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이 눈만 깜빡여도 '리산알가입..!' 왠지 소름끼치고 웃기게 표현됐지만, 원작의 스틸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듄이 지금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아이맥스관 맨 앞줄까지 전부 꽉 찬건 정말 오랜만에 봅니다.
좋은 의미로는 끝내주는 미장센과 음악, 의상, 촬영, 그리고 완벽에 가까운 세계관 재현을 통한 압도적인 영상미와, 거대한 배경을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납득시키면서 그 사이에서 진행되는 지엽적인 정치 스릴러에 가까운 스토리가 있겠고 (그 와중에 조연 하나하나까지 모든 배우들이 연기를 잘한다는게 너무 행복합니다) 워낙 정보량이 많고, 품위있게 은유하다보니 한번 템포를 놓치면 이게 뭔소리여 하고 휘리릭 앞서나가는 텔링이 있겠습니다. 파트 2는 그나마 블록버스터의 형태에 가까운 것 같아서 대중들에게도 어필 할 수 있을 것 같아 무척 기쁩니다.
즉, 여러모로 생각하며 봐야 옳은 영화이고, 주제의식이나 감독 성향은 블록버스터랑 정 반대에 위치한 주제에 블록버스터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합니다.
그런 와중 듄(영화)를 보시고 원작을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나, 혹은 책을 먼저 읽지 않으면 영화가 이해 안되면 어쩌지 하는 분들이 있을 듯 하여
원작 추천글을 작성해봅니다. 원래 듄 개정판이 나올 당시 구매를 고민하는 분이 계셔서 길게 작성했던 댓글인데
조금 보기 편하게 편집하여 재업로드 합니다.
"듄이 정말 반지의 제왕급 작품인가?"
많은 평론가들과, 추천 문구에서, 그리고 이번 영화를 비견할 작품을 찾을 때 많이 보신 질문일겁니다.
오늘의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듄은 프랭크 허버트 일생의 역작으로 완결되지 못하고 저자가 사망했지만 sf 불멸의 명작으로 남은 작품입니다
프랭크 허버트 그 자신의 필력 자체는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 톨킨처럼 글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세계관 구축이 너무나도 심도 있고 훌륭합니다.
분명 SF를 표방하고 지구가 아닌 또다른 사막 행성을 배경으로 하며 스페이스 오페라에 가까운 구성을 취하고 있으나, 그 전개나 풀이가 액션!!!! 파워!! 전쟁물이 아니라 철학서나 정치스릴러에 가까운게 특징입니다.
보통 스타워즈식 스페이스 오페라가 우왕 우주 전함 비행기 뿅뿅뿅하며 세계관이 옆으로 넓어지는 것에 비해(오해 마십시오 저는 인생영화를 스타워즈 올드 시리즈라고 말할 정도로 스타워즈 빠돌입니다) 세계관이 깊고 뾰족하며 날카롭게 벼려져있습니다.
또, 단순 영웅주의 서사로 '내가 다 짱이다!! 다 죽인다!! 다 이긴다!!!!!" 하는게 아니라 자기가 감당하기 어려운(싫은?)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정치적인 목적이나, 종교적인 목적에 휩쓸리면서도 최선의 노력과 인간의 의지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 노력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운명이나 거대한 흐름에 의지가 얼마나 희마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후반에 가며 그 주인공의 자손들이 그의 뜻을 곡해하거나 의도했던 바와 완전히 다른 역사가 흐른다거나. 셰익스피어식 비극 서사시적 면모도 있습니다)
또 그 '올바른'의 기준이 인간중점적인 내용이 아니라는 점 = 네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누군가에겐 악행일 수 있다. 라는 방식으로 철학적 접근법을 취하고 있는 것이 읽기를 더욱 즐겁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픽션적 측면에서 니체가 말했던 위버멘쉬. 초인적이고 무결한 인간에 대한 경고와 외경에 대해서 은유하고 있습니다.
그런 내용인 주제에 , 그 거대한 배경을 그렇게 공들여서 매력적으로 그려 놓고 그 안에서 인간군상극, 정치극을 합니다.(마치 왕좌의 게임 처럼 아니죠. 왕좌의 게임이 듄을 따라간거죠.) 그러다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우주 생물이나 우주 재해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인간이 자신의 기준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허무와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 인간이 그 와중에 어리석은 선택과 욕심을 어떻게 승화시키는지에 대해서도 세세히 다루고 있는데, 그걸 강요하지 않고 선택과 결과, 기대와 현실로 담담히 보여줍니다.
캐릭터를 소품처럼 사용하는 것도 큰 특징인데, 아무리 매력적인 캐릭터를 그렸어도 극에 필요한 만큼만 딱 딱 딱 사용하여 적재 적소에서 과하지 않게 사용하는 것 역시 노련합니다.
또한 60년대 전후 냉전이 지속되고 있던 시절에 쓰였는데도 불구하고 초 강대국(말하지 않아도 미국, 소련)들의 자원을 매개로 한 패악질에 대한 경종까지 울리고 있기 때문에 안그래도 힙스터 기질이 있는 SF 팬들은 엄청나게 열광하는 것이지요.
