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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처음 붓 잡은놈이 제일 광기인 탓에
자기 귀양가는 것까지 적은 트루 광기
- 일단 다 적어놓으면 후임들이 알아서 거르겠지 뭐 - 악! 예 로부터선임들이하는것에서더했을망정빼지는말라고했습니다 사관님!!
수백년 동안 그랬으면 그냥 그게 공식이 아닌지ㅋㅋㅋ
무슨 생각이있으니 저렇게 한거겟지 처음작성자 : 이거 걍 다적어야하나? 모르겟다 다적자 그냥
내가 조선왕실 기록이 무조건적으로 다 기록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도 인터넷으로 떠드는 이야기만 믿고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드라. 코로나때도 막 행선지랑 가게들 죄다 재난문자하다가 나중되니 그냥 몇명이라고만 뜨게끔 나옴. 모든 처음하는 일은 어수룩하고 죄다 열심히 하다가 나중되면 효율과 속도를 중시해서 좀 간략하게 되는게 인간사더라.
태종이 잠깐 외직으로 돌렸다가 예부로 다시 들어와서 일하고 세종시절엔 서울시장격인 한성부판윤을 함. 근데 성격 존나 깐깐했던 모양인지 이 양반이 저자거리 아녀자 하나하나한테까지 모두 법적용을 시키려한다며 사간원에서 직을 바꾸라고 간언함ㅋ
무슨 생각이있으니 저렇게 한거겟지 처음작성자 : 이거 걍 다적어야하나? 모르겟다 다적자 그냥
하필 처음 붓 잡은놈이 제일 광기인 탓에
인형사 로젠
자기 귀양가는 것까지 적은 트루 광기
이양반 어케 죽었는지 기록있음?
태종이 진짜 인내심의 화신임을 알 수 있음
7월 11일. 임금님이 나를 변방으로 쫓아냈다
TooFast
태종이 잠깐 외직으로 돌렸다가 예부로 다시 들어와서 일하고 세종시절엔 서울시장격인 한성부판윤을 함. 근데 성격 존나 깐깐했던 모양인지 이 양반이 저자거리 아녀자 하나하나한테까지 모두 법적용을 시키려한다며 사간원에서 직을 바꾸라고 간언함ㅋ
후손들이 그덕을 봤지 ㅋㅋ
한결같은새끼라 막상 써먹기는 좋았을것같다..
레알 광기 그 자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고려실록도 있었으니(현재는 소실) 그거 참고한거 아닌가
고려는 나라 자체가 광기니까 민인생이 그걸 참고한거면...
수백년 동안 그랬으면 그냥 그게 공식이 아닌지ㅋㅋㅋ
- 일단 다 적어놓으면 후임들이 알아서 거르겠지 뭐 - 악! 예 로부터선임들이하는것에서더했을망정빼지는말라고했습니다 사관님!!
적자
악폐습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랑도 비슷하네 ㅋㅋ
일단 적자!
그런 광기가 후손들에게 바꿀 수도 없는 귀중한 자료가 되어주었지
쓰지말라 하셨다
물론... 단종실록은 이래저래 신뢰도가 박살이긴 하지만...
규정 같은거 중간에 끼워넣기는 쉬운데 빼기는 존나게 힘듦. 잘 모르겠지만 뭔가 이유가 있겠지 & 이거 없앴다가 문제 생기면 니가 책임질거임 -> 그대로 두자.
사실 태종때가 과했던거고 그 이후는 좀 가려서 적긴 함
내가 조선왕실 기록이 무조건적으로 다 기록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도 인터넷으로 떠드는 이야기만 믿고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드라. 코로나때도 막 행선지랑 가게들 죄다 재난문자하다가 나중되니 그냥 몇명이라고만 뜨게끔 나옴. 모든 처음하는 일은 어수룩하고 죄다 열심히 하다가 나중되면 효율과 속도를 중시해서 좀 간략하게 되는게 인간사더라.
저 영상에 나온 임용한 박사님도 하신말이지만 모든 기록을 다 기록하는건 역사가 먼지 역사 기록이 먼지도 모르는 나라라는 소리인건데 이상하게 조선은 하나하나 다 기록 했다는 신앙에 빠져 있는 사람이 꽤 있음 당장 현대 시대에 기록을 하나하나 다 적으라고 하면 이게 먼 미친짓이냐고 욕할거 같은데 말이지
그냥 국뽕酒에 취해서...
나도 봄ㅋㅋ 임박사님 좋아해서 나온거 거의 다봄ㅋㅋ 병자호란 책도 재밌음.
그런님 을위해 승정원 일기가 있읍니 다. 헤헷.
삭제된 댓글입니다.
