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 타이거즈의 역대 한국시리즈 성적 : 한국시리즈 9회 우승 (83 , 86 , 87 , 88 , 89 , 91 , 93 , 96 , 97)
1장 : 한국 프로야구의 시작과 해태타이거즈의 탄생(82년)
1982년, 이때 한국에 프로야구가 최초로 출범되었다.
출범시 등록팀으로는 삼섬 , 롯데 , 해태 , OB , 삼미 , MBC 가 있었다.
6개의 팀 중에서도 해태는 14명의 턱없이 부족한 인원 수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첫리그의 4위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둔다.
해태의 원년 맴버 :
감독 - 김동엽
코치 - 조창수 , 유남호
투수 - 이상윤 , 방수원 , 신태중 , 김용남 , 강만식
포수 - 박전섭 , 홍순만
내야수 - 김성한(투수겸) , 김봉연 , 조충열 , 차영화 , 차정득 , 최영조 , 임정면
외야수 - 김일권 , 김종모 , 김준환 , 김종윤 , 김우근
2장 : 해태타어거즈 한국시리즈 첫 우승(83년)
프로야구 출범 첫 시즌에서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해태는 83년 두번째 시즌부터 무서운 활약을 이어갔다.
내야수 '김봉연'이 홈런 및 타점에서 1위를 기록하였으며, 그 활약에 힘입어 해태는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전기리그 우승 당시의 사진
그러나 후기리그가 시작되면서 해태에는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전기리그 김봉연이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면서 , 후기리그에서는 출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김봉연의 기록이 '이만수'에게 밀리게 되면서, 후기리그는 MBC가 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와 MBC가 맞붙게 된다. 이때, 해태는 5전 4승 1무의 뛰어난 성적으로 한국시리즈를 우승한다.
교통사고가 났던, 김봉연이 다시 돌아와 19타수 9안타 8타점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한국시리즈에서 기록 한 것이다.
김봉연의 한국시리즈 우승 기념 사진
3장 : 해태타어거즈의 부진(84년)
84년의 해태는 전기리그 와 후기리그에서 중상위권에 안착하였지만 , 후기리그 막바지에 연패가 이어지면서
결국 한국시리즈 진출은 좌절되었다.
4장 : 엄청난 신인의 등장(85년)
85년의 해태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나 , 이번에도 한국시리즈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해태는 후반기에 투수 '선동열'과 계약하게 되면서, 다음 시즌을 기약하게 된다.
선동열은 150km를 넘나드는 빠른 직구와 예리하게 꺽이는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사용했다.
후반기에 등장한 선동열의 성적은 7승 4패 4세이브 , 방어율 1.7 을 기록했다.
5장 : 선동열의 활약(86년)
86년에는 빙그레 이글즈가 새로이 프로야구에 합류하게 된다.
86년의 해태는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며 전기 , 후기 리그를 2위로 마감하면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이때, 선동열은 24승 방어율 0.99 탈삼진 214를 기록하였고 , 새롭게 한대화가 트레이드 됐다.
그리고 해태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5전 4승 1패를 하며,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했다.
6장 : 신인 한대화의 활약(87년)
해태는 시즌 초반 4번타자 김성한이 부상을 당했으나, 새롭게 트레이드 된 한대화의 활약으로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이에 만만치 않게 삼성이 팀타율 3할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며 독주했다.
이 후, 해태는 전기리그 3위 와 후기리그 2위를 확정지으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그리고 전기리그를 2위로 올라온 OB를 상대로 4전 4승 무패로 가볍게 우승을 차지한다.
7장 : 해태타이거즈 독주 시작(88년)
주전포수 김무성이 부상으로 물러나고 , 주전으로 기용된 장채근은 20개가 넘는 홈런을 치면서 연일 활약했다.
선동열과 이상윤은 나란히 16승을 거두었고 , 불펜에서도 신동수 , 방수원 , 김정수 등이 활약했다.
그러나 1988년 8월 27일 투수 김대현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장채근과 선동열
6월 19일에는 잠실에서 올스타전이 펼쳐졌는데 10명중 7명은 해태의 선수들의 이름이 올려졌다.
그리고 얼마 뒤, 시작 된 플레이오프에서는 빙그레가 삼성을 꺾으면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된다.
결승에서 빙그레와 맞붙은 해태는 초반에 3연승을 거두면서 한국시리즈 10연승이라는 기록을 달성한다.
하지만 다음 경기에서 2차례 연속 패하면서 위기를 맞지만 6차전에 다시 승을 거두면서, 또 다시 한국시리즈를 우승한다.
