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 중에 '혈분경'이라는 위경(가짜 경전)이 있음.
이 위경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여성은 출산할 때
부정한 피를 흘려 땅과 물을 더럽히는 죄를 짓기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니 이를 막기 위해서는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위경임.
근데 이 경전, 아마 불교 믿는 유게이들이라 해도
처음 들어보는 경전이 있을 거임.
왜 그러냐면, 이 경전은 이상할 정도로 한국에서만 보이지 않음.
정작 바다 건너 일본에서는 중국 못지않게 대히트를 쳤음.
깨끗함/부정함을 엄청 따지는 일본 무속신앙인 신토 영향을 고려해도
일본에서 혈분경은 월경을 부정하게 여기는 형태로 변형된
일본판 혈분경이 따로 만들어져 유통될 정도였거든.
근데 한국은? 혈분경의 존재는 물론 유통된 흔적조차 안 보일 정도임.
한국 무속에서도 해산부정 등 출산, 월경 등을 부정하게 여기는 문화가 있는데
한국에선 부모의 은혜를 강조하는 위경인 '부모은중경'은
다른 동북아 유교문화권과 마찬가지로 히트했어도 '혈분경'은 아예 존재감이 없음.
왜 그러는지는 미스터리.
혈분경 연구한 학자분도 왜 한국에서만 혈분경이 유독
존재/유포하지 않았는지 연구자들 관심 끌 거 같다 할 정도면
진짜 미스터리긴 함....
고려시기네. 송이랑 지속적으로 교류할때인데. 자체적으로 컷했다는건 너무 조상님들을 믿는걸까. 안거쳐갈 이유가 하등 안보이는데.
어느 종교나 그렇듯 한국의 불교도 고려시기쯤 오면 토속신앙과 많이 섞였을건데. 그로 인해 자체적으로 팅겨나간거 아닐까. 교리적으론 문제없는데 대중의 수용성에서 팅겨나가거나 변질되는 교리같은건 흔하자나.
그러면 어떤 교리적인 이유가 아닌, 개인, 왕이나 국사의 심기를 거슬렸다던가 같은 사적인 이유 외엔 납득가능한 설명을 찾기 힘들거같은데. 근데 아무리 고려사가 역사가 없다지만 송시대 기록으로 저런건 남을법도한데. 특히나 소동파같은 양반은 고려까기위해 뭐든 찾아낸 양반이니지배층의 심기를 거슬려 금서지정 이런건 더 기록으로 남겼을 법도 한데 없다니까 신기하네.
신기하네. 위경이 나온 예상시기가 언제길래? 삼국시대면 무조건 받았을거같고. 최소 통삼은 되야 우리나름의 불교리 세우니 그떄 이후 경전인가?
혈분경이 정확히 언제 형성된 건지는 논란이 좀 있긴 한데, 관련 논문 보면 혈분사상의 등장이나 도교판 짝퉁인 혈호경의 등장시점 등을 고려할 때 서기 936년 전후~1194년 이 때로 봄.
죄수번호-745705044
고려시기네. 송이랑 지속적으로 교류할때인데. 자체적으로 컷했다는건 너무 조상님들을 믿는걸까. 안거쳐갈 이유가 하등 안보이는데.
내가 봐도 그게 미스터리임;; 자체 컷이라 보기엔 그래도 들어오는 거까진 있을 수 있을텐데 그것조차 안 보이니.
참조논문은 이거 송요후, 中國에서 血盆經의 전개에 관하여, 명청사연구 25(2006년)
죄수번호-745705044
어느 종교나 그렇듯 한국의 불교도 고려시기쯤 오면 토속신앙과 많이 섞였을건데. 그로 인해 자체적으로 팅겨나간거 아닐까. 교리적으론 문제없는데 대중의 수용성에서 팅겨나가거나 변질되는 교리같은건 흔하자나.
본문에도 언급했지만 여성과 여성의 피를 더럽게 여기는 관습은 한국 토속신앙에도 있음. 그래서 더 미스터리란 거. 대중의 수용성이란 조건이 충분하거든. 근데 들어온 흔적조차 없으니. 토속신앙과 많이 섞였는지 문제는....고려 이전 신라 불교부터가 남말할 처지가 아니라서 논외고.
진짜뭐지? 국사가 있던 나라니, 왕실이나 왕실승려 국사같은 분이 읽어보곤 금한거아닐까. 송에서 그리 책을 수입하던 나라인데 그게 없을 이유는 이제 그거밖에 안보이는데
그렇게 보면 더 꼬이는 게, 그랬다면 중국에서 사전에 차단되거나(중국도 자체적으로 나름 위경 많이 걸러냄) 일본에서라도 차단되었어야 하는데(전근대 일본 불교라고 마냥 교학에 손놓지는 않음) 그게 아니고 한국에서만 차단됨(...).
죄수번호-745705044
그러면 어떤 교리적인 이유가 아닌, 개인, 왕이나 국사의 심기를 거슬렸다던가 같은 사적인 이유 외엔 납득가능한 설명을 찾기 힘들거같은데. 근데 아무리 고려사가 역사가 없다지만 송시대 기록으로 저런건 남을법도한데. 특히나 소동파같은 양반은 고려까기위해 뭐든 찾아낸 양반이니지배층의 심기를 거슬려 금서지정 이런건 더 기록으로 남겼을 법도 한데 없다니까 신기하네.
최소한 그런 사적인 이유면 00가 들어왔는데 위경이라 하여 버려졌다 같은 기록이라도 있을 법한데 없으니...만일 신라의 국력이 왕성할 시대 들어왔다면 신라불교가 토착문화 영향으로 비구니 최고책임자인 도유나랑이 비구 최고책임자인 대도유나보다 높던 나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쳐도 '중국에서 들어온 혈분경이 도유나랑의 심기를 거슬렀다'정도의 기록이라도 남을 테고, 뭣보다 혈분경의 상한연대는 고려가 후삼국 통일하던 936년 즈음을 넘을 수가 없는데 이 때는 신라식의 여성 상위 불교 전통은 많이 무너졌을 때라 굳이 안 받아들일 이유도 없고.
우와...원래 불교 이야기 많이 올리는 유게이였구나...땡큐
전공이라 ㄲㄲㄲ 암튼 ㄳ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