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그림에서의 기생충 주제와 줄거리, 메타포 해석 같은 건 아마 넘쳐날테니 놔두겠습니다. 다만 캐릭터 하나하나를 파 보는 재미가 상당하기에 캐릭터 단위로 리뷰를 써 보는 것도 재밌을 거 같았어요
송강호 가족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라면 아무래도 기정이겠죠. 여기도 팬이 많은 거 같고.
가족 모두가 부잣집 가족에게 굽신대고, 특히 기우는 선생임에도 불구하고 부잣집 분위기에 계속해서 주눅들고 자신이 부자 집단에 끼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 반면, 기정이는 부잣집 사람들을 상대로 당당하고 갑질마저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근본적인 부분에서 다른 가족들과 차이를 보이는 데 바로 기생충 가족들이 모두 부잣집 거실에서 술판을 벌일 때 일입니다.
우선 기우가 기정이를 상대로 '목욕을 하고 있는데 마치 부잣집 일원인 것 마냥 분위기가 어울리더라'라고 떡밥을 던지죠
이후에 나머지 가족 셋이 실직한 윤 기사에 대해 연민의 감정을 표하며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 '더 좋은 사장 만났을 거야'라면서 덕담?을 할 때도 기정이는 발끈하면서 '우리 가족한테나, 나한테나 신경 써라'라고 말합니다
흙수저 가족들은(양쪽 다) 자기들끼리 싸우고 증오하면서도 연민의 감정과 미안함 등을 숨기지 못하는 걸 알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서로 같은 인간이라고 여기고 근본적으로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문광은 죽기 직전에도 '충숙 언니 나쁜 사람 아니야'라고 말하죠.
그런데 기정이는 이런 흙수저들과 달리 이기적이고 선을 잘 긋는 부잣집 가족과 유사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기생충 가족 내에서 가장 탈 흙수저적이고 실제로 흙수저를 탈출할 수 있을 만한 마인드와 카리스마까지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별개로 같이 본 다른 사람들은 다들 왜 그 가족이 실직한 전 가정부 문광에게 문을 열어준 건지 의아해하던데 저는 그 이유가 '미안함'과 '연민' 때문이라고 봅니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흙수저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연민과 공감 때문에 문을 열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구조적으로도 기생충 가족이 술파티를 벌이며 윤 기사에 대한 연민을 표출했으니 그 다음으로 나올 대상은 당연히 문광일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반대로 부자 가족은 이런 흙수저들에 대해 예의바를지언정 절대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고 관계를 끊고 대체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지요. 그 착해다는 연교씨도 사람 자르는 데는 거리낌이 없었으니.
잡설이라 순서 상관없이 말했다만 어쨌든 연교가 기정이를 대하는 모습이나 의존적 관계가 심화되는 것을 보더라도 기정이는 분명히 계급상승을 할 만한 요소가 다분한 캐릭터였습니다.
변기 위에서 담배피는 모습 또한 이러한 이미지를 가중시켜 줍니다. 다른 가족들이 물과 현실에 치이고 있을 때 기정이는 그나마 집에서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서 이를 초월한 모습을 보여 주죠.
기우가 가짜 돌에서 자기 자신을 비춰 보고 마당에서 파티를 벌이는 부잣집 일원들과 자기 자신과의 거리감을 실감하며 지하로 내려갈 때 기정이는 지하로 내려가려다가 연교에게 붙잡혀서 부자들 가운데로 나가게 됩니다. 대비적으로 나타나는 카메라워킹을 봐도 이걸 강조한 걸로 보입니다. 기정이가 케이크를 들고 사람들 가운데로 나가는 모습은 뭘 어떻게 봐도 사교계 데뷔고, 이미지적으로도 기정이의 상승세가 최고조에 달한 시점이죠.
그 순간 나타난 지하실 남편 근세한테 칼을 맞고 죽은 장면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부잣집 사람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근세가 살의의 대상으로 기정이를 지목하고 죽인 것은 기정이의 판타지적인 신분 상승이 현실에 의해 완벽하게 발목을 잡힌다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자들의 일원이 되는 그 순간(케이크 전해주기 직전) 현실이 기정이를 끌고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이죠.
조금 억지스러운 해석을 덧붙이자면 감독이 '이런 판타지는 없다'고 선을 그은 거라고 볼 수도 있겠고.
그래서 다른 사람이 죽은 것보다도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거라고 봅니다. 명확히 설명은 못 하더라도 뭔가 될 거 같은 느낌, 희망을 주던 기정이가 한 순간에 모든 걸 잃게 되는 장면이니까.
아버지와 어머니는 전형적인 흙수저 캐릭이었다면 기정이와 기우는 현대 사회의 새로운 형태의 흙수저를 조명하는 아주 신선한 형태의 캐릭터라고 생각되네요
더 생각나는 건 3회차나 4회차쯤 하고 나서 적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