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오싹오싹 택견 시리즈 - 택견과 석전의 상관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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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무려 한 달 만에 오싹오싹 택견 시리즈가 복귀했습니다! 여러분은 잘 지내셨나요?
이번 시간에는 일전에 댓글에서 이야기 나온 바가 있던 조선의 전통 놀이(?) 석전과 택견의 잘 알려지지 않은 상관 관계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석전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석전이란 명절 날 양 마을이 편을 갈라 개울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돌을 던지는 놀이였습니다.
(현대에 재구성한 석전 놀이)
다만 이 사진은 고증으로 따지면 빵점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석전 놀이에서 돌을 던지는 방법은 그냥 맨 손으로 던지는 게 아니었거든요.
놀랍게도 올바른 고증을 따지면 이렇게 됩니다(...)
네, 맞습니다. 슬링(투석구, 무릿매)입니다.
성경에서 다윗이 거인 골리앗의 뚝배기를 깨 버린 일화로 유명한 그것 말입니다.
그러니까 개울을 사이에 두고 양 마을 사람들이 투석구를 이용해 머리에 안 맞아도 몸에 맞으면 어디 부러질 만한 위력이 실린 돌맹이를 놀이랍시고 1년에 한 번씩 던져 대던 게 조선 시대 놀이의 클라스(...)였던 셈이지요.
(백색가전고양이 님의 석전 만화 : https://bbs.ruliweb.com/family/212/board/300063/read/30615590
석전 하다 사람이 죽어도 씁, 어쩔 수 없지. 라고 넘어갔다는 사실은 놀랍게도 팩트입니다(...))
하지만 석전의 무시무시함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위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투석꾼(원딜)만 조명이 된 이야기이다 뿐이지, 실제 석전에서는 돌을 던지는 투석꾼 뿐만이 아니라
몸을 전부 가릴 수 있는 크기의 방패로 투석꾼에게 엄폐를 제공하는 방패수(탱커)와
(투석꾼(?)에게 엄폐를 제공하는 방패수)
작은 방패와 방망이를 들고 달려가 몽둥이를 휘두르는 돌격수(근딜)이 다 함께 어우러진,
(쏟아지는 돌맹이(?)를 피해가며 달려가는 돌격수(?))
말 그대로 '돌로 하는 전쟁(石戰)' 이란 한자어에 걸 맞는 체계를 자랑하는 깊이 있는 놀이였습니다!
(다리맵 힘 싸움은 전설이다... 가슴이 웅장해 진다...)
ㄹㅇ로 구경하는 입장에서 보면 현실에서 즐기는 토탈워, 내지는 오버워치가 따로 없었을 겁니다.
비처럼 쏟아지는 투석꾼(?)들의 돌맹이를 뚫고 달려가는 돌격수(?)들을 구경한다? 캬 이게 야스지.
그런데 이런 석전과 택견이 대체 무슨 관계이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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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관계가 있답니다.)
구한말의 자료들에 따르면 석전에도 절차가 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서로에게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석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각 마을의 힘 깨나 쓴다는 젊은이들이 먼저 나와 격투 시합을 열고, 석전이 몇 날 며칠을 해도 승부가 나지 않는 경우 씨름이나 격투 시합으로 그 해 석전의 승패를 가렸다고 하지요.
실제로 이에 대해 구한말 조선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이 기록들이 여럿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격투 시합 -> 돌과 몽둥이를 이용한 난투(석전)를 벌인다는 것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무형유산 결련태껸과 석전의 상관성 연구 - 김영만, 최종균 -)
일례로 마포, 서강 등의 한강 연안에서 수운과 상업으로 먹고 살던 강대사람들이 싸움 실력이 워낙 좋다 보니 석전이나, 그에 앞선 격투 경기에서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 왕십리를 비롯한 소위 아래대 지역에서는 이들 지역과의 석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마을 차원에서 싸움패를 기르거나, 아예 용병처럼 싸움 잘하는 사람들을 들여왔다는 기록이 매일신보(1922)에서 시골 노인과 한 인터뷰 자료로서 남아 있기도 하지요.

(현대 스포츠적으로 생각하면 외국인 용병을 데려오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러한 선발된 전문 싸움꾼/석전꾼들을 매질꾼이라 불렀다 하는데, 더욱 재미난 사실은 석전에 참여하는 매질꾼들의 무기나 장기가 지역마다 달랐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의 무형유산 결련태껸과 석전의 상관성 연구 - 김영만, 최종균 -)
강대 매질꾼의 버드나무 몽둥이 길이가 서너 자면 대략 90~120cm이라는 건데 진짜 빠따네;;;
특히 저 성내 매질꾼을 언급하는 파트가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독특하게도 구한말의 기록에선 성내 매질꾼의 특징을 발차기와 짧은 몽둥이를 다루는 것으로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성내라는 말은 한양의 사대문 안을 지칭합니다. 그러니까 성내/문안 매질꾼이란, 사대문 안 출신의 매질꾼들을 부르는 말인 것이죠.
(구한말까지만 해도 사대문 안과 밖을 엄격하게 구분했습니다.)
무언가 핑! 하고 오지 않습니까? 방패와 몽둥이를 들고 육박전을 벌여야 할 매질꾼들의 장기가 하필 발차기라뇨?
거기다 하필 지역이 한양(서울)이기까지 하네요.
