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 군사들이 곽주(郭州)로 침입하니 방어사 호부원외랑(防禦使 戶部員外郞) 조성유(趙成裕)는 밤중에 도주하였고, 신녕한(申寧漢) 및 행영수제관(行營修製官) 승리인(乘里仁), 대장군 대회덕(大懷德), 공부낭중(工部郞中) 이용지(李用之), 예부낭중(禮部郞中) 간영언(簡英彦)은 모두 전사하였으며, 성은 결국 함락되었다. 거란은 군사 6,000여 명을 잔류시켜 그 성을 수비하게 하였는데, 양규(楊規)가 흥화진(興化鎭)에서 군사 700여 명을 이끌고 통주까지 와서 〈흩어진〉 군사 1,000명을 수습하였다. 밤중에 곽주(郭州)로 들어가 잔류한 거란 병사들을 습격하여 모조리 목을 베었으며, 성 안에 있던 남녀 7,000여 명을 통주로 옮겼다.
양규 열전
1010년 12월 6일 世家 거란군이 곽주를 함락하다
1010년 12월 8일 世家 거란군이 청수강까지 진격하다
1010년 12월 9일 世家 거란군이 서경에 이르다
1010년 12월 10일 世家 숙주가 함락되다
1010년 12월 16일 世家 큰 유성이 떨어지다
1010년 12월 16일 志 큰 유성이 곽주에 떨어지다
1010년 12월 17일 世家 거란군이 서경을 우회해 동쪽으로 진격하다
1010년 12월 19일 世家 서경신사에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거란군마가 넘어지다
1010년 12월 19일 世家 하공진과 유종의 관작을 회복시키다
1010년 12월 28일 世家 왕이 남쪽으로 피난가다
1010년 12월 30일 世家 거란에 화친을 청하다
1010년 12월 미상 志 서경 신사에 돌연 바람이 일다
고려사 현종실록
실제로는 하룻밤에 급습-함락이 정사의 기록이고, 현종실록은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곽주성 탈환을 은유한 것에 불과함.
(유성 떨어짐 = 거란군 ㅈ됨)
어 형이야 형은 진짜로 하룻밤만에 곽주성 본진 파괴했어 ^^
드라마는 순서가 약간 바뀌어있음
13척으로 300척을 막아낸 이순신과 같음 말도 안 돼 쇠사슬 썼지? -> 응 그런 거 없어 해류를 이용했구나? -> 어 전투 반나절은 역류 받아가며 싸웠음 13척을 전략적으로 잘 활용했군 -> 아니 대부분 대장선 혼자 싸웠어
차라리 메테오를 썼다고 해주세요 어케한거임 도대체
드립으로 치는건데 어느 순간부터 진짜로 믿는 사람들이 대다수던 근데 나도 그랬었어
1700명으로 6000명이 지키는 성 공성전 성공 이것도 사실 비상식 적인 승리라 ㅋㅋㅋㅋ
말도 안되는 개연성 치트키
메테오설 안씀 -> 아니시1발그럼 그걸 어케탈환함?
저거 떨어진 시기가 나도 좀 차이가 나는걸로 알고 있었는데 애들이 뭔 성벽을 무너뜨렸네 이러고 있어서ㅋㅋ
메테오설 안씀 -> 아니시1발그럼 그걸 어케탈환함?
어린사슴아이디어
13척으로 300척을 막아낸 이순신과 같음 말도 안 돼 쇠사슬 썼지? -> 응 그런 거 없어 해류를 이용했구나? -> 어 전투 반나절은 역류 받아가며 싸웠음 13척을 전략적으로 잘 활용했군 -> 아니 대부분 대장선 혼자 싸웠어
번숨VS메테오술사
이게 진짜 찰떡
운명이 고려를 구하라고 보낸 영웅의 가호를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편할듯 ㅇㅇ ㅋㅋㅋㅋㅋ
이건진짜 정사를 들을때마다 그게말이되냐 말고는 할말이없어
차라리 메테오를 썼다고 해주세요 어케한거임 도대체
드립으로 치는건데 어느 순간부터 진짜로 믿는 사람들이 대다수던 근데 나도 그랬었어
8서클 대마도사 양규의 메테오콜이 더 설득력있다 진짜
그래도 메테오 보고 싶었는데!
1700명으로 6000명이 지키는 성 공성전 성공 이것도 사실 비상식 적인 승리라 ㅋㅋㅋㅋ
양규 : 아 포위섬멸진 모름??
그냥 저 표현은 하늘이 도왔다는 은유적인거 아님?
자꾸 운석으로 이겼다는 사람들이 보이네
이순신 번숨처럼 그냥 드립치면서 놀다보니 이게 다큐인줄 아는 사람 나오더라고 이래서 역사밈이 위험함
그래도 진짜 저렇게 적혀있으니 뭐...
투석기설 진짜 믿는 사람도 일부 있는 듯해서
아 그건 아니지 ㅋㅋㅋㅋ 그냥 그날 떨어졌다 정도지
ㅋㅋㅋ
말도 안되는 개연성 치트키
저거 떨어진 시기가 나도 좀 차이가 나는걸로 알고 있었는데 애들이 뭔 성벽을 무너뜨렸네 이러고 있어서ㅋㅋ
지구 : 억울하면 13척으로 대함대 막는거 보여줘? ㅋㅋ (명량대첩)
사실 한척으로 막은건데 믿기가 힘듬 ㅋㅋㅋ
근데 솔직히 메테오는 진짜 나왔으면 그거 한방으로 곽주탈환이 쉽게 끝날수도 있잖음 각색되는게 납득이 가긴 해
뭐야 40살 동정 마법사 유성군 마법이 아니였어?
