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4년 세가에 입사하여 지금까지도 세가에 몸담고 있는 '오쿠나리 요스케' 씨가 당시를 회상하면서 작성한 컬럼 시리즈입니다. *
[차세대 게임기 전쟁 개전 전야]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세가에 입사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4년.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차세대 게임기 전쟁' 이 발발한 바로 그 해이다. 그 해 연말엔 소니가 처음으로 가정용 TV 게임기에 참전하여 초대 '플레이 스테이션' 을 발매했고, 약 열흘 전엔 세가가 6번째 가정용 TV 게임기 '세가 새턴' 을 출시했다.
이외에도 마쓰시타 (파나소닉) 의 '3DO' 와 NEC 의 'PC-FX' 가 그 해에 속속 발매되고 있었다. 당시 탑이였던 '슈퍼 패미컴' 을 보유하고 있는 닌텐도에 대한 도전권을 어느 메이커 하드가 가져갈 것인다 !? 라는 것이 당시 게임 팬들의 가장 큰 화젯거리였다. 그리고 현재로선 믿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해 봄 때만 하더라도 이번 레이스에서 우승할 확률이 가장 높다고 점처지고 있던건 다름아닌 '세가' 였다.
당시 세가가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가볍게 설명하자면 1983년 닌텐도의 '패밀리 컴퓨터' 발매일과 같은 날, 세가는 'SG-1000' 라는 하드로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 진입했다. 'SG-1000' 은 사회 현상이 된 패미컴의 순풍을 타고 나름의 성공적인 사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아케이드 게임에서의 노하우를 활용한 세가는 조금씩 점유율을 확대해 나갔다. 5대째 '메가드라이브' 는 일본에서는 NEC 의 'PC 엔진' 에 이은 3번째 포지션이였지만, 북미 ·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만큼은 왕자인 닌텐도의 '슈퍼 패미콤' 과 대등히 맞설만큼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기에, 사실상 세계 랭킹 넘버 2 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시 세가의 개발 체제]
내가 세가에 입사한 그 해 봄은 메가드라이브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시리즈의 최신작 '소닉 더 헤지혹 3' 가 발매된 직후, 전세계적으로는 사상 최대의 흥행을 기록하고 있었다. 서양에서는 이 메가드라이브의 호조를 지속시켜 슈퍼 패미컴과 아웅다웅하면서 일본에서는 선행적으로 차세대 게임기 세가 새턴을 발매하여 다음 세대 시장을 확보, 일본에서도 승리를 거두어 세계를 노린다는게 당시 세가의 생각이였다.
나는 플래너로서 제 1 컨슈머 소프트 연구 개발부 (CS1 연구소) 라는 부서에 배속되었다. '컨슈머' 란 가정용을 뜻하는 것으로 당시 세가는 가정용만을 위한 개발 부서로 6개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제 1 과 2 가 차세대 게임기 세가 새턴을 담당, 3 과 4 가 메가드라이브 및 추가 파워업 유닛 '메가 CD' 와 '슈퍼 32X' 등을 담당, 그리고 제 5 가 휴대용 게임기 '게임 기어' 의 소프트 개발을 담당하고 있었다. 여기에 'RPG 제작부' 라는 인기 장르에 특화된 전문 부대도 두고 있었다.
또한 게임 센터를 위한 아케이드 게임 개발을 주로하는 부서가 7개 있으며, 특히 1993년 '버추어 파이터' 를 발표한 제 2 어뮤즈먼트 연구 개발부는 통칭 'AM2 연구소' 라는 이름으로 매우 각별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여기에 해외 자회사의 개발 부서까지 포함하면 족히 1000여명의 개발 인력을 보유하고 있던 회사로서 아마 당시 일본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개발 직원이 많은 회사 중 하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중에서도 CS1 · 2연 (부서으로 거의 융합된 상태) 이 특히 큰 부서였다. 가장 큰 프로젝트는 세가 새턴의 신작 슈팅 게임 '팬저 드라군' 으로 상시 30명 정도의 직원이 참여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메가드라이브라면 10명 정도, 게임 기어이라면 5명 정도 수준으로 제작하고 있었기에 세가 새턴은 게임의 개발 규모가 점점 커져 갔다.
