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후지 나기사는 친구가 적다.
그렇다고 나기사의 인성이나 성격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다만 드넓은 키보토스에서도 3대 학원으로 꼽히는 트리니티 학원의 학생회인 티파티 소속, 그것도 그 티파티의 호스트라는 입장은 그녀가 쉬이 다른 이들에게 마음을 터놓을 수 없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나기사의 능력은 학생답지 않게 뛰어났고, 그렇기에 그녀는 그녀의 자리의 무게감을 십분 이해하고 있었다.
나기사는 그녀의 말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학생이 움직이는지 알고 있었고, 또 그녀가 내뱉은 단어가 해석의 여지를 남겨버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잘 알고 있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물론 그래봤자 학생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얼마 전에 깨달았지만.
여하튼 그런 이유 탓에 나기사의 주변에는 지인이라는 항목에 포함될 사람은 많았지만,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무척 적었다. 매사 진지하고 신중한 나기사의 성격 탓이기도 했다.
기껏 꼽는다면 오랜 시간 티격태격거리며 악우로 지내온 미소노 미카와 나기사가 특별히 아끼는 아지타니 히후미 정도일까.
정말로 아끼는, 그래서 더욱 미안하고, 또 화해 해줘서, 다시 원래 관계로 돌아와줘서 고마운 히후미 양.
내 소중한 히후미 양.
"안돼요, 선생님.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시면."
그렇기에 나기사는 들려오는 소리에 숨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히후미 양에게 저지른 그 간의 패악질이 업보로 돌아온 걸까.
나기사는 혹 거칠어진 숨소리가 얇은 커튼 너머로 들릴까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과거를 되짚었다.
선생이 트리니티를 방문했다는 소식에 나기사는 직접 선생을 마중하러 나섰었다. 선생 본인은 한사코 거절하며 자신은 한낱 선생이라 말할 뿐이지만, 그가 키보토스 최중요 인물 중 하나인 걸 부정할 사람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조심성 없이 혼자 나다니는 것 자체가 민폐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가벼이 한숨을 내쉰 나기사는 이내 선생을 발견했다. 다행히 신은 나기사를 배신하지 않은 듯, 대하기 껄끄러운 선생의 곁에는 히후미가 있었다.
우연히 둘이 마주쳐 담소라도 나누고 있던걸까. 무엇이 그리 할 말이 많은지 히후미는 방긋방긋 웃으며 선생의 곁에서 계속 조잘거리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계속 듣고 싶지만 같이 온 티파티 학생들도 있어 그럴 수도 없는지라, 나기사는 그들에게 일부러 소리를 내며 다가갔다.
다가오는 인기척을 선생이 먼저 눈치챘다.
"아, 나기사. 오랜만이야."
"안녕하세요, 선생님, 히후미 양."
선생이 손을 들어 인사하자 나기사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언제나 그렇듯 선생은 미덥잖은 미소를 띈 채로 나기사를 맞이했다.
선생의 반응은 그다지 상관없었다. 나기사는 미소를 띈 얼굴로 히후미를 바라보며 히후미의 인사를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히후미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작은 웃음을 머금은 채 그저 나기사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
평소와 다른 히후미의 그 표정, 그 분위기에 나기사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언젠가의 망상이 되풀이 되며 머릿 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아하하, 즐거웠어요, 나기사 님과의 친구 놀이.
허억, 나기사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뒤를 따르는 티파티의 다른 학생들이 나기사에게 다가가기 전에 선생이 놀라 먼저 다가섰다.
"나기사, 괜찮아?"
휘청이는 나기사를 받아든 선생이 나기사에게 물었다. 어디선가 쯧, 하는 혀차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아뇨, 아뇨, 네……. 괜찮습니다. 잠깐 현기증이 나서."
"마중 같은 거 안나와도 괜찮다니까 그러네. 중요한 일이 있어서 온 것도 아니고, 잠깐 산책 겸 학교나 좀 보러 나온 것 뿐이야."
