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무스메는 기본적으로 완력이 강하다.
유키노 비진이나 스윕 토쇼 처럼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소녀라 해도 그 작고 유약해 보이는 몸 안쪽에는 타고난 내장형 압축 근육이 가득 들어차 있는데, 본격화를 거쳐 레이스에 나갈 정도로 단련된 우마무스메라면 그 힘은 더욱 강력해진다.
"흐음..."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재능과 개성을 가지고 있듯 트레센에도 특출나게 완력이 강한 존재들이 있다.
날뛰는 소를 제압하는 히시 아케보노, 박치기로 기와 40장 격파의 카와카미 프린세스, 킥력 측정불가라는 기록을 가진 비르시나, 굶주린 상태의 오구리 캡 등이 바로 그러하다.
이들은 학생들 사이에서 반쯤 농담삼아(오구리는 사실상 숫자 맞추기다)괴력의 4천왕이라고 불리우고는 하는데 4천왕이 있다면 당연하게도 마왕이 존재해야 하는 법.
그리고 그 마왕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젠틸돈나다.
"흐음..."
고압적인 귀부인 젠틸돈나는 지금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조금 전 파워 트레이닝에서 골드 쉽과 시비가 붙었기 때문이다.
"어이, 고릴라! 이번에는 또 뭘 박살낸거야?"
"흥, 오늘도 참 천박하시군요. 가볍게 친 샌드백이 터져버렸을 뿐이에요."
"넌 힘 조절이라는걸 안하냐? 머리 빡빡 밀고 취미로 히어로 활동이라도 하는건 어때?"
"어쩜 한마디 한마디에 이리도 천박함이 묻어나올 수 있을까요. 제가 당신 보다 강한 것이 질투가 난다면 그냥 그렇다고 말 하시면 될 것을"
사실 골드 쉽이 시비를 거는 것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고, 실제로도 젠틸돈나는 그저 귀찮을 뿐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적당히 상대해주면 제풀에 지친 골드 쉽이 투덜대며 떠나겠지 라고 생각했으나 다음에 나온 이 한 마디가 그녀의 속을 매우 크게 긁고 말았다.
"자기 트레이너랑 스킨십도 못할 정도로 무식한 힘은 필요 없거든?"
"하아–?"
꿈틀.
순간적으로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가 사라졌다.
"제가 강인한 것과 트레이너씨가 무슨 상관 인가요?"
"왜 상관이 없냐? 레이스에서 이기고 서로 껴안으면서 기쁨을 나누기는 커녕 악수조차 못할걸? 네 우악스러운 손이 트레이너의 연약한 몸을 으스러트릴테니까! 트레센의 안젤로 바위가 되어버릴거라고!"
"...흥. 트레이너와 접촉은 레이스에 필수도 아니잖아요?"
"적어도 나는 내 트레삣삐랑 엄청 부대끼면서 재미있게 논다고! 너는 못하는걸 잔뜩 하면서 말이야하하핳!! 오히려 트레이너가 널 무서워하는거 아냐?"
완전히 승기를 잡았다는듯 의기양양하게 웃는 골드 쉽을 견디다 못한 젠틸돈나는 평소보다 일찍 트레이닝을 마쳐야만 했다.
--------시계--------
"후우..."
그 이후로 골드 쉽의 말이 계속해서 젠틸돈나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래도... 그정도는 아니지 않나..?"
젠틸돈나 역시 자신의 근력이 다른 사람들 보다 강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당연히 일상생활에 지장이 가지 않을 만큼 힘조절을 하는 법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애초에 트레센 학원에 멀쩡하게 다니고 있는 것 부터 힘조절이 능숙하다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의 손이 닿는 모든 것은 감자 샐러드의 삶은 감자마냥 으깨졌을 것이다.
"하지만..."
생긴 것만 멀쩡하고 영 비실비실한 자신의 트레이너라면 정말로 한대 툭 치면 부러질지도.. 그러고보니 그와 계약을 맺을때 가볍게 악수를 했더니 그의 손을 온통 멍 투성이로 만들었더랬지.
"그 부실한 사람, 진짜로 어디 하나 부러지면 어쩐담..."