세가라고 하면 'CS 및 AM 는 다른 회사처럼 교류가 없다' 등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세가 새턴의 개발 인력을 살펴보면, AM 부서 출신의 직원이 상당수였다. 세가 새턴의 고급 게임 개발을 위해 모두 이쪽으로 이동해 온 것이다. 그렇게 CS 에 소속된 수백명의 사람들이 세가 새턴의 타이틀 라인업을 개발했다.
당시 봄 시점에서 세가 새턴은 100% 성능을 낼 수 있는 기기가 없었고 30% 정도의 성능밖에 낼 수 없는 초기 개발 머신과 70% 정도의 성능을 낼 수 제작툴 밖에 없었지만, 6월 '도쿄 장난감쇼' (이 당시엔 '도쿄 게임쇼' 가 아니라 가정용 TV 게임 이벤트라고 하면 '장난감쇼' 였다) 에서의 전시를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신입 사원이였던 나의 시점에서 그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눈앞에서 만들어진 게임들이 출시될 무렵에는 세가 새턴은 일본에서 천하를 거머쥐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가지고 있었다. 당시 언급되고 있던 라이벌을 보면, 선행 발매된 파나소닉의 3DO 는 비싼 가격과 강력한 게임 타이틀의 부재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마쓰시타는 이미 탈락하는 분위기였다. 소니의 플레이 스테이션 (당시엔 'PS-X' 라고 했다) 도 아마 유사한 길을 가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
원래 소니가 최근 출시한 게임들은 잡지의 인기 랭킹에서도 하위권에서도 하위권이었다. 마지막으로 NEC 는 PC 엔진은 일본에서는 일부 계층에서 굉장히 인기가 있었지만, 그걸 계속 이어나갈 심산이였는지 적어도 'PC-FX' 에선 그들의 진심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이번엔 정말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플레이 스테이션의 충격]
그런 흐름이 단번에 바뀐 것은 그 해 5월 소니가 진행했던 발표회이후였다. '플레이 스테이션' 이라는 정식 명칭과 본체 디자인 공개와 함께 공개된 실기 영상은 업계뿐만 아니라 모든 게임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발표회에서는 실제로 개발중인 신작 게임 영상은 하나도 없었는데, 그 대신 3D 로 그려진 T-REX (티라노 사우루스) 가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데모가 공개되었는데 그 영상의 리얼함에 모두가 매료된 것이였다. 그리고 이후 발표된 굵직한 다수의 메이커가 참가한다는 소식. 이 T-REX 영상같은 대단한 퀄리티로 수많은 업체들이 자신들도 이정도 수준의 게임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란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 공룡 한마리로 소니는 게임팬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이다.
이 시대 직전까지 3D CG 라고하면 딱딱한 판 또는 선을 조합하여 만든 종이 공작같은 느낌으로 그다지 일반적인 것은 아니였다. 그 인식이 1993년에 이르러 크게 변화하게 되는데 당시 여름에 공개된 할리우드 영화 '쥬라기 공원' 에 의해서였다. 극중에 등장하는 공룡들이 실감나는 3D CG 로 그려져 있었으며, 3D CG 를 잘 활용하면 현실에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영상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일깨워준 것이다.
그리고 가을에는 아케이드용으로 남코가 텍스처 매핑 기술을 통한 뛰어난 그래픽을 선보인 레이스 게임 '릿지 레이서' 를, 세가는 인기 장르 대전 격투 게임을 3D 로 개발한 '버추어 파이터' 를 출시. 둘 다 다음해까지 큰 히트를 이뤄냈다.
그러던 중 이 플레이 스테이션의 영상이 시연된 것이였다. '릿지 레이서' 와 같은 그래픽으로 그려진 '쥬라기 공원' 에서 나온 듯한 T-REX 가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으로 걷고 있는 것이였다. 당시의 게임팬들은 "연말 플레이 스테이션을 사면 작년 영화에서 본 영상 수준으로 집에서 게임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인가 !" 라며 큰 충격을 받게 된 것이다.
