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를 지나 도착한 식당 역시 전기 조명은 하나도 없었고 불이 꺼진 샹들리에 덕분에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촛불이 켜진 식탁으로 향하던 나는 자리에 앉은 다섯 명의 남녀를 발견했다. 그들은 전채 요리로 나온 연어 샐러드를 드레싱이 묻은 더러운 입 안에 쑤셔 넣으며 쉴 새 없이 지껄이고 있었는데 대개 평범해 보였고 그 중 한 남자는 길거리의 부랑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행색과 몹시 초라했다. 그 는 말없이 접시에 놓인 연어를 골라내는 족족 빠르게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좀도둑 같은 눈알을 굴려댔다. 히치콕과의 독대를 예상한 나로서는 부아가 치밀었다. 날 속인 건 둘째 치고 이런 인간들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해야 하다니!
“이게 뭡니까? 다른 손님이 있단 이야긴 없었잖아요.”
난 식당 입구 쪽의 집사에게 다가가 따졌다.
“일단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주시죠. 원치 않으시면 댁으로 모셔드리겠습니다.”
내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한 태도에 난 헛웃음이 나왔다.
“뭐라고요?”
“댁으로 모셔다드리죠.”
“장난해요? 바쁜 사람을 불러다 놓고 일없으니 이젠 꺼지라고?”
“그럼 일단 대부님께서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세요. 전 지시를 따를 뿐입니다.”
“그 인간이 죽으라면 죽을 거요?”
그는 대답 대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불쌍한 거지에게 적선을 하는 신사처럼.
내가 식당을 빠져나가려는 찰나, 등 뒤에서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머리 위로 환환 빛이 쏟아졌다. 샹들리에 전등의 불이 켜졌던 것이다. 여태껏 난 이 저택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뒤를 돌아보자, 히치콕이 두 하녀의 부축을 받으며 식탁의 상석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머리 위로 어두워서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그림이 드러났는데 그건 바로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였다. 머리가 잘린 아들의 몸뚱이를 움켜쥐고 입안으로 집어넣는 미치광이 신을 식당에 걸어놓았다. 그가 식탁에 앉은 이들을 내려다보며 인육을 음미할 수 있도록!
역시 히치콕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식당 벽에는 각종 엽총과 여러 마리의 사슴, 곰 머리 박제가 걸려 있었는데 단테가 묘사한 지옥처럼 갈수록 기괴한 광경이 펼쳐질 것만 같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집주인의 등장에 다들 어쩔 줄 몰라 했고 심지어 몇몇은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는 사람도 있었다. 그나마 안경을 썼고 학자답게 생긴 남자가 비교적 멀쩡해 보였다.
“작가 양반! 이리 앉으시오!!”
히치콕의 끔직한 고함소리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작가 양반이라니. 나는 짜증이 나긴 했지만 식탁에 앉은 머저리들이 나를 무슨 횡단보도에서 아이를 친 운전자처럼 노골적으로 바라보고 있던 터라 일단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난 최대한 힘 있게 걸으며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난 부랑자로 의심되는 남자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내 앞에 놓인 연어샐러드 접시를 내려다보았는데, 포크로 헤집은 흔적과 함께 훈제 연어가 종적을 감춘 상태였다.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놈은 허공을 향해 시선을 둔 채 코를 연신 훌쩍였다.
곧이어 하인과 하녀들이 본 요리가 담긴 트롤리를 끌고 왔다. 요리를 내려놓고 포도주를 따르는 하인과 하녀는 4명에 불과했지만, 다른 4명은 식당 입구의 양 옆을 지키듯 서 있었다. 그들 앞에 선 젊은 집사는 성문의 수문장처럼 꼿꼿하게 선 채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세 명의 남자(나를 포함한)와 세 명의 여자들은 식탁 위에 하나 둘 올라오는 각종 요리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군침을 흘리면서도 히치콕의 눈치를 보느라 함부로 음식에 손을 뻗지 못했다.
후추가 뿌려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양갈비, 완두콩 소스를 겻들인 푸아그라, 얇게 썬 토마토에 올린 모짜렐라 치즈와 바질, 두툼한 훈제 소 혓바닥 구이, 바게트 빵에 얹어진 윤기가 흐르는 신선한 캐비어. 그들과 나는 보르도 와인이 잔을 채우는 맑은 소리를 들으면서도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눈을 끔뻑거리는 히치콕을 바라만 봐야했다. 심지어 내 연어를 훔쳐 먹은 남자도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눈알을 굴렸지만 함부로 손을 뻗지 못했다. 그때 한구석에 놓인 괘종시계 타종을 울리며 7시 정각을 알렸다. 그제서야 히치콕의 지퍼 같은 입이 열렸다.
“식사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껏 드시죠.”
그가 와인 잔을 어깨 위로 들어 올리자 사람들은 서둘러 잔을 드는 시늉만 하고 곧장 음식을 향해 두 팔을 분주하게 놀리기 시작했다. 허리와 엉덩이까지 들썩거리며 음식들을 자신의 앞 접시로 가져와 포크와 나이프로 큼지막하게 썰고 입안에 우겨넣었다. 그리곤 기름기가 묻은 손으로 보르도 와인을 목구멍에 쏟아 부었다. 나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짐을 정리하느라 아주 허기 진 상태였으니까. 그런 동안 히치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와인을 음미하며 이 진기한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집기와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만 들리는 정적 속에서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음식에 독을 넣었네!!”
다들 갑자기 전투를 멈춘 병사들처럼 포크와 나이프를 손에 들고 히치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얼빠진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는지 그는 왁자지껄하고 거슬리는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농담일세!! 캬하하!!”
