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AI가 그린 애니 역겨워"?
이따금씩 베스트에 올라오는 게시물 "미야자키 하야오는 AI 애니메이션이 생명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다."
해당 발언은 NHK 다큐멘터리 '끝나지 않는 사람, 미야자키 하야오'에서 나온 발언으로, 상황적으로 보면 AI 기술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생물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없이 AI 프로그램에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태도'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고 있음.
그러니까 결과론적으로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AI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냈다-라고 볼 수도 있다는 말임.
물론 여기에 "아니 그것도 너무 나간 거 아님? AI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었는데 뭔 뜬금없는 소리임"이라는 말을 할 수있겠지만, 다큐멘터리 풀버전을 보면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함.
우선 해당 다큐멘터리는 지브리의 단편 '털벌레 보로'를 제작하면서 벌어진 이야기들을 기록한 영상임.
"난 이미 은퇴한 인간이니까 괜찮아."
"연금수령자입니다."
"난 지금 이 세상에 적응해서 살아갈 자신이 없으니까."
"있는 그대로 살면 된다는 사람도 있지만 있는 그대로 사는 인간은 별로 재미가 없지."
"하고 싶은게 있지만 못할 것 같다는 생긱이 강하게 들어."
은퇴 선언 직후의 미야자키는 어째서인지 매우 자신감이 떨어져있음.
무료함을 이기지 못해 하품과 한숨을 인터뷰 내내 내쉬면서도 선뜻 발을 내디디지 못하는 상황.
이후 장면이 전환되며 지브리 대표이사 스즈키 토시오의 인터뷰가 시작됨.
지브리는 미야자키 하나만으로 돌아가던 회사였으나 미야자키가 만들지 않으니 사실상 멈춘거나 다름없다는 소리를 하고, 이런 말을 덧붙임
"지브리는 손그림으로 그리지요?"
"하지만 세상은 늘 변하고 있어요. CG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이 흐름은 누구도 멈출 수 없어요."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뒤, NHK가 미야자키 하야오를 다시 찾아갔는데
"얼마전에 어떤 스튜디오에서 CG 애니메이션을 보여줬어요."
"스태프들은 재밌었죠. 젊고."
이에 PD왈 "왜 CG쪽 사람들을 만났느냐?"
"그야 단편을 CG로 만드니까요."
이게 얼마나 폭탄발언이냐면, 미야자키는 과거 이런 인터뷰도 했던 사람임.
"애니메이터가 직접 그리면 됩니다. 제일 문제인건 '컴퓨터가 정확히 그리니 자신도 정확히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엉터리 애니메이터가 많아진다는 거예요. 컴퓨터 같은 건 뇌에서 빼버리고 자신이 직접 본 걸 그대로 그리면 된다고...생각합니다. 그래서 3D 파트를 전부 뺐어요."
이랬던 사람이 갑자기 CG를 도입한다? 그것도 전면 제작으로?
깜짝 놀란 PD가 왜 CG를 쓰냐고 묻자 미야자키는 이렇게 대답함.
"내가 그리고 싶다고 생각해도 못 그리는 걸 이 녀석(CG)라면 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요."
"이 놈은 보로입니다. 쭉 해보고 싶었지만 그리기 어려워서 하지 못했어요. CG라면 할 수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이리 하여 '털벌레 보로'의 제작이 시작됨.
(꾸물꾸물 움직이는 보로의 움직임을 시연해주면서)
"손으로 그린 게 아니라, 컴퓨터 계산을 이용해 자동으로 움직이는 방식입니다."
아무 말도 없이 보고 있던 미야자키
"실제로 보면 정말로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거든."
화면 앞으로 나와 자기가 알고 있는 벌레의 움직임을 설명해주려고 하지만 제대로 정리해서 설명하는 게 쉽지 않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함.
"(사람들도 좋고) 재밌네."
말과는 달리 어쩐지 조금 착잡해보이는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미야자키. 그런 미야자키의 얼굴을 롱샷으로 보여주는 PD.
(몇 개월 후 움직임 시연을 다시 보며)
"으음, 조금 더 (좋게 할 방법을) 탐색해보죠."
조금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있어도 미야자키는 계속해서 스태프들과 교류해나가며 착실하게 작품을 만들어나가고 있었음.
심지어는 액정 태블릿까지 사용해보면서 여태까지 보여왔던 가치관을 버리고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려고 애씀.
아무튼 어찌저찌 작품이 마무리되어갈 때 즈음
도완고 회장이 AI 관련 협업을 제안하기 위해 미야자키를 찾아옴.
"딥러닝이라는 기술을 사용하면 CG를 인간이 표현한 것처럼 만들 수 있습니다. 5년후, 10년후에는 분명히요."
"(인공지능이) 인간을 초월하면 인간 자체가 필요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지만, 개인적으로 미야자키가 AI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말이라고 생각함.
그리고 "그 장면" 나옴.
여기서 미야자키가 "생명에 대한 모독"을 느낀다라고 표현한 건 여러가지 해석이 갈림.
1. 도완고 회장이 장애를 가진 사람을 연상시키는 모션 (미야자키의 친구 중에 비슷한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음)을 보고 '기분 나쁜 움직임.', '좀비 등 기분 나쁜 몬스터의 모션에 활용할 수 있다.' 라고 말해서 화가 났다.
2. "이걸 만든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만든 거죠? '아픔'같은 건 생각조차 안한 채로." -> 미야자키가 가장 싫어하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의 전형을 보여줘서 화가 났다.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시청자의 자유겠지만, 다큐멘타리가 전하고 싶은 미야자키의 감정은 다음 장면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함.
"그래서 최종적으로 이걸 가지고 뭘 만들고 싶은 겁니까?"
이건 미야자키가 한 말이 아님. 아마도 옆자리에 앉아있던 스즈키 토시오.
"인간이 그릴 수 있는 걸 똑같이 그릴 수 있는 기계요."
이후 미야자키의 눈동자를 클로즈업하는 카메라.
시선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어쩐지 눈가도 조금 촉촉하게 젖어있는 것 같음.
"이 세상의 끝이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인간이 자신(自信 /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있으니까."
"역시 손으로 그리지 않으면 안 돼."
"도망치지 말고 해보자고 생각하고 있어."
이후 무언가를 그리며 고뇌하는 미야자키.
그것은 과거 '안되겠지'라고 포기했었던 '털벌레 보로'가 우글우글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참고로 이게 다큐멘타리 통틀어 유일하게 나오는 미야자키의 수제 애니메이션임.
"스즈키 씨, 영화 한 번 만들어볼까? 뭐, 할 거면 정공법으로 할 수밖에 없지만."
"전부 손으로 그린다는 각오로."
"결단했습니다."
초중반부 내내 자신을 잃고 방황하던 미야자키는 다시 한 번 장편 영화를 만들기로 다짐한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심심해서 찾아봤는데 정말 좋은 다큐멘터리였음. 의견은 언제나 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