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시간을 거슬러
https://universe.leagueoflegends.com/ko_KR/story/out-of-time/
*펄스 건 5부작 중 2편(1편: https://bbs.ruliweb.com/family/4526/board/109995/read/9780072)
방패
'저 녀석은 날 보지 못했어. 아직까진.
사실 은신은 내 특기가 아니야. 난 일단 총부터 쏘고 보는 성격이거든. 그런데 지금 내 펄스 건 코어 상태를 생각하면… 뭐, 상황이 바뀌면 전략도 바뀌어야 하는 법이지.'
녀석은...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옆에 방패를 세워 두고, 창은 바닥에 꽂은 채로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재미없는 놈.
집채만 한 각다귀가 존재하던 다른 차원에서 심히 불쾌한 경험을 한 뒤로, 펄은 손상된 코어에서 에너지를 뽑아 비교적 가까운 펄스 건 신호에 연결했다. 나로서는 다행이었지만, 코어를 빼앗길 운명에 놓인 그 경관은... 뭐, 재수가 없는 거지.
새 걸 훔치면, 아니 빌리면 되는데 고칠 이유가 없잖아?
얄궂게도 이 경관은 내가 잘 알았다. 판테온이라고, 멍청한 데다 예민하기까지 한 녀석이었다. 물론 비극적인 과거 때문이겠지만, 난 관심 없었다.
녀석은 무너진 건물 잔해 위에 서 있었다. 어떤 건물이었는지, 여기가 어떤 차원인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주변 환경은 엉망이었다. 건물들은 무너지기 직전이었고, 초목은 완전히 훼손돼 있었다. 기계와 화학적 재앙이 휩쓸고 간 흔적이 사방에 가득했다.
난 녀석의 뒤로 순간 이동해 캐논을 뒤통수에 살며시 갖다 대며 최대한 무섭게 말했다. "움직이지 마."
판테온은 얼어붙었다. 뒤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내 정체를 파악하려는 듯 녀석의 바이저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즈리얼." 판테온이 으르렁거렸다.
"판테온, 별일 없지?" 난 웃으며 말했다. 잠깐, 위협해야 할 쪽은 나인데?
"그동안 네놈을 얼마나 찾았는지 몰라. 그런데 이렇게 몸소 행차하다니." 차분히 말했지만, 목소리에서는 긴장이 느껴졌다. 녀석은 화를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 내가 손만 까딱하면 조각 같은 얼굴이 날아가리라는 걸 알았으니까.
"판테온, 지난번에 다 했던 얘기잖아. 오늘은 이 시궁창에서 널 상대할 시간이 없거든? 그러니까—"
"네놈이 이렇게 만들었어." 너무도 단호하게 말하는 탓에,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닐걸?"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었다. 대꾸할 필요도 없었다. 조금 전 만났던 시공경관에게 내가 썼던 바로 그 수법이다.
하지만 난 참을 수 없었다.
"차원의 경계를 부수며 장난 좀 쳤을 뿐이야."
"너 같은 망나니들 때문에 이 지경이 됐다." 판테온은 황폐하게 변해 버린 주변 환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녀석의 시선을 따라갔다. "무분별한 도약은 역설을 만들어내고, 역설은 시공간에 이상 현상을 일으켜. 그럼 시공간 침략자들이 쳐들어오지."
등골이 오싹해졌다. '시공간 침략자들이 여기에?'
판테온은 몸을 일으켰다. 녀석의 머리를 겨눈 캐논이 윙윙거렸지만,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여긴 내 고향이었어. 그런데 그놈들이 이렇게 만들었지."
난 모험을 좋아했고 무모한 짓도 많이 했지만, 지킬 건 지켰다. 그런데 역설을 만들어냈다고? 뭐, 아니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판테온." 난 순간적으로 캐논을 내리며 말했다.
끔찍한 실수였다.
판테온이 달려들었다. 캐논을 발사하자 에너지 방어막이 전개된 방패로 막더니, 내 얼굴을 강타했다. 코뼈가 '또' 부러지는 느낌이 들면서 머리가 핑 돌았다. 녀석은 왼손을 뻗어 창을 불러들였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순간 이동해 공격을 피했다.
"죗값을 치르게 해 주지!"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게다가 지금 상태로는 판테온에게 상대가 안 됐다. 나는 수트의 마지막 힘을 짜내어 언덕 위로 순간 이동해 날아오는 창을 피했다.
시간 도약을 위해 캐논을 작동하자 수트가 요동쳤다. 펄은 손상된 코어에서 동력을 끌어내려고 했다. "시간 도약 기능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안전 프로토콜을—"
판테온의 창이 또다시 날아들었다. 몸을 숙여 피하자 뒤에 있던 석상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펄, 안전 프로토콜 중단해!" 펄의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캐논을 발사했다. 차원문의 경계를 넘으면서 한숨 돌린 것도 잠시, 차원 사이에 존재하는 거친 에테르가 몸을 강타했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없는 시공간으로 추락했다.
스킨 세계관들 사이에도 관계 정립해주면 좋겠네. 뭐가 가장 미래 배경인지 궁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