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에서 황제국 놀이하는 중국 근황.jpg
국빈 만찬(State Banquet)은
국가원수가 외국 정상과 같은
국빈을 접대하기 위해 개최하는
공식 만찬이자 외교 업무의 일환으로,
이와 관련된 주요 의전 사항은
유럽에서 수백년 동안 축적된 관례를 따르는 편이다.
그 때문에 어찌 보면 고리타분하고
존나 시시콜콜하다 싶을 정도로
격식을 따지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뭐 어떡합니까
이미 관례가 굳어져서 다들 따르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을 꼽으라면
"가능한 한 상대와 격을 동일하게 맞춰줄 것"
이라는 점이다.
쉽게 얘기해서,
국왕이 외국 하급 귀족이랑 겸상하거나
같은 국왕끼리인데 상대국 국왕을 하대하면
안 된다는 소리다.
보통 한 국가에 국빈으로 방문하는
외국의 국가원수는 1명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위 짤은 대만을 국빈 방문한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온두라스 대통령과
국빈 만찬 중인 차이잉원 대만 총통인데,
여기서는 원탁 중심에 대만, 온두라스 양국 정상을 두고
그 양 옆으로 양국 정상의 배우자와
양국의 관료들 중 급이 비슷한 사람을
좌우에 각각 배치했다.
하지만 만약 자국을 방문한
외국 정상이 여러 명일 경우에는
한 테이블에 다 몰아넣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위 짤은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때
중국을 방문한 국빈들을 접대하기 위해
후진타오 주석이 주최한 국빈 만찬이다.
같은 크기의 테이블을 여러 개 설치한 후
가장 중심이 되는 연단 바로 앞 테이블에는
주빈인 후진타오 주석이 앉고
여기에는 중국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국가,
예컨대 미국과 같은 나라의 국빈이 앉으며
중국의 최고위급 관료들이 서열에 따라
다른 테이블에 앉은 국빈들과 짝을 이뤄 앉는다.
주빈국 국가원수가 분신술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주빈국과 가장 중요한 나라를 무시할 수 없으면서도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나라를 배려하는 고육지책인 셈이다.
그런데 위 짤로부터 14년이 지난
이번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때
있었던 국빈 만찬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위 짤에서 주빈인 시진핑 주석 부부는
테이블 왼쪽에 있고,
나머지 국빈들은 그 맞은편에
일렬로 쫙 늘어서서 앉혀졌다.
이건 국가 대 국가가 대등한 자격이 아니라
전근대 시절 중국 왕조의 황제가
조공국 사절들을 맞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외국 정상이 한 두 명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었다?
그랬으면 시진핑이 앉은 쪽 테이블에
다른 국빈들도 앉혔어야 격이 맞지
시진핑 앉은 쪽은 널럴한데
맞은편 쪽은 빽빽하게 차 있으면
아랫사람 인사받는 윗사람이 아니고 뭘까?
무엇보다도 이런 경우에는
자기네들이 14년 전에
후진타오가 했던 것처럼 할 수 있었을텐데
알면서도 그걸 안 했다는 건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얘기이다.
가뜩이나 이번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서구권에서 외교적 보이콧을 하는 바람에
국빈으로 참석한 외국 정상 상당수가
다른 나라한테 욕 먹는 걸 감수하고 왔는데
이 사람들에 대한 대접이 저 따위라는 건
외교적 관례는 나몰라라하고
그저 중국 인민들에게
시진핑 킹왕짱을 보여주려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