나는 화가 치밀어서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이봐요!! 이 무슨 개 같은 경우입니까! 난 당신과의 계약 때문에 이 자리에 귀중한 시간을 내서 왔어요. 그런데 이딴 장난을 쳐요?”
그러자 손님들 등 뒤에 서 있던 하녀와 하인들이 무뚝뚝하고 살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식당 입구 쪽에 서있던 집사가 부리나케 달려와 귓속말을 하려했지만 히치콕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손짓을 했다. 당연히 알아들어야지. 그렇게 크게 소리 질러댔는데.
“이미 계약서는 준비됐네!”
그 말과 함께 하인과 하녀들이 계약서를 각자의 접시 옆에 올려놓았다. 이 자리에 초대된 5명의 머저리들도 계약서를 건네받았다. 난 2장짜리 계약서를 급하게 훑어보았다. 계약기간은 한 달이며 이 저택에 지내는 동안 자신을 위해 희곡 몇 편(정확한 편수가 아니라 ‘몇 편’으로 기재 되어 있었다.)을 써달라는 요구사항이 적혀있었다. 희곡? 희곡이라니!
“뭔가 착각하나 본데 난 소설가지 극작가가 아니오. 더는 못 참겠군.”
난 그를 노려보며 종이쪼가리를 식탁 아래로 흘려버렸다. 히치콕은 역시나 심드렁한 표정으로 천천히 뒤로 젖혔다. 계약금이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난 화가 잔뜩 나서 이 기괴한 저택을 벗어나 내 새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가서 새 가구들을 둘러보며 내 탁월한 취향에 만족해하고 하얀 침대보 위에 드러누워 허우적대고 싶었다.
“옴마나!! 100만 달러라니!”
내가 자리에서 몇 걸음 걸어 나왔을 무렵 등 뒤에서 한 여인의 외침이 들려왔다. 100만 달러? 100만 달러라고? 나는 서둘러 자리로 돌아와 앉아 바닥에 떨어진 계약서를 주워 뒷장을 펼쳤다. 지불금액에 분명히 1,000,000$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뒤에 붙은 0이 몇 개인지 몇 번씩 확인하는 동안 피가 들끓었다. 그러던 중 의문이 들었다. 문학과는 담을 높게 쌓아둔 게 틀림없는 이 천박한 인간들도 나와 같은 계약서를 건네받았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거지? 이제 막 빛을 본 작가라고 날 조롱하는 건가? 하지만 그걸 위해 600만 달러를 쏟아 붓는 악취미를 가진 작자라면 나로선 아주 고마운 일이다. 난 심각한 표정을 쥐어짜며 계약서를 훑어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 대본들로 뭘 하려는 겁니까?”
집사의 귓속말을 전해들은 히치콕이 말했다.
“개인 소장용이오.”
뭐 이런 미친 인간이 있나 싶었다.
“제 이름으로 출판되거나 공연되지 않는다는 조항을 추가한다면 생각해보죠.”
나는 팔짱을 끼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히치콕이 귓속말을 전해 듣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금세 초조해졌다. 다들 하녀에게 건네받은 펜으로 계약서에 서명을 휘갈기고 있었으니까.
“저 분께 새 계약서를 가져다 드리게.”
다행히도 그가 집사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연재] 드렁크 타이핑 3화 - 귀머거리의 저택(2)
루리웹-5897898491
추천 0
조회 192
날짜 2024.03.03
|
루리웹-5897898491
추천 0
조회 133
날짜 2024.03.02
|
Xatra
추천 0
조회 206
날짜 2024.03.02
|
루리웹-5897898491
추천 0
조회 120
날짜 2024.03.01
|
루리웹-5897898491
추천 0
조회 101
날짜 2024.02.29
|
루리웹-5897898491
추천 0
조회 123
날짜 2024.02.28
|
페르샤D
추천 0
조회 117
날짜 2024.02.28
|
루리웹-5897898491
추천 0
조회 121
날짜 2024.02.27
|
루리웹-5897898491
추천 0
조회 107
날짜 2024.02.26
|
루리웹-5897898491
추천 0
조회 95
날짜 2024.02.25
|
루리웹-5897898491
추천 0
조회 106
날짜 2024.02.25
|
Xatra
추천 0
조회 144
날짜 2024.02.24
|
Xatra
추천 0
조회 132
날짜 2024.02.24
|
Xatra
추천 0
조회 74
날짜 2024.02.24
|
Xatra
추천 0
조회 154
날짜 2024.02.24
|
루리웹-5897898491
추천 0
조회 153
날짜 2024.02.24
|
페르샤D
추천 0
조회 138
날짜 2024.02.21
|
페르샤D
추천 0
조회 176
날짜 2024.02.14
|
미친돌고래
추천 0
조회 225
날짜 2024.02.09
|
미친돌고래
추천 0
조회 168
날짜 2024.02.08
|
미친돌고래
추천 0
조회 206
날짜 2024.02.07
|
페르샤D
추천 1
조회 689
날짜 2024.02.07
|
미친돌고래
추천 0
조회 175
날짜 2024.02.06
|
미친돌고래
추천 0
조회 186
날짜 2024.02.05
|
미친돌고래
추천 0
조회 207
날짜 2024.02.04
|
미친돌고래
추천 0
조회 171
날짜 2024.02.03
|
미친돌고래
추천 0
조회 208
날짜 2024.02.02
|
미친돌고래
추천 0
조회 407
날짜 2024.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