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봉요원 601화 忠正何若 '충직하고 바른 이들을 무엇으로 보는가.'
제목 忠正何若은 유향이 편찬한 초사[楚辭] 칠간[七諫]장의 원세[怨世; 세상을 원망하며]편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칠간편의 작가는 한 무제 당시에 사부(辭賦)로 이름 높았던 '동방삭(東方朔)'입니다.
굴원이 유배를 당해 강에 몸을 던지기 전 당시 초나라 조정의 무능과 부패를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小人之居勢兮,視忠正之何若。
권세를 차지한 소인배들, 충직하고 바른 이들을 무엇으로 보는가?
改前聖之法度兮,喜囁嚅而妄作。
전대 성현들의 법도를 바꾸고, 은밀히 서로 작당하여 마음대로 하는 것 좋아하네.
親讒諛而疏賢聖兮,訟謂閭娵爲醜惡。
모함하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고 어진 이를 멀리하니 여추(閭娵) 같은 미인을 추악하다고 떠벌리네.
愉近習而蔽遠兮,孰知察其黑白?
측근들을 좋아하고 어진 이를 가리고 멀리하니 누가 옳고 그름을 알리?
卒不得效其心容兮,安眇眇而無所歸薄。
끝내 마음의 포부를 다하지 못하고 멀리 버림을 당하니 귀의할 곳이 없네.
專精爽以自明兮,晦冥冥而壅蔽。
내 충정은 한결 같고 분명한데 세상은 어둡고 혼탁해 가려지네.
年既已過太半兮,然埳軻而留滯。
나이는 이미 반백을 지났건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곤경에 처해 있네.
欲高飛而遠集兮,恐離罔而滅敗。
높이 날아 먼 곳에 가고자 해도 법을 어겨 몸과 이름이 망가질까 두렵네.
獨寃抑而無極兮,傷精神而壽夭。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은 끝이 없고 내 정신을 해쳐 수명을 짧게 만드네.
皇天既不純命兮,余生終無所依。
하늘의 명은 일정치 않으니 나는 평생 귀의할 곳이 없네.
願自沈於江流兮,絕橫流而徑逝。
흐르는 강물에 잠겨 물 따라 떠돌다 멀리나 갔으면.
寧爲江海之泥塗兮,安能久見此濁世?
차라리 강과 바다의 진흙이 될지언정 어찌 이 혼탁한 세상을 오래 볼 수 있으리?
가끔 화봉요원은 각 화의 제목도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모든 경우가 다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5권의 39화부터 41화까지는 각 화의 제목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내용을 만들죠.
하늘과 땅이 보고 증언하리니[天地見證, 39화] - 사람과 사람 아닌 자[人與不是人, 40화] - 불꽃의 봉황이 들판을 불사르네[火鳳燎原, 41화]
이런 공식을 601화에도 동일하게 적용해 볼 수 있지요. 600화와 601화의 제목을 나란히 놓아 하나의 문장으로 만드는 겁니다.
꿈조차 변경 지역의 성을 감돌 정도로(변경 지역 성의 꿈을 꿀 정도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변경지역을 떠돌아다니는 사람들[夢繞邊城, 600화 제목], 이들은 충직하고 바른 사람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을까요?[忠正何若, 601화 제목]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곤경에 처해있는 夢繞邊城에 해당하는 인물들, 마초와 8기는 충직하고 바른 사람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을까요? 8기에게 있어 ‘충직하고 바른 사람’은 순욱 사형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권세를 차지한 소인[小人之居勢兮], 조조(曹操)는 전대 성현들의 법도를 바꾸고 제 마음대로 작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소인들이 벌이는 세태에 밀려난 마초&8기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요?
원세[怨世]편의 화자(話者)는 양가적인 감정을 노래합니다. 세상을 뜨고 싶지만 그런 행위가 법을 어기고 명예를 더럽히는 행위가 될까 전전긍긍해 합니다. 그러나 또 살아가기엔 저런 간신들의 횡포를 도무지 용서할 수 없어 분노합니다. 간신들의 전횡을 눈감아주면서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는 않은 그런 이율배반적인 마인드지요. 마초와 8기도 그런 감정을 갖고 있는 걸까요?
강유까들이 ㅂㄷㅂㄷ 하겠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