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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로 들어간거 모르는 사람 많네...
정종 양자로 들어가서 세자된 다음에 왕 됐음 ㅋㅋ
부자상속 형식 맞추려는 거였구만
양자로 입적해서 왕위를 이었지 아마?
왕자의난 명분이 적장자승계인데 이방원이 세제 신분으로 왕위에 오르면 스스로 그 명분을 깨는거라서..
1400년(정종 2) 초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후, 정종과 왕비 정안왕후와의 사이에 아들이 없는 상황에서 하륜(河崙) 등이 내세운 ‘적장자가 후사가 없으면 나머지 아들로, 나머지 아들이 후사가 없으면 서자가 계승한다.’는 승계 원칙에 따라 나머지 아들 중의 하나인 정안군 이방원이 세자로 책봉되었다. 제1, 2차 왕자의 난과 정종의 즉위 과정을 살펴볼 때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종은 왕위에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대의를 주창하고 개국한 공로는 정안군 이방원의 몫이 크다고 하면서 정안군 이방원을 세자로 책봉하는 데에 힘을 더했다. 세자에 책봉된 정안군은 다시 정종의 양자가 되는 형식을 취하여 1400년(정종 2) 11월 정종에게서 왕위를 이어받았다. 굳이 이러한 형식을 취한 것은 왕세제가 아니라 왕세자로 왕위를 계승함으로써 종법정신을 표방하겠다는 뜻이었다. 정종은 동생 이방원을 아들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난 후 ‘인문공예상왕(仁文恭睿上王)’이라는 존호를 받았다.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n311300&code=kc_age_30
정통성?이 없어서 양자로 들어갔댔나
???
뭔소리임 양자입적함?
정종 양자로 들어가서 세자된 다음에 왕 됐음 ㅋㅋ
오사마 빈 라덴
1400년(정종 2) 초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후, 정종과 왕비 정안왕후와의 사이에 아들이 없는 상황에서 하륜(河崙) 등이 내세운 ‘적장자가 후사가 없으면 나머지 아들로, 나머지 아들이 후사가 없으면 서자가 계승한다.’는 승계 원칙에 따라 나머지 아들 중의 하나인 정안군 이방원이 세자로 책봉되었다. 제1, 2차 왕자의 난과 정종의 즉위 과정을 살펴볼 때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종은 왕위에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대의를 주창하고 개국한 공로는 정안군 이방원의 몫이 크다고 하면서 정안군 이방원을 세자로 책봉하는 데에 힘을 더했다. 세자에 책봉된 정안군은 다시 정종의 양자가 되는 형식을 취하여 1400년(정종 2) 11월 정종에게서 왕위를 이어받았다. 굳이 이러한 형식을 취한 것은 왕세제가 아니라 왕세자로 왕위를 계승함으로써 종법정신을 표방하겠다는 뜻이었다. 정종은 동생 이방원을 아들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난 후 ‘인문공예상왕(仁文恭睿上王)’이라는 존호를 받았다.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n311300&code=kc_age_30
평범학생
부자상속 형식 맞추려는 거였구만
실상 강탈이었고 그 덕에 세종때까지였나 묘호가 없었지
양자로 들어간거 모르는 사람 많네...
아 그렇구나 몰랐음 고마워요 양자왜건!
양자로 입적해서 왕위를 이었지 아마?
정통성?이 없어서 양자로 들어갔댔나
데엔드로
왕자의난 명분이 적장자승계인데 이방원이 세제 신분으로 왕위에 오르면 스스로 그 명분을 깨는거라서..
형 아래로 명목상 양자로 들어가서 자식이란 입장으로 승계받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개억지지. ㅋㅋㅋ
정통성보다는 태종은 자신이 진짜로 태조를 이은 후계자다 라고 공인 받고 주위에 알리고 싶어한 욕구가 더 컷던 거 같음 정종이 본처가 불임이라 본처에게서 난 적정자가 없고 첩에게서 난 서자만 있던 상황이라 태종이 왕위를 이어도 문제될 건 없었는데 굳이 세자 자리로 들어간 건 태종이 은연중에 신덕왕후 같은 이의 입김만 아니었으면 태조의 정식 후계자이자 세자가 되는건 나였다 하고 주위에 강조하고 싶어한 심리가 있었다고 보여짐 훗날 군주 라인을 봐도 정종은 비주류 사당에 묘셔져있고 주류 사당에 묘셔진 창업군주 라인이 태조 - 태종 라인임 이것만 봐도 태종 이방원이 목표로 하고 주위에 알리고 싶어한 메세지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가 있음
엥 그럼 정종이 태종 아빠면 태종 엄마는 어떻게 되는거임
와 히토미식 개족보!
아니 시1발....
법적으로는 그렇긴 한데 쟤네가 정말 그런 디테일까지 챙긴걸까?
일부러 "여기서도 부자지간 싸움"이라고 적은 거 보면 알고 적은 것 같음 부자지간 싸움이 또 있다는 걸 강조하려고 일부러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이 아니다와 같음 혈통 아버지는 맞는데 법적으로는 다름
저번 태종 이방원에도 나왔는데, 잠깐 지나간거라 알려지지 않았나?
대충 엘리스와 파츄리의 관계
그럼 형수가 새마망이 되는거야?
엄마면 밤에 무서울 때 안고 잘 수 있겠네?
이방원이 세제말고 세자하겠다고 떼를써서 그만
태정태세문단세 조선왕조는 직계혈족계승 태조 정종(태조 아들) 태종(태조 아들이지만 정종 양자로 들어가 정통성 지킴) 세종(태종 아들) 문종(세종 아들) 단종(문종 아들이나 세조한테 내쳐짐) 세조(직계가 아니라 역모로 왕이된 최초의 사례) 이쯤되면 태종의 문무겸비 미친짓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치밀하게 무섭고 세조가 정말 지 할애비 쏙 닮았네.....
정종이 첩에게서 본 자식은 꽤 있는데 정작 본부인이랑은 없었지 아마?
정종 본부인은 불임이라 첩에게서 난 서자는 여럿 있었지만 적자는 없었음
ㅇㅇ. 태종 부부싸음할 때 말리면서 '난 마누라가 자식 못 봐도 그냥 사는데 넌 왜 그러냐' 라고 한 말 때문에 자식이 없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실 부인 자식이 없는 거고 서출 자식들은 15남 8녀, 총 23명을 봤음. 그것도 정식으로 인정 받은 자식들만 저 정도고 공식 인정 못받은 자식들도 더 있음.
1차 왕자의 난의 구실이 이복동생을 세자로 세워서 일어난 일이여서... 정통성을 위해서 양자로 들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