사실 이 플레이 스테이션 이벤트 영상은 이미 반년전 비공개로 몇몇 팀에게 시연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것보다 훨씬 이전부터 협상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다들 3D CG 와 게임 개발의 접목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여 접촉했던 업체들로부터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 '릿지 레이서' 나 '버추어 파이터' 등이 발매되고 나서 그 분야에 대한 주목도가 크게 올라가게 된 타이밍에 이러한 이벤트를 개최하여 단숨에 플레이 스테이션으로의 참가 업체를 대폭 늘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3D CG 라는 것은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적으로도 매우 고급 기술이였으며, 반대로 말하면 게임 업계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던 남코나 세가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체는 바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그러한 기술이 아니였다. 그런데 이 플레이 스테이션이라면 그것이 가능했다. 지금 3D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미래 게임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라고 판단한 많은 게임 업체가 이 소니의 새로운 하드에 달려든 것이었다. 기이하게도 '버추어 파이터' 의 대히트가 세가의 새로운 라이벌을 낳는 결과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5월 발표회에서 발표된 타이틀 중에는 무려 남코의 '릿지 레이서' 란 타이틀도 있었다.
[다가오는 발매일 급박해진 소프트 개발 ......]
이번 경쟁의 패러다임의 변화, 세가도 물론 인지하고 있었지만, 지금 가장 인기있는 게임 "버추어 파이터" 를 보유하고 있는 세가 새턴의 우위는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개발 직원들은 지금은 어찌되었건 게임을 세가 새턴 발매 시기에 맞출 것만을 생각하며 일에 전념해야만 했다.
여담이지만, 나와 입사동기 디자이너 사카이 사토시 씨는 프로그래머와 공모하여 몰래 새턴 개발 머신에서 그 '공룡' 을 닮은 샘플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정도는 세가 새턴으로도 할 수 있다 ! 게다가 이쪽은 불도 뿜는다고 !" 라며 그가 버튼을 누르면 T-REX 가 입에서 불을 토했다. 그는 열광적인 괴수물 팬이기도 했다. 나중에 이 T-REX 는 이듬해 발매된 '월드 어드밴스드 대전략' 에서 숨겨진 캐릭터로 실제 게임에 활용되기도 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다음달 6월에 개최된 '도쿄 장난감쇼' 에서 이번에는 세가 새턴이 공개됐다. 이곳은 개발중인 게임을 실제로 접할 수있는 실기 전시이다. 핵심은 물론 그 '버추어 파이터' 였다.
입장한 팬들은 즉시 새턴으로 달려들었다. 왜냐면 그 전시가 실기 최초 공개였기 때문에 어떻게 완성되어가고 있는지 두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 '버추어 파이터' 는 2명의 캐릭터가 화면에 출력되어 다양한 기술을 구사할 수는 있었지만 정작 대전은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데이토나 USA' 는 직접 자동차를 컨트롤할 수는 없었고 지평선을 달리는 영상만 감상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실기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 '클락 워크 나이트' 이었지만, 2D 횡스크롤 액션이었기 때문에 차세대 분위기가 나진 않았다. 그래도 세가로서는 실기로 전시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참가 업체도 많이 발표되었지만, 플레이 스테이션보다는 그 수가 적었고, 제목 미정의 것이 많았다. 보름 뒤 미국에서 드디어 닌텐도가 차세대 게임기 (훗날 닌텐도 64) 을 발표했다. 그러나 발매기 내년이라고 발표되었기에 세간의 평판은 플레이 스테이션과 세가 새턴으로 양분되었다.
세가 새턴의 두번째 피로연은 3개월 후 9월 어뮤즈먼트 머신쇼에서 열렸다. 원래 아케이드 관련 전시 이벤트이지만, 가정용도 부스의 일부를 사용하여 소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버추어 파이터' 가 거의 완성 상태로 되어가고 있었고, 대전도 가능하게 되어, 발매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였다. 또한 신작으로 '팬저 드라군' 도 플레이어블로 출전했다.