8장 : 4년 연속 해태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우승(89년)
이상윤과 김정수 투수의 공백으로 위기에 빠진 해태였지만 이강철 , 조계현 , 이광우가 30승을 합작했고.
선동열이 21승에 1.17의 방어율을 기록하면서 팀을 이끌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태평양 돌핀스를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결승에는 작년과 똑같이 빙그레를 상대했다.
첫 경기에서는 패배를 거두었지만 , 나머지 경기에서 무려 4연승을 따내면서 다시 한번 한국시리즈의 우승을 차지한다.
해태는 이번 우승으로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룬다.
4년 연속 해태의 한국시리즈 우승
문제의 짤방
9장 : 한국시리즈 5연패 실패(90년)
해태는 선동열의 22승 , 이강철의 16승 , 조계현의 14승 이라는 초호화 투수들에 힘입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삼성에게 3연패를 당하게 되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었다.
2006년 은퇴한 이강철 투수
조계현 투수
10장 : 부활한 해태타이거즈(91년)
작년 한국시리즈 우승은 좌절됐지만, 이번 시즌에서는 초반부터 후반까지 시즌내내 독주하면서 8월에 이미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당시 10승을 거둔 투수가 4명이나 있었고 (선동열 이강철 신동수 송유석) , 팀방어율도 2점대를 기록하였다.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해태는 결승에서 빙그레와 3번째 만남을 가졌지만, 4전 4승을 거두며 가뿐히 우승을 차지했다.
11장 : 부진을 거듭하는 해태타이거즈(92년)
에이스 선동열이 2승 8세이브로 부진하면서 마운드가 무너지게 되었고, 한대화 역시 허리부상으로 인해 부진했다.
그러나 이순철이 안타왕과 도루왕을 해내면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되지만 롯데자이언츠에 패하면서 우승이 좌절된다.
12장 : 야구천재 이종범의 등장(93년)
93년에는 입단한 이종범은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볐다. 이종범이 한 번 출루하면 거의 무조건 홈을 밟는다는 공식이 나타났을 정도로 신인답지 않은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다. 93년부터 선동열은 마무리 투수로 바뀌었고 , 10승 기록을 6명의 투수가 기록하였다. (조계현 , 송유석 , 김정수 , 이강철 , 이대진 , 선동열)
이어 한국시리즈에서 해태는 삼성을 상대로 7전 4승 1무 2패로 우승을 거뭐진다.
이로서 해태는 한국시리즈 통산 7번째 우승을 차지한다.
선동렬과 이종범의 듀엣 앨범♥
이진영이 대체 어디에 있다는거야!
진정한 대인배 이종범
종범신과 입치료
13장 : 바람의 아들 이종범(94년)
94년에 들어서 이종범의 활약은 더욱 눈 부셨다. 이종범은 3할 9푼 3리의 타율과 196안타 87도루를 기록했다. 조계현 또한 18승으로 다승왕에 올랐다.
그러나 시즌 후반 주전선수들의 줄 부상으로 인해 결국 준 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면서 4위를 기록하며 94년을 마감한다.
14장 : 해태타이거즈 전력의 하락(95년)
최그의 톱타자 이종범이 ‘방위’ 병으로 인한 출전금지 때문에 홈경기에서 밖에 뛸 수 없었다.
더불어 주전선수들의 노쇠화로 인해 전력이 급하락 하면서 들쑥날쑥한 성적을 거두었으나,
후반에 다시 부활하여 7연승을 거두며 4위까지 올라갔지만 , 3위 팀과의 게임차가 3.5 게임 차 이하가 되면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한국시리즈 진출은 좌절된다.
그러나 95년에 열린 제 2회 한일 슈퍼게임에 해태의 선수들이 5명이 출전하여 맹활약을 펼쳤다. 이종범은 도루3개를 기록 , 조계현은 2차전 선발 승을 거두었고
선동열과 이종범이 대회 우수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뒤, 선동열은 주니치로 팀을 옮기게 된다.
15장 : 명가재건(96년)
선동열의 부재로 인해 리그 초반에는 좋지 않는 성적을 거두었지만, 리그 중반기에 이종범과 이대진이 방위 소집에서 해제되면서 , 대 반격을 시작한다. 결국 7월 31일에는 단독 리그 단독 1위에 오르기에 이른다.
중간계투에서 임창용이 단단히 점수를 지켰고 , 마무리 김정수는 10연속 구원승을 성공했다.
해태는 단독으로 패넌트 레이스 1위를 하면서 한국시리즈를 직행했다.
한국시리즈 결승에서는 현대와 붙으면서 4승 2패로 또 다시 우승을 거머쥔다.