저 시절 40살 동정 마법사면 오늘 내일 할텐데
엄연히 아내랑 아들도 있으신 분한테 무슨 소리여!ㅋㅋㅋ 아들은 나중에 재상까지 지낸다구
양대춘(楊帶春)은 정종(靖宗) 6년(1040)에 안북대도호부부사(安北大都護府副使)가 되었다.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최충(崔冲)이 아뢰기를, “양대춘은 세운 뜻이 높고 빼어나며 지략이 많아서 군사의 일에 익숙합니다. 만약 국경에 변란이 있다면 이 사람이 아니고서는 보낼 만한 사람이 없으니, 마땅히 외직에 보임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하였으나, 〈왕이〉 들어주지 않았다. 후에 직문하성 위위경(直門下省 衛尉卿)에 이르렀는데, 문종 초에 〈양대춘이〉 병이 들자 〈왕이〉 제서를 내려 일상의 조회를 면제해 주고 단지 겸관(兼官)의 사무만 보게 하였다.
그렇다고 메테오가 야사도 아니고 고려사에 기록된건데 그걸 은유라고 하는 것도 해석의 한 방향일뿐이지. 드립이나 밈 취급하는건 잘못된거임.
그렇게 따지면 유성기록과 곽주성 탈환을 연결하는 것도 해석의 한 방향일 뿐임. 양규의 탈환 기록과 곽주성 유성 기록이 독립적이라는 사실을 보면, 양규가 유성 떨어진 곽주를 함락했다거나, 유성 비스무레한 것을 이용했다고 보는 것 또한 상상의 하나일 뿐임
어떤 것을 설득력 있는 가설로 보느냐가 중요한데, 곽주성에 메테오가 떨어진 것이 탈환에 영향을 주었다든가 하는 가설 vs 곽주성 메테오는 별 관련이 없다는 가설... 이렇게 두 개를 세워보고 현실성 있는 방향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음.
곽주성 전투에 그 유성이 실제로 영향을 줬는지 아닌지는 별개로 실제 사서에 적힌 부분은 16일에 유성이 떨어졌다, 이거잖음 그럼 일단은 유성 낙하 자체는 사실로 봐야지 반박하는 사료가 없는 이상
유성 낙하는 사실로 볼 수 있음. 그러나 양규와 메테오를 연결시키지 않는 한 특별한 역사적 의미는 없게 됨. 글 제목에 "양규의 메테오 공격은 기록에 없다"라고 적은 것에 주목하길 바람.
뭐?
고대에는 유성이 떨어지는 거 같은 자연 현상을 어떤 전조로 생각해서 일일히 기록했던 걸지도 몰라
ㅇㅇ 나도 동의
반대로 말하면 은유라는 해석도 근거가 없는 거 같은데 고려사는 엄연한 정사인데 그날 메테오가 떨어지는게 말이 안되니까 믿지 않기로 하면 뭘믿음
양규 열전에 일언반구가 없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음. 그리고 저 고려사 기록에는 곽주성 유성 기록만 있지, 곽주성이 탈환되었다든가 하는 언급이 없음. 따라서 양규 열전에 따르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정합적인 해석임
저거 아니라도 동아시아사 전체 적으로 보면 은근 유성이 자주 떨어져서 가능성은 있는지라
사서에 이런식의 곡필이 흔하긴 함. 삼국유사에 보면 망국의 징조들이 나오는데 뭐 벽화의 개가 짖었다느니 귀신이 나와서 백제가 망한다고 소리치고 땅에 들어갔다느니 하는 것
다만 천체현상에 대해서는 비교적 있는대로 서술하는 편이라, 유성이 떨어진것 자체는 사실로 볼수도 있고, 진짜 비유일수도 있고... 해석하기 나름
그렇게 볼 수도 있지. ㅇㅇ
참 삼국유사가 아니고 삼국사기
은유는 절대로 아님. 천문기록 편에도 한번 더 나옴. 아무리 은유라고 해도 기상관측기구의 보고까지 주작하는건 이상하지.
운석이 떨어졌다는것도 사실이고 이게 곽주성 함락에 영향있었냐는 별개였을 뿐이었을수도 있지 운석낙하 자체를 은유라고 할 근거는 없지
*유성 낙하 자체는 사실로 보되 양규와의 연결성은 신중해야 한다. 라는 댓글이 많이 보입니다. 동의합니다. 본문의 서술이 오해가 있게 작성된 듯합니다. 다만 양규와 관련지어 해석할 경우에는 유성 낙하와 곽주성 탈환을 은유로 연결시킬 수 있겠다는 뜻입니다. 적극적으로 연결해서 양규가 투석기를 썼거나, 운석 낙하를 이용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 본문의 요지입니다.
무슨소리야 메테오는 양규가 궁 쓴거 아니라고?
양규 유성 설 이순신 번숨 설
알게 뭐야 개쩌는 메테오가 보고 싶었다고
참고로 유성관련으로 김유신 일화가 있음. 유성이 김유신측에 떨어져서 병사우 사기가 떨어지니 김유신이 불붙은 연을 날려 적측에 보내서 사기를 올린 일화로 양규의 유성도 이런 의미로 봐도 된듯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