그러나 이 쇼에서 화제의 중심은 아케이드 최신작 '버추어 파이터 2' 였다. 크게 진화된 2 의 존재는 라이벌은 커녕 세가 새턴조차 날려버릴 만한 기세를 뽐내고 있었다. 세가는 이날 세가 새턴으로의 '버추어 파이터 2' 의 이식도 발표한다.
발매일이 가까워질수록 세가 새턴 소프트 개발의 지연은 조금씩 현실이 되어왔다. '팬저 드라군' 는 서서히 내년 봄을 목표로 완성되어 가는 분위기였으나, 본체와 동시 예정이었던 "클럭 워크 나이트' 는 좀처럼 완성도가 오르지 않아 결국 과장 스스로가 총대를 매고 모든 스테이지 디자인을 다시 반으로 좁혀 상, 하권 두파트로 나눠서 발매하기로 최종 결정해 버린다.
결국 발매일을 맞춘 세가의 게임은 AM2 연이 자체 이식한 '버추어 파이터' 와 CS 측에선 외주를 줬던 어드벤처 게임 '완차이 커넥션" 뿐이였다. 다른 타사 타이틀을포함 1994년 내 총 8타이틀이 출시되었다. 한편 10일 후 발매된 플레이 스테이션은 런칭 타이틀로 8개, 연내에 총 17개의 타이틀이 출시되었다.
[드디어 발매 ! 첫 연말 판매 경쟁의 향방은]
결국 이 1994년 일본의 연말 판매 경쟁은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 실제 판매 갯수로만 이야기하자면 챔피언은 슈퍼 패미컴이였다. 닌텐도의 신작 '슈퍼 동키콩' 이 수백만개를 팔아치우며 덩달아 하드도 엄청나게 판매된 것이다. 그러나 판매 갯수가 아닌 분위기측면에서는 차세대기쪽이 각별했다. 닌텐도에 대한 도전권을 얻기 위한 대결은 어느덧 '차세대기 패권을 위한 제 1 라운드' 가 되어, 세가 대 소니라는 구도가 더욱 짙어지게 된 것이였다.
그리고 이 "차세대 게임기 전쟁' 제 1 라운드는 세가 새턴과 플레이 스테이션이 거의 호각세를 이루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플레이 스테이션은 30만대가 팔렸으며, 세가 새턴과 빅터사가 제작한 세가 새턴 호환기 'V 새턴' 등은 총 50만대를 판매한 것이다. 94년 말 당시는 아직 출하된 하드의 숫자도 적었고, "재고가 있는 만큼 팔린다" 는 시기였다.
사내 소문이지만 올해 '버추어 파이터' 소프트 판매 갯수가 세가 새턴 본체 판매 갯수를 넘은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본체를 살 수 없었던 팬들이 일단 소프트만이라도 가지고 싶어서 차세대기 기분을 내기 위해 일단 소프트 먼저 사버리는 케이스가 꽤 많았던 모양이다.
개인적으로는 월급을 모은 자금으로 V 새턴과 메가드라이브의 차세대 파워업 유닛 '슈퍼 32X' 를 구입했다. 메가드라이브를 파워업하기 위해 개발된 파워업 유닛 32X 는 일본에서 플레이 스테이션과 같은 날에 발매되어 연내 '버추어 레이싱 DX' 외 4개 게임이 출시되었다.
32X 와 동시 발매된 '스페이스 해리어' 와 '스타워즈 아케이드' 의 이식 수준은 굉장했다. 역시 아케이드 게임 이식작을 즐길 수있 는 것이 최고, 그것을 위해선 32X 는 최적의 하드였다. 결국 새턴 소프트 중 구입한 것은 '버추어 파이터' 뿐이었다.