"맞아요, 나기사 님, 돌아가서 조금 쉬시는 게 어떤가요? 선생님은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나기사를 걱정하는 선생의 말에 히후미의 말이 더해졌다. 걱정이 어린 상냥한 목소리였다. 방금까지의 그 분위기가 거짓말인 듯 했다.
암, 착각이 분명했다. 그 순수하고 착한 히후미 양이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을리가 없잖아. 스트레스가 조금 쌓인 걸까. 그래, 선생과 히후미 양을 티파티에 초대하자. 선생이 껴있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히후미 양과 향이 좋은 홍차에 스콘을 곁들여 다과회를 한다면 마음이 차분해지겠지.
"괜찮아요, 히후미 양. 이런 건 제가 할 일이니까요."
"선생님은,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힉, 나기사가 다시 숨을 들이켰다. 나기사는 눈을 돌려 히후미를 바라보았다. 세상 무해해보이는 표정, 상냥한 목소리,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그리고 있는 미소는 천진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세차게 박동하는 심장, 나기사의 숨이 거칠어졌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란 선생이 나기사의 뒤를 따르던 티파티의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들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인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미안한데, 양호실이 어딘지 알려줄 수 있을까? 나기사 상태가 좀 심각해보이네."
"아, 네, 넵."
선생은 나기사를 들쳐 업고는 그리 물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축 늘어진 몸이 힘없이 선생의 등에 늘어졌다. 선생은 능숙하게 그런 나기사를 고쳐 업었다.
쯧.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에 주변 소리가 웅웅거리는 와중에도 선명하게 들리는 그 소리에 나기사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뜬 나기사는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튼이 쳐진 장소, 조금 딱딱한 침대의 느낌을 보아하건데 양호실에 누워 있는 듯 했다. 쓰러진 여파인지 몸에 영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나기사는 눈을 굴려 시계를 확인했다. 다행히 그리 긴 시간이 지나있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나기사가 깰 때까지 조금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네. 먼저 돌아가렴, 내가 나기사가 깨어있을 때까지 있을 테니까. 히후미는 어떻게 할래?"
"저도 선생님하고 같이 기다릴게요."
"네, 염치 없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얇은 커튼 너머로 두 학생이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실루엣이 보였다. 양호실에 도착해 나기사를 눕힌지 얼마 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또각거리는 소리가 멀어졌다.
팔로 눈가를 가린 나기사가 가벼이 숨을 내뱉었다. 히후미의 앞에서 추한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에 괜시리 기분이 우울해졌다.
그래도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준다니,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트리니티에서 손에 꼽는 순수함과 상냥함이었다.
그래, 설마 히후미 양이 내게 혀를 찰리가…….
"안 돼요, 선생님.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시면."
그리고 들리는 커튼 너머로 들리는 끈적한 히후미의 목소리. 나기사가 숨을 들이켰다.
달큰하게 늘어지는 목소리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였다. 다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담아 나기사는 눈을 돌려 커튼 사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키, 그 가방, 그 머리 스타일, 그 모든 것이 언제나 나기사가 알고 있는 히후미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픈 사람에게 그러는 거 아니야."
더욱 놀라운 것은, 선생은 그런 히후미의 목소리가 익숙한 듯 옅은 쓴웃음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는 사실이었다. 놀란 나기사는 혹여 바깥에 숨소리라도 새어나갈까 제 입을 틀어막은 채 커튼의 틈새를 주시했다.
"그럼 안아주세요."
꿀이 떨어지는 목소리라 하던데, 그 말이 꼭 들어맞았다. 히후미는 한껏 팔을 벌리며 선생에게 다가갔다. 선생은 그런 히후미를 밀어내는 기색 없이 히후미를 꼭 끌어안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선생의 품에 파묻힌 히후미는 머리가 헝클어지는 것마저 기쁜 듯 에헤헤, 하는 실없는 웃음 소리를 내며 선생의 품에 뺨을 부볐다.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는 강아지가 저럴까.
