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말해도 돼?”
내가 쓴 원고를 내려놓은 조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연하지.”
라고 말하긴 했지만 정말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누가 뭐래도 상관없지만 조니는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평소에 거짓말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내 취향은 아니야.”
“그렇군.”
나는 실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내 서운함이 치밀었다.
“그런데 도대체 네 취향이 뭐지? 정확히 말해봐!”
“그것까지 설명해야 해? 마감 시간도 훌쩍 지났고... 정말 피곤해.”
“얼버무리지 마! 구체적으로 뭐가 어땠는지 난 이 자리에서 들어야겠어!”
내 집요한 추궁에 조니는 한숨을 쉬었다.
“그냥... 재미가 없어.”
그 말을 들으니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결국 쓰레기라는 거군.”
“잠깐!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건 알잖아? 다른 사람들 반응은 다를 테고... 게다가 난 뭔가를 평가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구.”
“다른 사람 의견이니, 익숙하지 않다느니 하는 잡소리 집어치워!! 재미가 없다면 그건 쓰레기야. 하지만 이거 알아둬!! 난 내 쓰레기를 사랑해. 아주 끔찍하게 아낀다고!!”
난 절규하듯 외쳤고 결국에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
갑자기 안소니 홉킨스의 일화가 떠오른다. 그도 한때는 알콜중독자였다. 술에 취한 어느 날, 깨어나 보니 애리조나의 낯선 곳에 있었다고 한다. 도무지 자신이 어떻게 이곳까지 흘러들게 되었는지 기억 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술을 끊었다. 만약 내가 그였다면, 곧장 마트로 가서 보드카를 손에 들고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으로 향했을 것이다. 광활한 대자연과 보드카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술을 친구로 여긴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누군가는 술이 진정한 친구라고 떠들어 대지만 그건 명백히 개소리다. 그들은 자기가 무슨 소릴 하는지 쥐똥만큼도 모른다. 그저 어디서 주워들은 소리를 지껄일 뿐이다. 술은 그저 가솔린 차량에 들어가는 디젤 연료라고 볼 수 있다. 엔진을 망가뜨리고 연료공급이 잘되지 않는 상태로 만든다. 그렇게 망가진 고철덩어리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뿐이다.
신인문학상을 탔을 무렵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게임처럼 느껴졌다. 그땐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멀쩡했다. 이 세상이 나와 함께 리듬을 맞춰 뛰고 있다고 믿을 정도로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내키지도 않을뿐더러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빈틈은 채워 넣을 수 있는 뻔한 이야기니까.
그리고 몇 년 동안 술만 퍼마셨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술을 끊기로 결심한 적도 있었지만 며칠 안 가 그건 불가능하단 걸 깨달았다. 그래서 타협이란 걸 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글을 쓰기로. 지금은 맨 정신으로는 단 세 줄도 쓰기 힘들다. 이런 인간이 쓰는 글은 상품이 될 수 없다. 그저 배설물에 불과하다. 다만 운이 좋으면 비료로 쓰일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
오늘 오후, 조니가 보낸 등기가 집 앞에 도착했다. 내가 타이핑한 원고들이 동봉되어 있었다. 나는 베란다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그것들을 읽어보려 했지만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관뒀다. 게다가 이중 창문을 단단히 잠가뒀는데도 차 소리와 길거리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어 들어와 신경을 긁어댔다. 몸은 나른하고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감각은 평소보다 훨씬 또렷했다. 그래서 더 미칠 지경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약을 먹었대도 말이다. 잠깐! 약을 먹었던 게 맞나? 염병할! 도저히 모르겠다.
얼마 전, 조니를 괴롭힌 사실 때문에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아무리 그를 친구라 생각해도 그로선 그저 짜증나는 손님에 불과하겠지. 난 며칠간 그의 바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후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조니를 찾아가 괴롭힐 것이다. 나란 인간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배가 고팠다. 난 식탁 위에 올려둔 생크림 케이크를 가져와 먹었다.
그 케이크는 옆집에 사는 젊은 부부가 가져다준 것인데 얼마 전 키우던 고양이가 죽었다며 내게 준 것이다. 내게 고양이를 맡기고 여행을 떠난 적이 몇 번 있었기에 그동안 감사의 표시와 함께 녀석의 죽음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지내는 동안 나를 경계하긴 했어도 소파를 긁는다거나 바닥에 오줌을 갈기지 않는 얌전한 고양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생크림 케이크일까?
배를 채우자 갑자기 뭔가를 두들기고 싶어졌다. 나는 벽장을 뒤져 안쪽에 깊숙이 처박힌 붉은색 올리베티 발렌틴 타자기를 찾아냈다. 이 물건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떠날 때 깜빡하고 집에 남겨둔 것이었는데 그녀는 다시 찾으러 오지 않았다. 플라스틱 케이스를 벗겨 타자기를 분해하고 내부를 뜯어보자 작은 거미 한 마리가 집을 만들어놓고 활자 막대 사이를 활보하고 있었다.
나는 거미를 손등에 올린 채 베란다 창문을 열고 ‘후-’ 불어서 밖으로 날려 보냈다. 죽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알콜을 적신 솜을 가는 집게로 집어 타자기 내부를 구석구석 청소했다. 거미를 집에서 내쫓았고 손에는 기름때가 잔뜩 묻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발렌틴 타자기가 하얀 원고에 글씨를 채워놓는 모습은 정말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으니까.
[연재] 드렁크 타이핑 15화 - 발렌틴 타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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