임창용
유명한 일화 이종범포수
16장 : 한국시리즈 마지막 우승(97년)
97년에는 개막전부터 끝까지 한차례도 3위권 밖으로 밀리지 않았으며 안정적으로 상위권에 머물렀다. 그리고 마침내 패넌트 레이스를 1위로 완주하고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조계현이 단 8승을 거두었지만, 이대진이 17승 이강철이 11승을 거두었고, 임창용은 중간계투로서 점수를 잘 막아주었다.
이종벙은 30홈런으로 홈런 2위를 기록했다.
한국시리즈 5차전 마지막 경기에서 김상진 투수가 선발로 나와 2피안타 2포볼로 완투승을 거두었으나 머지 않아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이종범은 주니치로 팀을 옮긴다.
한국시리즈 3차전 이종범의 홈런
에이스 오브 에이스 이대진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
5차전에서 완투승을 거뒀지만 암으로 세상을 떠난 김상진 투수
17장 해태타이거즈의 터닝포인트(98 ,99 ,00년)
이종범과 선동열은 해외로 떠났고 , IMF와 맞물리면서 광주출신의 선수들도 지명이 되지 않고 대부분 메이저리그로 떠났다. 김병헌 , 서재응 , 최희섭 등의 신인을 놓친 해태는 패넌트 레이스 5위에 그쳤고 00년도 까지 계속 하위권에 머문다.
더불어 명장 김응용감독이 삼성으로 떠나고 최고의 마무리 임창용도 떠났으며 홍현우 이호준 조계현 이순철 등도 팀을 떠나 타팀으로 옮기게 된다.
장성호라는 신인이 발굴되었으며 , 김종국도 수비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장성호
지금도 그 버릇 못고친 기아의 주장 장성호=장스나
한남신, 김공익의 역겨운 이미지와 겹쳐서 그냥 종국신
18장 : 해태타이거즈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01년)
해태의 새 감독으로 김성한의 취임.
기업의 재정악화로 인해 해태타이거즈의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하자 기아자동차가 해태타이거즈를 인수했다.
이로서 해태타이거즈의 신화는 통산 성적 1240승 54무 1021패 우승 9회라는 대기록을남기며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보너스 짤방
출처 : 글 출처 - 본인 , 이미지 - 각종 짤방들
플레이오프를 한국 시리즈라고 잘못 쓴 부분도 있으니 , 양해해 주세요 (__)
빙그레-한화 팬으로서 80년대 후반 해태만 생각하면 치가 다 떨립니다. 프로야구사에서 최강의 팀을 꼽으라면 역시 저당시 해태가 최고인것 같아요.
간만에 정말 좋은글보네요 ㅎㅎ 기아팬은아니지만 보는내내 잼있었습니다~
해태는 항상 전력이상의 실적을 거두었지만 기아는 항상 전력이하의 실적을 거두죠.
그나저나 이종범 마케팅...ㅋㅋ
우와.. 정말 엄청난 정보네요.. 잘 읽었습니다 몇번 더 봐야할듯..ㅋㅋ
빙그레와 삼성팬들은 잊을 수가 없는 팀이죠...해태 타이거즈...ㅎㅎ 특히 삼성과는 진동한투수 저격 & 버스방화복수 사건으로 유명했던 라이벌 시절도 있었구요.. (아직도 통산 승률 및 승수 1~2위를 다투는 전통의 라이벌이라고 볼 수도 있을 정도..) 진짜 빙그레와 삼성은 항상 시리즈 올라가서 해태만 만나면 한없이 약했던...^^;; 사실 기아 타이거즈는 겉모습만 호랑이이지, 예전 해태의 포스를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 타이거즈의 모습을 다시 보는 날이 빨리 다가오길 기대해보겠습니다.
잘못쓰신게 1992년이네요 롯데와해태가 붙은게 플레이오프였죠 아무튼 좋은글 잘봤습니다 잘쓰셨네요..
와우 멋진 글입니다. 해태 팬이라서 이글을 쓰신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이러한 형식으로 우리나라 프로야구 구단 모두를 소개하는 글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ㅎㅎ
잘봤습니다~
빙그레때부터 해태는 정말 아오!!!!!!!!!!!!!!! 재미있고 유익한 자료네요 잘봤습니다. 위에윗분 말씀대로 전구단을 이렇게 소개하면 참 재미있겠네요^^
퍼온거죠?
제가 자료 하나하나 찾아서 쓴겁니다.
추억의 명가 끝판왕팀ㅎㅎ
잘읽었습니다 퍼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