지역의 친한 친구는 플레이 스테이션을 구입, '릿지 레이서' 를 계속 플레이하고 있었다. 1년 전 출시된 인기 최신 아케이드 게임들이 2개의 하드를 끌어올린 것이다. 반면 친구는 그 밖에도 'A IV' 나 '마작 스테이션 MAZIN' 을 구입하여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던 3D 연출의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플레이 스테이션에도 아케이드 게임 이식작은 있었지만, 오히려 눈에 띈 것은 기존 게임이 3D CG 를 활용하여 변화한 그런 참신함이였던 것이다.
게임의 역사가 바뀌고 있었다.
새턴으로 램팩꼽고 x맨 .kof시리즈.D&D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세턴 참좋은 기종이었지 2D성능도 끝내주고
새턴은 패드가 명작
설계부터 잘못된 게임기. 아케이드는 자신들이 3D시장을 열었으면서 새턴은 왜 2D로 설계했는지 의문. PS의 스펙이 공개되자 부랴부랴 추가 프로세서들을 달아서 성능업을 해서 3D를 지원하게 했으나 구조만 더 복잡해져서 게임제작 난이도만 올려놓고, 대부분의 제작사들은 새턴의 성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나온 게임들은 대부분 PS보다 3D그래픽이 떨어짐.
새턴은 패드가 명작
flyinghyunki11
그립감 정말 좋죠 ^^
세가는 이세계삼촌 작가한테 큰절해야지
옛날에 게임 나오는거 보다 춤추는 젤다 ,포켓몬 잡는 아저씨 요상한 광고 많았는데
요새 쓰레기된 인간이네
극우..
진짜 잘가지고 놀았는데
아케이드 제왕이던 세가의 리즈 시절
뭐 어쨌든 자국에서 타도닌텐도를 이뤄냈으니
새턴으로 램팩꼽고 x맨 .kof시리즈.D&D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인식 잘 안되서 후욱 후욱 바람 불어주고.. ㅎㅎ
새턴은 킹오파 할려고 샀었는데...
2D대전격겜 즐기기엔 새턴 패드 만한게 없음.
친구가 세가세턴 가지고 있어서 같이 할라고 세가 세턴 사러 갔는데 플스 사라고 했던 주인 아저씨가 생각나네요... 결국엔 둘 다 비싸서 못샀지만;;;;;
세턴 참좋은 기종이었지 2D성능도 끝내주고
음원 재생력도 참 좋았죠...
세턴하면 항상 희망회로밖에 생각이 안남.. 세턴에 숨겨진 dsp 를 활용하면 지금보다 성능이 상승되어 버추어파이터3를 이식할 수 있다.
스즈키 아재가 맨날 이식가능하다 고 구라를 쳐대서... 지금 생각하면 한심한 소리인데요.. 휴.. ㅠㅠ
솔직히 지금도 새턴을 제일 좋아하긴 하지만 오락실에서 버파를 해 보고 버파3 이식 얘기 들었을 때 고등학생 수준에서도 '저건 구라야, 100% 구라야'라는 생각이 들었었죠...
그 전개가 드캐에서도 이어지죠.. 드캐 하부에 있는 수수깨끼의 슬롯은 나오미2를 위한 것이다! 버파4 가능! 같은....
내 인생 겜 중 하나인 드래곤포스, 도어 정령왕기전 발매 기종 ㅠ.ㅠ
세가의 게임은 세계 제일!
설계부터 잘못된 게임기. 아케이드는 자신들이 3D시장을 열었으면서 새턴은 왜 2D로 설계했는지 의문. PS의 스펙이 공개되자 부랴부랴 추가 프로세서들을 달아서 성능업을 해서 3D를 지원하게 했으나 구조만 더 복잡해져서 게임제작 난이도만 올려놓고, 대부분의 제작사들은 새턴의 성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나온 게임들은 대부분 PS보다 3D그래픽이 떨어짐.
메가드라이브(제네시스)로 서양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높은 보급률을 보여줘서 당시 1인자였던 닌텐도의 라이벌위치해 있었는데 새턴에서는 일본내에서만 팔리고 해외에서 거의 팔리지 않아 실패할 줄 누가 알았는가......