그렇습니다. 백기신통 비각술. 서울 지역에 지역적 연고를 가지고, 동북아 전통 무술 가운데 발차기를 특징으로 내세운 몇 안 되는 무술 가운데 하나, 바로 택견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더욱이 성내 매질꾼들이 짧은 몽둥이를 잘 다루었다고 언급한 부분은 알고 보면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왜냐하면 송덕기 옹께서 유일하게 다룰 줄 안다고 말씀하신 무기술이 바로 육모술(방망이술)이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구한말 최후의 택견꾼 송덕기 옹)
실제 위대태껸회의 고용우 선생이 어느 날 송덕기 옹께,
"할아버지. 택견에 무기술은 없나요?" 라고 한 질문에 송덕기 옹께서 답하시길.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몽둥이질은 좀 하지." 라고 말씀하시며 고용우 선생에게 당신께서 알고 계시던 육모방망이를 이용한 기술들을 보여주셨다는 일화가 있다고 합니다.
(문화재 택견에서 교습하고 있는 육모술 영상.
다만 위 영상의 육모술은 송덕기 옹께 전수된 것이 아니라 문화재 택견 측의 창작 기예입니다.)
이와 같이 무기를 다루면서도 유독 발차기를 장기로 꼽았다는 점과 다른 몽둥이를 천하게 여겨 오직 육모만을 썼다는 기록들을 합해보자면, 모든 문안 석전꾼들이 택견을 수련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은 과한 것이겠으나 최소한 전문 석전꾼(매질꾼)으로 석전에 참여하였던 인물들 가운데 상당수는 택견을 수련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지나가던 행인에게 장기인 발차기를 선보이는 문안 매질꾼(?). 아프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추측들이 단순히 가설이라고 말하기 뭐한 가장 큰 이유는 아예 택견과 편쌈(석전)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언급하는 기록이 있다는 것일 겁니다.
(서울의 무형유산 결련태껸과 석전의 상관성 연구 - 김영만, 최종균 -)
위는 매일신문(1922)에서 인터뷰를 하였다는 시골 노인의 증언 가운데 하나입니다.
요컨대 본래 석전이란 돌을 던지고 몽둥이질을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양각법(택견)을 함께 익히는, 일종의 무예를 연습하는 것이 본래의 취지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놀이로 바뀌어 버렸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저 노인이 뭘 잘못 알고 있었거나, 무언가 잘못된 정보를 접해 저런 이야기를 했을 가능성 또한 제로는 아닐 겁니다. 어디에나 잘못된 정보는 퍼져 있는 법이고, 지금처럼 올바른 정보를 쉽게 습득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요즘도 가짜 뉴스, 가짜 정보가 판치는데 옛날이라고 달랐을까요?)
하지만 저 노인의 증언을 제외하고서라도 택견이 퍼져 있었다는 사대문 안 출신의 매질꾼들의 특징으로 꼽히는 것이 하필 발길질 솜씨와 육모방망이였다는 점.
거기에 구한말 최후의 택견꾼이셨던 송덕기 옹께서 유일하게 다루실 줄 아셨다는 무기가 육모방망이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면, 최소한 서울(한양) 지역에서 만큼은 택견과 석전은 서로 뗄래야 도저히 뗄 수가 없는 관계였다는 것이 오늘의 이야기의 결론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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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 늘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이야기를 적기 위해 하였던 조사 과정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석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마을 차원에서 싸움꾼을 양성하거나 모셔 오고, 대접하며 데리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골때리는 것은 이게 민간 차원에서 그런 것만이 아니라, 구한말 외국인이 남긴 기록들 가운덴 아예 지방 관청에서 전문 싸움꾼이나 씨름꾼을 고용해 먹이고 재우다가 명절 날 이들을 동원해 공공연하게 내기판이 벌어지는 커다란 행사를 벌인다는 것마저 있다는 것이었죠.
잘 연상이 가지 않으신다면 구청에서 프로 파이터들을 고용하여, 명절 날 옆 구와 돈내기가 걸린 커다란 격투대회를 연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혹여나 우리 마을 팀이 지기라도 하면???
바로 그 자리 뒤집어 엎고 집으로 달려가서 몽둥이랑 무릿매 챙겨 드는 거죠.
엥 이거 완전 조선판 훌리건 아니냐(...)
정말이지.... 대체 얼마나 놀이에 진심인 거야? 싶다가도 한편으로 요즘의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싶더라고요.
게임 ↗밥 소리 듣고 빡치지 않으면 한국인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ㅎㅎㅎㅎ
어쨌든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현대인의 감성으로는 도저히 놀이(?) 라고 생각할 수 없는 행위를 놀이이자 축제로서 즐겼던 조상님들의 기상에 가슴이 웅장해지는 한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이번 편을 적으면서, 아 머리가 돌에 맞아 터지고, 늑골이 몽둥이에 맞아서 부러지는 석전도 놀이라고 즐기셨던 분들이 조상님들이신데 이 정도면 택견도 놀이라고 생각하셨을 가능성이 충분하겠구나 싶더라구요(...)
생각해봐. 택견 경기에선 코나 이빨은 깨질지언정 최소한 두개골이 돌에 맞아서 함몰되진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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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럼 놀이 맞지. 인정.
농담ㄸㅁ기는 여기까지 하고, 혹시 본문의 내용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있거나 택견과 관련해서 다뤄주었으면 하는 주제가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최대한 빠른 다음 편을 원하신다면....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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