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내려와 11월까지는 백수인 채로 지내야 했다.
그동안 하루 13시간은 기본으로 일했으니 기회가 됐을 때 푹 쉬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아내랑 여유롭게 산책도 가고, 친구들이랑 술도 실컷 마시며 게임도 원 없이 했다.
그러나 한 달쯤 지나자 막연하게 뭔가 불안하다.
하루 종일 일다운 일을 안 하고 보낸다는 게 왠지 죄짓는 느낌이었다.
노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예전에 20년 지기 친구와 게임을 하는데 주위 사람들이 방송을 해보라고 권한적 있다.
우리끼리 노는 걸로 끝내기가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다고 했다.
이 꼴을 방송으로 내보내면 이민 가야 한다며 거절했지만 요즘 들어 이렇게 시간을 보내느니 한번 해볼까 싶었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아내의 동의만 구하면 자기도 하고 싶단다.
우여곡절 끝에 하루 4시간만 방송하는 걸로 아내들과 딜을 했다.
저녁시간을 통으로 비워야 하는 어려운 일을 동의해주어 다행이다.
그리하여 최근 두 달 동안 장비를 사고 오류를 수정해나갔던 일을 공유해보고자 글을 올린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샀다.
SAMSON CO1U PRO - 118840원
다른 장비 없이 바로 컴퓨터에 꽂아 사용할 수 있었으면 해서 USB 용으로 골랐다.
두 명이 방송을 하지만 마이크는 한대였으면 해서 콘덴서 방식으로 채택.
(가수들이 손에 쥐고 부르는 건 다이내믹형으로 음향감도 가 낮고 가격이 저렴하다. 다만 내구성은 높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할 때 쓰이는 게 콘덴서형으로 음향감도 가 높고 가격이 비싸다. 내구성이 떨어진다)
테스트 삼아 녹음을 해보니 멀리서 지켜보는 아내의 한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성능이 좋았다.
허나 책상을 건드릴 때마다 울리는 통에 관절 스탠드와 쇼크 마운트를 구입.
(마우스를 탁탁 움직이는 소리조차도 마이크에 들어갔었다)
관절 스탠드 IT062 - 13900원
RV77 SHOCK MOUNT - 16달러
음향장비는 보통 중간가격대가 없이 싸거나 비싸거나였는데 스탠드와 쇼크 마운트는 저렴한 걸로 선택.
가격에 비해 성능은 훌륭했다.
캠은 리퍼비시 제품으로 구입했는데 판매자의 패기가 느껴지는 포장으로 왔다.
전자제품을 뽁뽁이 하나 없이 이렇게 보내다니...
LOGTECH C920 - 80780원
더 좋은 성능의 캠들도 있었지만 화질이 좋을수록 우리에겐 손해기 때문에 이걸로 정했다.
모니터 위에 얹을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성능, 가격, 디자인 모두 만족스럽다.
캠으로 찍으면 대략 이런 느낌.
(못생겼다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화질이 좋으면 깜짝 놀랄 정도로 못생겼다)
방송하는 장소는 친구네 옷방이었는데 사정상 우리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문제는 우리 집 컴퓨터가 침대 앞에 있다는 것.
임신 때문에 잠이 많아진 아내를 가려줘야 하는데 크로마키라는 걸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자비 없는 가격...
루리인의 정신 [맘에 드는 게 없으면 만들지 뭐]에 따라 직접 제작하기로 했다.
시골이라 그런가 원단 파는 곳을 찾을 수 없어 급한 대로 시장의 커튼 집에 들어갔다.
이러이러한게 필요하다 말씀드리니 5분만에 재봉까지 완벽하게 해주셨다.
180*220사이즈 36000원에 획득.
크로마키를 천장에 달 커튼 봉도 구매했다.
이케아 레카 커튼 봉 세트 - 14000원
커튼 봉에 천을 끼우고 천정에 매달면 이렇게 된다.
그리고 캠의 크로마키 기능으로 녹색을 투명하게 바꿔주면 방송화면 배경이 보이게 된다.
다음은 게임 화면을 방송으로 송출하기 위한 캡처 보드.
AVERMEDIA LGX - 203060원
간혹 다른 장소에서 방송을 해야 하는 터라 외장형으로 구매했다.
그러나 종종 먹통이 되었는데 이때는 캡처 프로그램을 재실행 해야 했다.
캡처 보드 먹통의 좋은 예.
발열이 심하던데 그것 때문인가 싶어 아이스팩을 받쳐놓으니 증상이 완화됐다.
그러나 며칠에 한 번씩은 먹통이 되었고 제조사 에게서 '라이젠CPU는 호환이 잘 안될 수도 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내장형 제품으로 다시 구매하게 됐다.
스카이디지탈 SUPER CAST X6 - 130000원(중고)
캡처 보드를 바꾼 뒤로는 아직까지 별문제 없이 잘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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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두 달밖에 안된 초보 스트리머지만 그간 알게 된 내용들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방송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좀 되었으면 좋겠네요.
서른 중반에 게임 방송을 한다니 의아해하던 아내도 이젠 매일 피드백을 해주며 돕고 있네요.
이렇게 재밌게 일한 게 언제였던가 싶을 정도입니다.
앞으로도 매일 웃으며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마누라 분들이 응원해 주신다니!! 실화 입니까? 기왕 시작하신거 힘내십쇼
저는 문방구에서 녹색 부직포 2마 사서 크로마키 만들었는데 저런 방법도 있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