오히려 MD를 성공시킨 미국지사장이 32비트 모델을 3d 기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을 때도 일본 세가에서 무시했다고 하는 자서전도 있었죠. 망할만 함
95년까지는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 새턴이 가장 좋았던 때. 세가가 유일하게 가정용 게임기 시장 1위를 하던해. 100만대 출하도 소니보다 먼저 달성했고, 당시에 버파 리믹스 번들팩도 발매 함. 그도 그럴것이 소니의 PS는 서드파티가 부족했었고, 닌텐도는 여전히 울트라 64(닌텐도 64)가 출시되기 전이어서 16비트 게임기인 슈퍼패미컴을 주력 콘솔로 나가고 있던 시기. 이듬해인 1996년에 소니의 PS로의 대대적인 서드파티 참가로 인해서 서서히 PS로 기울어지기 시작. (이때의 큰 이슈는 스퀘어의 PS로 참가. 그러면서 동시에 공개한 게임이 파판7)
얘기를 들어보니 망할만 했네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결정이었으니까요.
1996년부터 대부분의 서드파티들의 주력 콘솔을 PS로 함. 그리고 신규 제작사들도 PS를 주력으로 하고. 그러므로 발매되는 게임들의 양은 PS가 크게 앞서감. 더불어 세가는 새턴의 서양 런칭을 실패했고, 소니는 PS의 런칭을 크게 성공함. 세가는 새턴의 영문판 현지화 게임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서둘러서 런칭하였고, 소니는 세가보다는 다소 늦게 런칭했지만 가격을 새턴보다 100달러 저렴한 299달러(새턴은 399달러) 책정하고, 많은 수의 영문화 게임들을 동시에 런칭함. 그렇다고 새턴이 서양에서 잘팔렸던 메가드라이브 호환이 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이 새턴을 선택할 이유가 딱히 없었음. 또 PS는 구조가 간단하여 제조 단가를 낮춰 가격을 낮추기 용이 했으나 새턴은 단가 낮추는게 어려움. 그래서 소니는 단가를 낮추면서 가격을 인하를 감행. 세가도 어쩔 수 없이 새턴의 가격을 낮출 수 밖에 없었음. 1997년 1월에 PS로 파판7이 발매. 발매시기에 PS의 판매량이 급상승하는 현상도 생김. 완전히 비디오게임 시장은 PS로 기울어졌고 해외 시장 런칭도 실패한 새턴은 가망이 거의 없었음. 그해 E3에서 '새턴은 세가의 미래가 아니다.'라는 발언으로 새턴 포기선언.
서울도라에몽
그 얘기를 듣고 저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3D칩셋을 장착해서 3D를 처리했으면 적어도 구조는 그리 복잡해지지 않았을 거고, 후속기엿던 드캐에서도 새턴 하위호한을 기대해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세가가 좀 무리해서 새턴에 메가드라이브 호환 기능을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애초에 카트리지 슬롯도 있고. 그랬다면 단가는 올랐더라도 적어도 미국에서 닌텐도와 시장을 반분했던 제네시스의 유저들을 어느 정도만 끌어왔으면 그렇게 처참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텐데요.
일본 본사의 압력으로 밀어붙인게 현재 새턴의 사양이라... 미국지사 견제 건도 있어서 일본에선 별볼일없는 MD 슬롯을 넣을 생각조차 안했을 것 같은...
예전에 MD에 카드처럼 얇은 게임팩 있지않았나요 그런거 달았으면 좋았을텐데
얇은 카드형이라면 세가 의 마크3/마스터 시스템용 마이카드 일거고 메가드라이브에서 이걸 쓰려면 하위호환 어댑터인 메가어댑터를 이용해야 했습니다..이번에 메가드라이브 미니용 액세서리로도 나오잖아요
아 겜보이용이었군요 너무옛날이었네 ㅠ
저도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었어요. 소니가 PS 스펙을 공개했을때 설계했던 새턴을 폐기하고 아에 처음부터 3D에 강화된 새턴을 설계를 다시 하는게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차피 서양쪽에서는 메가드라이브(제네시스)가 많은 인기를 얻고 이었기에 세가로서는 서두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동안의 메가드라이브의 부족한 성능은 32X로 채우고 있다가 96년경정도에 메가드라이브, 메가CD, 32X 모두 호환을 탑재하고 발매했으면 어떘을까 하고 말이죠.
