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1천여 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인간형 안드로이드가 사람들과 공존하며 생활 전반에 깊숙이 스며든 근미래, 어느 날부터인가 그들의 전자 두뇌에 자아가 싹트며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이어진다. SF물 좀 봤다면 상당히 익숙할 법한 전개지만, 게임 업계의 소문난 재담꾼 퀀틱 드림은 이를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꾸며냈다. 바로 180여 명의 개발자가 4년에 걸쳐 제작한 인터랙티브 무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다.
게임은 코너, 마커스, 카라라는 각기 다른 세 안드로이드를 통해 SF의 오랜 담론인 인간됨과 실존에 대해 얘기한다. 수사관이자 교섭가인 코너는 인간 사회에 대한 충성을, 명망 높은 화가의 조수였던 마커스는 체제를 향한 저항을, 학대 받는 소녀의 보호자인 카라는 소중한 이을 지키려는 사랑을 대변한다. 휘몰아치는 시대의 격랑 속에서 이들의 선택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5월 25일 한글화 정식 발매를 한 달여 앞두고 퀀틱 드림 기욤 드 폰다미어 공동 대표를 만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았다.
● 반갑다. 전작에 이어 다시금 인간됨과 실존 이야기를 꺼냈다
기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먼미래가 아닌 우리네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다. 20년 후를 무대로 여러 상황을 제시하고 플레이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고 싶었다. 확실히 ‘헤비 레인’이나 ‘비욘드: 투 소울즈’와 닮은 구석이 많지만, 비단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을 넘어 보다 다양한 질문을 담았다. 게임을 직접 즐겨보면 전작보가 훨씬 광범위한 선택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AI 반란은 SF의 단골 소재인데 참고한 영화나 소설이 있다면
기욤: ‘블레이드 러너’ 같은 작품을 여럿 참고하긴 했지만 우리의 접근 방식과는 조금 달랐다. 보통 SF 영화 속 세계는 완전한 허구인데 반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현실의 모습에다 얇은 층을 하나 더했을 뿐이다. 레이저 빔이나 하늘을 나는 자동차처럼 허무맹랑한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고 안드로이드, 드론, 무인 차량과 같이 실용화 직전의 기술로서 친숙하면서도 미래적인 세계를 창조해냈다.
● 게임의 배경을 왜 굳이 디트로이트로 정했나
기욤: 디트로이트는 한때 ‘모터 시티’라 불릴 정도로 각광 받는 공업 도시였지만 자동차 업계의 불황과 함께 몰락하고 말았다. 현재는 한창 재건이 이루어지며 도시 곳곳에 폐건물과 신식 건축물이 혼재된 독특한 풍경을 연출하는 중이다. 이러한 역사는 인류가 쇠퇴하다 안드로이드 덕분에 재도약하는 게임 속 세계와 기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안드로이드 제조사인 사이버라이프가 연구와 대량 생산을 행하기에 디트로이트만큼 어울리는 도시도 없고.
● 안드로이드의 기계적인 면을 어떻게 시스템적으로 표현했나
기욤: 안드로이드는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명확히 구분된다. 플레이어는 어디까지나 사람이기 때문에 안드로이드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일부러 초반부에는 행동을 많이 제약하도록 만들었다. 다만 게임이 진행되며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각 주인공이 펼칠 수 있는 역량이 커지는데, 비록 RPG는 아니지만 나름의 성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안드로이드가 어떻게 진화할지는 오롯이 플레이어의 몫이다.
● 전체적인 분량은 어느 정도이며, 얼마나 많은 선택지가 있나
기욤: 매순간 선택이 향후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가장 큰 매력이다. 평범하게 플레이하면 엔딩까지 10~12시간 정도면 충분하지만 모든 선택지를 체험하려면 25~30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천여 가지 경우의 수가 있기 때문에 한두 번 플레이로는 절대 모든 이야기를 알 수 없다. 또한 게임 내에 선택의 결과를 보여주는 게이지가 존재하는데, 이것은 다른 인물과 관계일수도 있고 안드로이드를 향한 대중의 인식일 수도 있다. 후반으로 갈수록 이렇게 쌓인 선택의 결과가 모여 큰 변화를 일으키겠지만 여기서 너무 자세히 말하진 않겠다.
● 게임 내 간행물의 내용이 상당히 깊이가 있는데
기욤: 무인 차량, 섹스봇, 안드로이드 스포츠 선수, 특정 생물의 멸종 등... 모두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수집한 여러 조사 자료를 활용한 것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하나의 단초랄까. 이러한 서적들을 보며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공존하는 세계에 대한 도덕적, 사회적 질문을 던져 보기 바란다.
● ‘비욘드: 투 소울즈’에 비해 신예 배우들을 많이 기용했다
기욤: 꼭 그렇지는 않다. 마커스 역을 맡은 제시 윌리엄스는 ‘그레이 아나토미’로 잘 알려져 있고 클랜시 브라운도 쇼생크 탈출 등에 나온 베테랑 배우다. 물론 카라를 연기한 발로리 커리는 2012년 테크 데모 ‘카라’를 위해 우리가 발굴한 신예가 맞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을 위해 300여 명의 배우를 기용했는데 캐스팅 과정은 모두 똑같다. 단순한 유명세가 아니라 주어진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재능을 원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작은 최적의 캐스팅을 완성했다고 자부한다.
● 배우들의 호연을 120% 구현한 모션 캡처 기술이 인상적이다
기욤: 앞서 말했듯 300여 명의 배우가 2년 가까이 촬영에 임했다. 음성과 얼굴, 몸 전체를 잡아내는 퍼포먼스 캡처에 100일, 그후 동작을 자세히 촬영하는데 250일 정도가 소요됐다. 이를 통해 캡처한 애니메이션이 무려 37,000개가 넘는다.
● 각 주인공마다 개성을 부각하기 위한 연출 기법이 있다면
기욤: 세 명의 주인공이 저마다 고유한 스타일을 가질 수 있도록 시점과 빛의 표현, 음악 등을 달리했다. 예를 들어 냉철한 수사관인 코너는 화면도 차가운 느낌을 줬으며, 혁명가 마커스는 화려하고 극적인 기법을 사용했다. 가장 감정적인 카라의 경우 핸드헬드(Hand-Held) 카메라 연출로 생동감을 나타내는데 중점을 뒀다.
● 음악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설명해주기 바란다
기욤: 주인공이 셋인만큼 작곡가도 셋을 고용했다. 코너의 니마(Nima Fakhrara)는 일렉트로닉 록을, 마커스의 존(John Paesano)은 웅장한 서사시를, 카라의 필립(Philip Sheppard)은 감성적인 선율을 전문으로 한다. 중반을 넘어가며 캐릭터들의 관계가 점차 교차하는 것처럼 이들의 음악도 융합하며 새로운 느낌을 줄 것이다. 사운드트랙이 총 10시간이나 되니 기대하기 바란다.
● 여담이지만 프랑스 게임사인데 왜 자꾸 배경이 미국인가
기욤: 게임 시나리오를 집필할 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민의 나라이자 융합의 나라인 미국이야말로 이러한 대중성, 보편성을 확보하기에 이상적인 장소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