점장도도가마루
그건 이전따부터 그랬긴 했는데 영조때는 국문 기록도 적지마라 하니까 정말 안적었던 때긴 하지
엄청난 기록들 후손들은 고마울뿐이지 ㅋㅋ
여러개 만들길 진짜 잘했지 딱 하나 남았으니
영락제에게 곧 사형 당할 죄수가 니꼬삼을 한걸 명나라는 안적었는데 거기파견간 조선사관이 적어 남겨서 조선왕조실록엔 명나라 영락제꺼는 작다라는게 적혀있을정도임
일단 다 적고 보는거구만.... 그래도 뭐 시시콜콜한거 다 아니 역사적 가치는 충분.,
실제 만드는 과정에서는 세조 프로파간다가 된 단종실록이나 예종대에 대신들 까는 사초 빼돌리다 걸려서 처벌받은 사건 등 눈치보면서 넘어가는 것도 있었지만, 반대로 실록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새 실록을 만들때 옛날 실록을 폐기하고 새 실록을 찍은게 아니라 옛 실록과 새 실록을 같이 두고 "후대의 니들이 직접 읽어보고 누구 말이 맞는지 판단해라."라 하는 것은 본받을 점이 있지.
보통 A~Z 까지 적자면 A-b -C 까지만 적고 나머지는 그냥 놔두는데 A-Z 까지 다적다보니 다음 세대는 Z 는 빼도 되지않을까 하면서 뒤에서부터 조금식 줄여온거라.. 보통은 앞에서 짤라서 이정도면 됬지 인데 초반부터 광기인 A~Z 라서 뒤에서 부터 줄인게 지금 조선왕조 실록임 ㅋㅋㅋㅋ
신기한게 이 짤은 태종실록이 경험이 없어서 이것저것 다 적은거지 그 이후로는 안 그랬다고 적혀 있는데 짤을 안 보고 댓글을 다는지 아 태종 때 다 적어서 그 이후로도 다 적었구나!라고 인식하는 애들이 계속 나옴. 신기해.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역사서]가 아니라는데 한계가 있슴. 현대의 국회 속기록과 똑같이 [궁궐 속기록]일뿐. 다만 조선왕조가 상당히 오래 유지된 왕조인데다가, 기록이 다수의 RAID-1 싱크로를 통해 잘 살아남아 분량이 굉장함. 그래서 궁궐 내에서 나온 이야기와 벌어진 일들은 자세하게 잘 적혀있는데, 궁궐내에서 업급되지 않는 내용은 당연히 아무것도 없고, 시대/사회상이나 궁궐 밖 먼데의 생활상... 특히 군사/전투에 대한 세부 내역이 거의 없슴. 정치와 권력구조 및 궁궐내 사건사고, 암투 등등은 많이 알기 쉬움. 임진왜란-병자호란즈음에 유럽에선 전투보고서가 전투중에도 시간단위로 세부사항이 적히던것에비해 그저 다 끝나고나서 지휘관이 간략하게 누구덕에 누굴이겼다같은 감상문 수준에 누구누구는 상/벌 줘야한다는 인사평가. 역사서라고하면 시대에따라 언제는 무슨시책이었고 행정정책이 어땠고 등등의 정리된게 있어야하는데, 그냥 속기록이다보니... 회의때 사람들이 언급한 대사를 갖고 추론해야함. 예를들어 'XX지방에 홍수로 세를 내기 어려우니 세율을 2할로 줄여줍시다' 쓰여있으면 아 이때는 원래 세율이 2할보다 높았구나. 그럼 몇할이지? 모름. 그 이전시대의 대화를 다 찾아서 '그 지역의 세율을 [언급]한' 대화를 찾아야함. 근데 그렇게 필요한 대화를 다 했을리가 없고, 시대 역사를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는거. 그러다보니 민간에서 일부 선비들이 기록한 야사나 개인기록들을 많이 참조해야하는데... 언제나 개인기록은 신뢰도나 교차검증 및 여러 문제가 있지. 그리고 1차 현장속기 기록인 승정원일기를 정리해서 2차 속기록인 실록을 만드는 과정 자체에서도 문제가 발생한것이... 왕조 초기와 달리 사관자체가 점점 '의식이깨어있는진보적인정의로운'존재를 자처하게 되면서 기록 정리과정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선택적으로 정리해 남기기도하고, 주석으로 사관 자신들의 사적인 견해를 적는데... 이게 갈수록 점점 분량이...
실록은 실시간 기록이 아니라 왕의 사후에 신하들이 모여서 왕의 생전에 있었던 많은 기록(승정원일기등등)을 바탕으로 적는것. 그탓에 파벌에 따라서 사실과 약간 다르게 적히는 경우도 있고 많은 내용이 축약되기도 한다. 태종실록에 있는 기록들은 그래서 미스테리이기는 함. 이걸 왜 안짤랐지???
미인생 저사람 관상이 안봐도 맑은눈의 광인일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