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보다야 농업을 중시한 건 맞는데 옆나라 중국 쪽도 딱히 다른게 없고 중국역사 내내 제일 높은 비율을 담당하면서 심심하면 돈을 뜯긴게 상업 계층이라. 명나라시기부터 상업에 높은 영업세를 거두는건 아예 전통이 되어버렸고 청나라의 공식외국무역상인인 공행(公行)은 심심하면 정해진 세금 외에도 다른 세금을 내야했고 이후에도 정부의 물품조달이나 세금에 무기력하게 대응했고. 심지어 남경조약의 배상금조차 일부 이들이 조달해야 하기도 했고
애초에 조선 정부도 나름 상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서인과 남인은 각각 재부민산론(財富民散論= 상업활동의 자유로움을 추구하여 재부가 민에게 있어야 한다. 화폐를 각 관청에서 자유롭게 주조하자고 주장했다,
이권재상론(利權在上論=상업활동에 대한 통제를 통해 그 이권이 국왕에게 돌아가야야 한다. 국가의 화페 제조 독점을 주장했다. 상평통보가 바로 전형적인 이권재상론의 산물이다!)으로 다투기도 했고임진왜란 이후에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상업에 관련된 논의가 폭주해서 북인들이 상업적 영농의 확대, 소금,산삼,은광의 개발,국가주도의 상업 활성화, 선박과 수레의 개선, 금속화폐의 주조와 유통등을 주장하기도 했고 서인들도 농업보다는 상업의 개혁에 치중해서. 내수사와 절수(淮陽 = 궁가의 사유지로 세금을 면제받았다. 현종 시기 이들의 주장으로 상한선이 제정되었다.)혁파, 공안개정주장, 국가의 화폐(은을 합쳐서) 통제 반대를 주장했고. 이러한 노론의 주장을 결실이 맺은게 중상학파고
애초에 조선이 상업에 아예 관심이 없다는 건 말이 안되는 점이 세종대왕 때부터 화폐 통용을 하려고 계속 노력했는데
시장도 한정적이고 잉여가치도 안나는데 상업 진흥하자해봐야 의미가 없긴함
시장도 한정적이고 잉여가치도 안나는데 상업 진흥하자해봐야 의미가 없긴함
+상업천시는 유럽도 했는데,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이들에게 세금을 뜯자로 전략을 변경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