사실 젠틸돈나의 트레이너가 약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너무나도 강력할 뿐이지만 누구보다 강인한 귀부인의 반려될 자(아니다)가 그녀보다 나약한 사람이라는 것은 용납 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언제까지고 달리는 고릴라 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 따위를 지니고 있을 수 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무리 귀부인이라도 그녀 역시 한창 때의 소녀일진데, 애써 아무렇지 않으려고 해도 마음에 담아두게 된 단 말이다.
골드 쉽의 말마따나 승리의 기쁨에 트레이너를 끌어안았다가 무심코 전신 골절이라도 일으키게 된다면 고릴라에서 고질라로 암흑진화 하게 될 것은 물론이요, 골드 쉽의 놀림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고 무엇보다 트레이너가 자신을 두려워해서 계약을 해지할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그것만은..!"
사실 계약해지 보다 살인미수로 체포되는 것이 먼저겠지만 그럼에도 트레이너와 헤어지는 것이 더 싫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이군."
이 귀부인의 반려될자(그러니까 아니다)가 이토록 비실비실한(어디까지나 젠틸돈나의 시점이다) 모습을 보인다니, 있을 수 없는 일. 그렇다면 트레이너를 단련시킨다! 자신의 힘을 약하게 만들 수 없다면 반대로 트레이너가 강해지면 된다! 오히려 그것이 더 쉽다!
"간단하게 데드리프트 100kg 부터 시작하면 되려나... 후후, 저도 제 트레이너에게는 상당히 물러지네요."
천리길도 한 걸음 부터라고 하지 않나. 이토록 가벼운 동작이지만 트레이너의 건강을 위한 운동으로는 충분할 것이다.
그의 단련이 계속 된다면 언젠가는 자신의 반려(몇번이고 말하지만 아니다)로써 곁에 두기 충분한 사내가 될 것이고 서로가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강인하고 행복한 한쌍이 될 것이다.
"후후...어머?"
그렇게 행복한 상상을 하며 복도를 걷던 젠틸돈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계단 아래에 서 있는 그녀의 트레이너.
"어라, 트레ㅇ—"
머리속이 붕 떠있기 때문이었을까? 그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가려던 젠틸돈나는 그만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젠틸–!?"
"꺄아악—?!"
손가락 끝을 지긋이 눌러서 기와 40장을 박살내는 소녀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계단 아래로 고꾸라졌다.
아무리 강한 완력을 지닌 우마무스메라고 할지라도 결국 필멸자였기에 다치면 아픈 법. 여기저기 멍이 드는 것은 기본이요, 운이 나쁘면 뼈가 부러질지도 모르고 운이 더 나빠서 머리부터 부딪힌다면 전신마비, 최악의 경우 즉사다.
그 짧은 시간에 최악의 가정을 끝마친 젠틸돈나는 본능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전혀 아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심코 안심할 정도로 따스하고 편안했다.
"젠틸! 젠틸 괜찮아? 말 좀 해봐!"
그녀를 걱정하는 트레이너의 목소리. 슬며시 눈을 뜨자 너무도 가까운 트레이너의 얼굴. 젠틸돈나는 그제서야 자신이 트레이너의 품에 안겨있음을 깨달았다.
"엇..어엏...트레이너?"
왜? 왜 귀부인인 내가 트레이너의 품에 수줍은 꼬마 아가씨 처럼 안겨있는 것이지?
"다치거나 아픈 곳은 없어?"
"네..괜찮아요."
"그래, 다행이다. 갑자기 계단에서 넘어지길래 얼마나 놀랐다고."
"고마워요, 트레이너."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양호실 한번 가볼까?"
"그 정도는 혼자 갈 수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네 건강인데 어떻게 걱정이 안되겠어."
그 순간. 그녀의 안쪽에서 뭔가가 즈큥도큥 했다.
"...지금 이대로도 나쁘진 않네요"
"뭐가...?"
"아무 것도 아니랍니다. 후후.. 아, 트레이너. 역시 조금 부축해주시겠어요? 부탁드릴게요. 좀 더 꽉 잡아주세요."
그렇게 꼬리를 살랑거리는 우마무스메의 트레이너는 그녀를 부축한채 양호실로 향했다.
그녀에게는 안탑깝게도 양호실에 보건 교사와 다른 학생들도 있어서 그녀가 인자 계승을 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조바심 낼건 없으니까요..♥︎"
젠틸돈나가 가진 인내심의 한계는 언제까지 일까.
그녀의 트레이너가 그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좀더 나중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