게임매거진 1995년 8월호에 실린 새턴과 PS의 가격인하 정보 참고로 세가새턴 런칭가는 44,800엔, PS 런칭가는 39,800엔이었습니다.
그걸 쫀심때매 쌩깐게 세가 일본 본사... 사실 그것뿐이라면 말이라도 안하지 위에도 말한 실리콘 그래픽스 제휴 조언도 쌩깠고 결과적으로 듀얼 코어라는 개념조차 없을때 싱글 코어 CPU 두개 + GPU도 동적 물체랑 배경용 두개라는 미친짓을 벌여서 기본적인 성능부터 딸리는데 풀 활용하면 어느 정도 플스1 근접하게 된다고 해도 서드 파티는 애초에 활용을 거의 못하지 퍼스트 파티도 쓰기 힘들어서 줄줄이 밀리지 대표적으로 소닉 팀의 나이츠가 본래 1년 제작 예정이었지만 2년이나 걸려서 결국 세가의 대표 IP중 하나인 소닉을 내지 못하는 참사도 일어났고(북미 지사에서 만들던 소닉도 복잡한 사정으로 취소) 그 파판7도 새턴 제대로 쓸 수 있는 제작사 얼마 없다고 돌려까면서 플스1로 갔고 드퀘도 잘팔리는 기기에다 낸다고 했는데 나중에 결국 플스1이 역전해서 그쪽으로 가버리니 RPG가 가장 중요히 여겨지던 시대에 세계 양대 RPG를 둘 다 뺏기고 그 와중에 기기 구조상으로도 가격 인하도 못하고 전후세대 호환도 안되고... 결국 정신 좀 차리고 드캐 빡세게 냈지만... 세가 일본 본사의 그놈의 같잖은 쫀심 하나가 그 세대의 게임기뿐만 아니라 그 다음 세대 게임기까지 전부 말리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하드웨어 산업까지 접어버리게 만드는 희대의 개삽질 나비 효과로 남아버렸(...) 근데 진짜 버파로 3D 게임의 포문을 열었던 세가에서 가정용 게임기로도 3D 게임을 한다는 예측을 못했다는게 더 웃깁니다 그걸 또 수정하라는거 말 끝까지 제대로 안들어먹은 것도 거참 오히려 그정도 안목으로 드캐까지 버틴게 신기할 수준...
이런거 재밌음 새턴은 진짜 킹오파랑 스파제로때문에 너무 가지고 싶었던 차세대겜기였지
세가 가정용게임기 다신 볼수 없겠지...
버파2 랑 펜저드라군 나이츠인투드림만해도 재미있었씀..추억
이런기사는 내용을 알아도 재밌음 ㅋ
https://www.mirai-idea.jp/post/segasaturn02 재밌네요 2탄도 보세요~
세가의 의지는 엑박이 잇지 않았을까(아무말)
이 시기에는 다채로운 게임들이 많이 발매됬는데... 그때가 그립네요~
새턴 미니 안나오나 메가드라이브 미니 보면 새턴도 잘나올거 같은데
요즘 복각형 레트로기기 나오는 게 죄다 에뮬 + 미세조정 수준인데 새턴은 아직 그 에뮬부터가 완전하지가 않은 수준이라서요... 훨씬 성능 좋은 드캐 에뮬이 새턴보다 먼저 안정화됐고 지금도 새턴 에뮬 쪽이 요구사양이 높아요 ㅋㅋㅋ
구조가 하도 지ㄹ 맞아서 힘든가봐요..
