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소울워커에서 소매넣기로 한동안 훈훈했었지.
메갈 터지기 전의 클져나 마비도 뉴비에 대한 고인물들의 환대로 유명했고, 닼소도 그랬지.
"게임의 고인물들은 이미 그 게임의 컨텐츠를 죄다 소비했는데 왜 아직도 게임을 하고 있고, 왜 아무런 대가도 없이 남을 도와주는가?"
를 주제로 설문지 돌려 본 아는 누나가 있었는데(모 게임회사에서 일했음. 지금은 그만둠), 결과에 따르면 고인물들에게는 남을 도와주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컨텐츠였대. 왜 우리도 가끔 베스트에 보면 "소울워커 유저들 또 자체 컨텐츠 생산 ㅋㅋㅋㅋㅋ"같은 거 올라오잖아. 쉽게 말하면, 고인물들끼리 던전 하나 잡아놓고 거기서 잡담하거나, 주식시세를 논하거나(...) 룩딸을 하거나, 팬티만 입고 마을에서 춤추는 것도 컨텐츠를 죄다 소모해버린 그들 입장에서는 나름의 자체생산콘텐츠(하지만 큰 재미는 없는)였잖아? 소매넣기도 일종의 즐거운 놀이이자 자체 컨텐츠였던 셈이지.
그런데 그러면 왜 그게 즐거운 놀이이냐? 면 어차피 고인물들에게 웬만한 아이템이나 돈은 큰 의미가 없는데, 그런 걸 '자기보다 못 가진' 사람들에게 나눠줌으로서 일종의 자기효능감(나도 이 게임 안에서는 남들에게 도움이 되고 존경받는 존재다)을 느끼고, 도움받은 사람들의 감사를 받으면서 도덕적인 쾌감을 느낀다는 거였어. 그리고 바로 그 쾌감이 계속 그 게임을 붙잡고 플레이하게 만들더라, 는 거야.
그런데 이게 그 게임이 오래 유지되게 만드는 데 확실히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고는 하더라. 고인물들이 친절하면 뉴비들도 계속 들어오고, 도움을 받다보니 계속 게임을 하게 되고, 또 고인물들도 그러면서 게임을 계속 붙잡고 있게 되니 유저풀과 게임의 계층구조가 안정적이 된다는 거지(사회학의 용어를 빌리면 상류층 - 고인물 - 에 의해 자발적으로 그 사회의 부 - 아이템과 돈 - 가 분배되는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겠어)
너무 당연한 얘기를 왜 여기서 하냐, 라고 물어본다면, 음, 사람들은 조건만 갖춰지면 충분히 이타적일 수 있다는 거야. 아 물론 100%이타적인 행동은 아니지. 결국은 자기 좋자고 하는 거니까. 하지만, 그게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서 아는 일은 아니지. 정치적 권력을 위해 하는 일도 아니고. 조금 중2병스러운 단어지만, 이 경우 고인물들이 자선을 하게 만든 동기은 '명예'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고인물 하나가 뉴비 도왔다고 해서 그게 그 고인물에게 직접적으로 이익이 될 일은 없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이 게임이 좀더 오래 유지될 수 있게 기여했다", 혹은 "이제 막 게임 시작해서 고생하는 약한 사람 하나 도왔다"는 도덕적 성취감이 고인물들이 간도 쓸개도 다 뺴주게 하는 힘이 아닐까 싶어.
나는 이게 어느 정도 현실 사회에서도 적용되지 않을까 싶어. 이타적인 행위, 도덕적인 행위에도 분명 나름의 보상이 필요해. 그게 꼭 경제적인 보상이 아니더라도 말야. 옛날에는 약자를 돕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훌륭하다는 찬사와 명예를 얻었지. 하지만 약자를 배려하는 게 상황 조건 막론하고 무조건 너무도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면(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지), 약자를 돕는 행위는 더 이상 명예롭지 않게 되고, 그러면 사람들이 약자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은 줄어들어. 거기서 오는 쾌감도 줄어들고. 소매넣기를 할 때, 뉴비들이 놀라고 고마워해야 소매넣기할 맛이 나지, 뉴비들이 뉴비한테 대접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 왜 소매넣기 안해주냐, 고 요구하고 다닌다면, 고인물들이 소매넣기를 하고 싶겠어?
결론:
1. 소매넣기 받으면 고마워하자. 그것이 고인물들이 게임을 계속하게 하고, 뉴비들이 계속 도움받게 하니 훈훈한 게임문화를 만드는 길이다(?)
2. 누군가가 바람직한 행위를 자진해서 하게 하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줘라. 하다못해 명예라도 줘라.
좋은글이다 ㄹㅇ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