는 여성들의 시위와 행동만으로 이루어진게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여성운동가들의 행동이나 사상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행동이 있었기에 당시 시궁창이었던 여성의 지위가 좀 더 올라갈 수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이들의 행동만으로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었거든요. 그건 바로...
그 유명한 1차 세계대전이 터졌기 때문이지요.
신무기의 등장으로 남성 군인들이 대량살상당하자 당연히 후방에서는 일손이 딸리게 됩니다.
남성들은 군인으로 나가야하는데 대량소비의 현대전에서 후방의 생산작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탄약과 식량이 모자라게 되고 결국 그러면 전쟁에서 질 수 밖에 없지요.
결국 각 국의 남성 수뇌부들은 총력전 태세에 들어가야 했고 여기에 잉여노동력인 여성이 빠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렇게 각 사회 분야에 여성들이 진출할 길이 열리게 됩니다. 공장 노동자는 물론이고 소방관이나 경찰관, 의사, 전화 교환수(그전까지는 모두 남성이었습니다), 심지어 군의 후방업무까지 맡게 되었죠. 그 전까지 몇 년동안 여성해방운동가들이 주장해도 씨알이 먹힐까 말까 할 것을 전쟁이 단번에 해결해 버린것입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였죠. 위에서 누르던 남성들은 기관총탄과 독가스에 죽어가고 눌리던 여성들은 도리어 새로운 기회를 얻었으니 새옹지마라고 해야 할까요.
(참고로 영화의 주인공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활약하던 시기는 1903년. 1차대전이 벌어진 시기는 1914년입니다. 거의 10년 넘게 차이가 나죠.)
물론 그 뒤에 전쟁이 끝나고 남성들이 돌아오면서 다시 일자리를 찾으려 하면서 남아있던 여성들과의 갈등이 생기기도 했지만, 시대의 흐름은 이미 명백하게 변했으며 아무리 완고한 남성들이라도 여성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인식을 변화시켜나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남녀평등의 길은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왔죠.
조금 장황하게 얘기했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바는 여성들만의 힘만으로 그들의 승리를 쟁취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여성들이 사회적 진출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한 남성 수뇌부들, 여성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응원한 소수의 남성들,
그리고 어찌되었건 여성들이 '설치는 것(그들의 시각에서)을 용인한' 완고한 남성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런 요소들이 없이 여성해방론자들의 시위와 폭력행위(다른 시각에서 보면)만 계속 되었다면 과연 여성의 지위향상은
가능했을까 의문이 듭니다.
물론 "약자가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는 강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니 너무 비굴한 거 아니냐"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저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렇지만 현실을 보면 좋든싫든 약자들만의 힘으로는 그 자신의 처지나 사회를 변혁시킬수는 없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에도 혁명 이론을 지지한 자유주의자 귀족들이 도움을 주었으며(물론 나중에 동료들의 손에 처형당하지만)
마틴 루터킹의 운동에도 지지를 표현한 젊은 백인학생들과 백인 지식인들의 힘이 컸고
간디의 비폭력 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지지를 표하는 영국인들도 많았습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6월 항쟁에서 큰 힘을 보태준 중산층들과 일부 상류층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못했던 운동들은 모두 몰락하거나 그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혁명, 중세 시기 아랍인들을 향한 흑인 노예들의 반란, 만적의 난, 유럽 농민 반란, 세포이 항쟁, 태평천국의 난 등등등
강자들 중 일부라도 이해시키지 못하거나 연대하지 못한 운동들의 말로는 다 비참했습니다.
강자에게 굽신거린다거나 운동의 기조가 퇴색된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태도가 필요한 이유는 모두(혹은 다수)가 공감하는 사상과 문제의식만이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쪽만 지지하는 운동은 결국 실패하거나 성공하더라도 나중에 극단으로 변질하여 몰락하게 되죠.
이러한 점에 대해서 요즘 소위 말하는 '진보진영'에서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트위터에서 본 몇몇 글을 가지고 삘받아 이런 보잘것 없는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지적은 환영이고요. 모두 좋은 일만 있으시기 바랍니다.
-P.S 저 영화 트윗한 '몇몇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은 말.
"지금은 21세기인데요."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드립 진짜 극혐
서프러제트 운동은 혐오와 폭력으로 망한 대표적인 예죠 블랙 팬서ㅜ당처럼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공감합니다. 저도 진정한 남녀평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이해와 설득, 타협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내용처럼 레디컬 페미니즘이 필요할 정도의 억압을 받던 시기가 있었죠. 하지만 글쓴 분 말씀처럼 지금은 21세기입니다. 대화와 타협을 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