2D게임은 플스1이 밀림;;;
킹오파95 플스로 할때 진짜 로딩이 환장할 정도였습니다. 3캐릭 다 로딩이 존재해서 진짜 우스개소리로 대전 한판당 로딩이 거의 1분이었던거 같네요.
kof는 98이 최악이었던거 같은데.. 재미있게 해서 막 달아오른 흥분도가 로딩 기다리면서 커피 한잔 타먹으면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도 안 끊남 특정 기술 키로 저장은 맘에 들긴 했지만
PS1판은 kof 95가 최악 아니었어요? 98은 로딩빠르다고 당시 친구가 막 자랑을... 새턴은 발매도 안했구.. ㅜㅜ
새턴이 없어서 비교가 안되는거뿐이지 95랑 많은 차이는 없어요 둘다 최악이긴 해요
당시 콘솔전쟁은 좀 부조리했던거 같음. 무조건 파판, 드퀘 나오는 기종이 승자.
파판은 무조건 성능우선 드퀘는 무조건 출하량 우선
악마성 월하의야상곡을 플스판에 이어 늦게 이식해서 추가요소까지 더해진 완전판이었는데 그래픽적으로 일찍 발매한 플스판보다 떨어지게 만들어서 의아했던 기억이...
메뉴로딩때문에 환장하는줄 추가요소가 있음에도 손이 잘 안가게 되더군요
이식 담당한 코나미 나고야 놈들 기술력이 부족해서 새턴의 트윈CPU 두 개 전부 프로그램하기엔 복잡해갖고 CPU 하나만 사용해서 그 지경이라는 카더라가....
가디언 히어로즈, 데빌서머너 나올때쯤이 새턴의 황금기이자 제 게임라이프의 가장 좋았던 시절이었던것같음
95년 동네 게임매장에서 플스1 32만원에 구입했을때 세상 다 얻은거같았는데… 근데 진짜 이때 남코가 없었으면 플스는 초창기 새턴한테 점유율 많이 내줬을듯. 새턴으로 킹오파95 나온다고 할때 얼마나 부러웠는지 새턴으로 기변까지 생각했네요 ㅎㅎ 그래도 소프트 가뭄 시기에 에이스컴뱃1과 코나미 nba 파워덩커스같은 끝내주는 게임이 나와서 만족했죠.
95년에 플스1을 32만원에 구했다니 미국에서 299달러로 구하신건가요? 일본 가격은 그것보다 비싼 걸로 알아서요.
IMF 전엔 환율이 쌌어서...
그래도 병행수입인데 32만원이면 엄청 양심적이었던 곳 같습니다. IMF 이후 게임을 접해서 그런지 가격 두배 뻥튀기되는 거에 익숙해서;;;
32만원이면 엄청 싸게 산거예요. 당시에 비디오 게임기와 게임 가격은 보따리 마음이었기에 환율과 무관했었거든요.
당시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근에 있던 게임점에서 32만원에 업어왔죠;; 거기 아저씨가 제 슈퍼패미컴하고 크로노트리거랑 기타 2개인가 해서 중고로 16만원에 받아줬거든요. 뭐 말이 95년도지 거의 가을 넘어서 겨울이 다가왔던 거 같네요.
보따리는 맞는데(카마 플스 나오기 한참 전이라...) 당시 플스 이미지가 막 잘나가는 게임기라기보다는 지금 말로 하면 얼리어답터 같은 성격의 게임기라서 그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던 거 같네요. 거기 게임점 당골이기도 했구요. 근데 중학교 신분이라서 32만원 조차 엄청 큰 돈이었죠 ㅋㅋ
95년에 환율이 750원 이었구, 그 때 PS가 발매 6개월만에 1만엔 할인된 29800엔으로 인하를 해서 아마 그런 듯요.
32X로 인한 제살 갉아먹기가 없었으면 좀 더 상황이 나았을까요? 이 칼럼 막바지에도 32X 소프트를 안 샀으면 새턴 소프트 하나 더 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새턴 하면 세가 탄산시로?! 유도복 아재 웃겼던 기역이...
내인생 최고의 겜기는 새턴이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