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은 얼추 보긴 했었는데, 매번 저런 가정이 나올 때마다 내가 제시하는 난항은 다음과 같음. (해당 영상에서도 빠졌더라.)
1. 당시 원조 순위가 최하위였고, 그나마도 국지전이며 내부 빨치산 소탕 그리고 L 모씨가 KAMG의 반대에도 필요 이상으로 넘은 군대를 창설하여 예산이 모자라서 구 일본군 피복류와 소총, 기관총도 다시 적지 않게 굴리는 마당에 도입할 수 있느냐? (차량만 딸랑 오는 것도 아니고 총포탄에 부속품, 유류비까지....)
2. 당시 미군도 불과 몇년 전 세계 대전만 하더라도 10개 훌쩍 넘었던 기갑사단들이 모조리 해체되고 2기갑만 딸랑 남아 있고 바로 옆 주일미군도 퍼싱이라 셔먼 합쳐봐야 실 가동차량이 한 자리대인데, 줄 여유가 있느냐?
심지어 지프 차량에 쓸 부속품도 부족해서 태평양 격전지 돌면서 고철 수거하려 다녔던 게 당시 미군이었음.
해당 사진은 오키나와에서 미군의 고철 수거(...) 현장을 취재하던 라이프 기자가 찍은 것.
3. 당시 국군의 능력으론 궤도도 아니고 바퀴로 굴리는 차륜형 장갑차인 그레이하운드의 유지 보수도 못해서 KAMG에서 회수해 가자고 나온 마당에(심지어 운송비만 더 나올 도태장비....) 셔먼 같은 전차를 준다고 한들 유지보수를 할 수 있겠느냐?
괜히 퍼싱 달라고 징징거리던 신성모와 달리 당시 교량 하중 등과 본인들 능력으로 현실적으로 접근하여 일선(기갑연대)에서 채피 경전차 - 영상에선 약체라고 언급 - 1, 2개 중대를 달라고 했던 게 아님.
20, 30대를 주든 말든 그럴 여력이 없었다는 게 현실... 한 예시로 전차 도입에 회의적이었던 로버트 준장 역시 당시 주일미군에서 퇴역하던 P-47/51 50여 대를 달라고 했었을 때도 예산 등의 이유로 상부에서 빠꾸 먹었음.
애시당초 그 정도 신경을 써 줬다면 당시 군축으로 인해 마른 걸레도 짜야 했던 국방부에서 주한미군 자체를 철수시켰을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게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