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 칼들고 다니는 사람 따라가면서 신고했던 경험.txt
그냥 문득 생각난대로 의식의 흐름으로 쓰는 뻘글이니, 노잼일 수 있음. 미리 말해둠
한달 전 쯤 점심 약속 나가는 길이었음.
핸드폰 보면서 지하철역 계단 내려가고 있는데, 앞서 내려가는 사람들이 뭔가 멈칫 당황하는 거임.
그래서 나도 정면으로 시선을 두고 보니, 덩치 좀 있는 남자가 손에 뭔가 번쩍이는 물건을 들고 있더라고?
자세히 보니까 이거였음...
보통 버터플라이 나이프라고 하던가?
아무튼 이걸 손에 들고 걸어올라오면서, 접었다가 폈다가, 공중에 휘두르는게 마치 붕쯔붕쯔였다...
근데 와... 실제로 타인이 흉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마주 하니까 숨이 턱 막히더라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최대한 빙 돌아서 그 사람 주변을 피해 내려갔지
그리고 뒤돌아보니까 여전히 다른 사람들 보란듯이 칼로 붕쯔붕쯔하며 올라가는 남자..
이렇게 대낮에 칼을 꺼내들고 휘두르며 다니는데, 신고해야하는거 아닌가?
아니 이미 저만치 멀어지고 있는데, 굳이 내가 괜히 긁어부스럼으로 무서운 일 휘말리는거 아닌가?
다른 사람이 이미 신고하지 않았을까?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별별 잡생각들이 떠오르더라고..
아 ㅅ1발...
지금 연달아 터지는 흉기 사건이 몇갠데,
정말 정말 만에 하나라도 저 사람이 이후 사고치면, 난 이 순간의 죄책감을 견디지 못할 것 같다 라는 생각에
바로 112 신고.
그리고 기왕 이런 거, 저 사람이 확실하게 경찰에게 잡히는 모습까지 확인해야 내가 안심하겠다 싶어서 따라가기로 함..
거리 두고 따라가면서 이어폰으로 112 통화했지
"지금 칼 들고 배회하는 사람이 있다, xx역 n번 출구로 나가는 중이다,
먼발치 따라가고는 있는데, 이 사람 어디로 갈지 모르겠으니 최대한 빨리 와달라"
경찰이 인상착의랑 이동 방향 물어보면서 바로 주변 순찰차 출동했다고 하더라고.
난 쿵쿵거리는 심장소리 느끼면서 열심히 쫓아감
아니 근데 이 사람이 갑자기 옆에 있는 상가 건물로 들어가더니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버리는거야?
다급히 뛰어가서 엘레베이터가 몇층까지 올라가는지 확인했지
그리고 통화중인 경찰한테 "왜 이렇게 늦으시냐고...이미 이 사람 건물 엘레베이터 타고 사라졌다고" 막 한탄했음
건물에서 나오니까 갓길에 순찰차가 싸이렌 울리면서 와서 멈춰서더라
그래서 내가 신고했다고, 인상착의랑 몇층까지 올라갔는지 알려줬지
두어분은 건물 올라가서 수색해보겠다고 하고 다른 한 분께 그 사람 옷차림이랑 가방 색깔 같은거 알려주고 있는데....
해당 건물 가리키며 돌아본 순간....
바로 그 사람이 걸어나오고 있는거임?
순간 심장 멎는 줄 알았다
바로 앞에 있는 경찰한테 나지막한 소리로 "지금 나온 반바지!! 파란 가방!! 파란 가방!!" 이렇게 말하면서
난 재빨리 그 자리 피해버림
*짤은 펌임. 이런 느낌이었음
내 말을 알아들은 경찰이 "저 남자 잡아!!" 이러더니 건물 앞에 있던 경찰 둘이 칼 가지고 있던 남자를 순식간에 제압하더라
그리고 그 사람 주머니에서 금속칼이 툭하고 바닥에 떨어짐
순식간에 주변에 사람들 웅성웅성 모여들고, 그 남자는 "아니야! 아니야!" 하고 소리지르면서 제압당하는데
그 와중에도 나는 혹시나 그 사람이 내가 신고한거 봤을까봐 무서워서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면서 뒷길로 빙빙 돌아 그 자리 떴다...
일단 경찰에게 잡힌건 확인하니까, 긴장이 확 풀리더라
한창 일하고 있는 와이프한테 바로 전화해서, 정말 미안한데 내가 지금 너무 놀라서 전화했다고.. 자초지종 얘기해줬지.
그리고 엄청 혼남 ㅠㅠㅠㅠ 신고는 당연히 해야하는건데, 다음부턴 그렇게 함부로 따라가면서 신고하지 말라고.
그냥 멀찌감치 사진찍어서 사진 전송하고 위치 알려주면 될거 아니냐고... 생각해보니까 그건 그렇더라.
아무튼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되나 했지
그런데 여기서 반전
1시간쯤 뒤에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어
"선생님께서 신고하신 흉기소지자에 대해 조사를 끝마쳤는데, 확인해본 결과 실제 칼은 아니고 가짜칼이었다.
당사자는 이렇게 밖에서 휘두르고 다니는게 멋있어보여서 인터넷으로 구입했다고 진술하더라,
방금 전에 보호자에게 인계 완료했다...."
.....
괜히 실제 흉기도 아닌데 호들갑 떨면서 신고한 것 같아서 경찰분들께 미안해지더라고..
그래서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아니라고 누가 봐도 실물처럼 보였고, 충분히 신고할 사안이었다고,
선생님이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신고했을거라고 오히려 감사하다고 이야기해주더라.
뭐 다시 생각해보면, 오히려 실제 흉기가 아닌 해프닝이라서 다행인걸까 싶기도 하고.
유우머는 혹시나 그 사람과 마주칠까 괜한 걱정으로,
한달이 지난 지금도 내가 그 길로 안 다닌다는 것이다..ㅜㅜㅜㅜㅜㅜㅜㅜ
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