올바름의 기준이나 차별에 대해서도 여러 각도에서 캐릭터들의 서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독자가 생각할 수 있도록 풀어내고 있으며 그리고 실존했던 계급제 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에 의한 계급과 차별, 평등이나 성 역할에 대한 이야기 역시 무척 '현대적' 입니다. 70년대 소설인걸 생각해보면 얼마나 앞서 나간건지...
세가지 측면에서 듄은 후속주자들이 따라오지 못할 경지에 올라있는데요
1. 마치 헐리웃 클리셰와 서부극의 관계 처럼, 많은 SF들의 '멋진장면' 이나 '멋진설정'은 엔간하면 듄에서 이미 거의 다 해본 것들입니다. 대충 호언장담이 가능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열광하는 sf , 스페이스 오페라들이 이미 듄에서 차용한 요소들이었거든요. sf에서 앞으로 뭘 하던지 결국 뿌리를 찾아보면 듄이라는거죠.
2. 듄 전까지 사람들에게 과학이나 우주는 너무도 멀리 있고 비현실적인 마법과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에, 문학계에서도 인정 받지 못하는 판타지에 가까웠으나 프랭크 허버트는 과하게 현실적인 수준의 세계관 구축으로 심심풀이가 아닌 문학 작품의 수준으로 장르적 기반을 마련합니다.
3. 미완결이기 때문에, 결말에 호불호가 갈릴 일이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끊임 없이 자신만의 듄의 결말을 상상하며 토론하고 있다는 것
물론 프랭크 허버트의 아들이 뒤를 이어서 계속 썼는데, 그건 듄으로 치지 않는 것이 정설입니다. 본펜에 비하면 쓰레기에 가깝거든요
유일한 문제는 프랭크 허버트 자신이 글을 친절하게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입니다.
아서 클라크(스페이스오딧세이, 유년기의 끝) 도 칼 세이건(콘택트, 코스모스)도 듄 에 대해서 다시 나올 수 없는 소설이라고 극찬했고
SF출판계 수상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휴고,네뷸러 상 모두 수상했지만 그 모든 이가 "글을 잘쓴다" 라고 칭찬하지는 않았다는 것.
무수한 고유명사가 있는데, 이걸 주석으로 넘기고 서사와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못알아들으면 니들이 주석 읽어보던가. 내 작품은 쩌니까. 세계관에 들어오기 위해선 너희가 노력해! 라고 강요하는 듯한 과한 자신감과 불친절이 있습니다.
그래서 번역이 중요합니다. 3부쯤 넘어가면 안그래도 분량에 치여서 슬슬 지루해지는데,
구판 번역은 나쁘진 않았지만 고유명사에 대한 통일이나 생소한 설정들이 매끄럽지 못하게 번역된 부분들이 간혹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번에 나온 신간은 (여전히)불친절하지만 그래도 역자와 출판사가 머리를 싸매고 어떻게든 매끄럽게 만들려고 노력한 티가 많이 납니다.
초반 30 페이지 정도가 정말 통곡의 벽이지만, 만약 영화를 이미 보셨다면 훨씬 유리하신게,
그 초반 30페이지도 전혀 문제될게 없습니다. 영화에서 이미 비주얼로 보신거라 '아 이거' 하고 슉슉 넘어가실 것이거든요
설명이 길어졌는데,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듄을 반지의 제왕과 비견하는 것이 옳은가?"
저는 옳다고 봅니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 만큼 문학적으로 고등한 성취인가로 따진다면 NO에 가깝고,
SF적으로 불멸의 아이콘이자 후속주자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줄 정도로 앞서있는 작품이었는가? 를 생각한다면 한없이 YES에 가깝습니다.
정말 한 없이, 한 없이 YES요. 얘가 없었다면 스타워즈부터 스타크래프트, 워해머도 왕좌의게임도 에일리언, 블레이드러너, 터미네이터, 매트릭스가 나오지 않았거나 지금의 모습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결말이 없다는게 아쉽고 꺼려지신다고요?
걱정마세요. 듄은 사실 초반 3권 정도에 뿌려진 이야기는 거의 다 회수되는 느낌이고(그 세권이 총 2000페이지가 넘는게 문제지만요)
그 이후는 후일담에 후일담에 후일담에 후일담에.... 그런 느낌이거든요.
걱정마시고.
읽으십시오. 지평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상 오늘의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영화를 보실 분들에게, 그리고 듄 원작이 궁금하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참고차. 듄2 까지가 딱 '1권' 분량입니다.
요약하면 원작을 잘썼느냐 하면 no 이지만 좋은 작품이냐 하면 yes
요약하면 원작을 잘썼느냐 하면 no 이지만 좋은 작품이냐 하면 yes
2권까진 봐도 괜찮게 볼수 있다던데 난잡하지않게 좀 더하면 3권까지가 적당하다고- 살까말까 고민중임
리산 알 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