명백한 연인의 모습이었다.
나기사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기어코 선생의 마수가 히후미에게 뻗쳤다니.
물론 선생은, 나기사에게 껄끄러운 사람일 뿐 나쁜 사람은 아니긴 했다.
이 키보토스에서 가장 약한 사람일텐데도 언제나 솔선수범해서 학생들을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다. 키도 뭐, 제법 커서 굽이 높은 신발을 신은 하스미보다 조금 큰 정도는 됐으며, 몸도 그래, 마냥 호리호리하지는 않은 남자다운 몸이기도 했고, 부스스한 머리에 이따금씩 쓰는 안경이 지적으로 보여 어울렸고, 나긋한 목소리도 나쁘지 않았고, 유머 감각도 없지는 않았으며,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었고, 커피를 좋아하는 것은 조금 그렇지만 홍차도 나름 즐겼으며, 무엇보다 이 키보토스의 초법 권한을 가진 샬레 소속이었다.
정정하자, 좋은 사람은 맞았다.
하지만 그렇다한들 적어도 나기사에게 있어서 선생은 히후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둘을 비교한다면 히후미가 훨씬 아까운 존재였다.
선생의 품 안에서 애정을 담뿍 담은 눈길로 선생을 바라보던 히후미가 선생의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까치발을 들었다.
이윽고 둘의 입술이 맞닿았다.
나기사는 입술을 짓씹었다.
히후미가 아까운 것도 아까운 것이지만, 무엇보다 둘은 선생과 학생의 관계 아닌가. 지금 당장 나기사가 뛰쳐나가 선생과 히후미에게 설교를 늘어놓는대도 정당성은 나기사에게 있을 터였다.
지금 당장 뛰쳐나가 무슨 짓을 하는거냐며 다그쳐야 할텐데. 선생과 히후미를 떨어뜨려놓아야 할텐데.
그런데, 그런데 왜.
가슴이 이리도 술렁이는지.
두근거리는 가슴, 가빠지는 호흡. 야릇한 기분이 몸을 감쌌다.
이리 훔쳐보는 것이, 또 보고 있는 장면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나기사의 눈은 선생과 히후미가 입술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기사는 그렇게 한참 동안, 신음이 새어나올까 입을 틀어막은 채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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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썼던거 생각나서 추하게 재업
음해 듬뿍
자기한테는 오직 히후미 뿐이라며 절망에 절망을 롤케잌 레시피처럼 쌓아가는 나기사 선생님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나기사도, 보충수업부의 친구들도 모두 방해된다면 치울 수 있는 파우스트 그리고 미카 다음으로 나기사를 맛보기 위해 나기사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떠나가게 만드는 더러운 어른
왜 마지막에 히후미가 나기사쪽 힐끗 보면서 웃는거 안나옴
아닠ㅋㅋㅋ 미카는 이미 맛본상태인거냐곸ㅋㅋㅋㅋ
아침드라마 왜 보는지 알겠다
아니 거기서 끊으면 어떡해!!!
자기한테는 오직 히후미 뿐이라며 절망에 절망을 롤케잌 레시피처럼 쌓아가는 나기사 선생님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나기사도, 보충수업부의 친구들도 모두 방해된다면 치울 수 있는 파우스트 그리고 미카 다음으로 나기사를 맛보기 위해 나기사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떠나가게 만드는 더러운 어른
룻벼
아침드라마 왜 보는지 알겠다
룻벼
아닠ㅋㅋㅋ 미카는 이미 맛본상태인거냐곸ㅋㅋㅋㅋ
(그리고 며칠 후) 아우우...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 히후미에요...
왜 마지막에 히후미가 나기사쪽 힐끗 보면서 웃는거 안나옴
오
다음편 작가님은 바로 당신이야
오,,,,
우리 파우스트님께선 트리니티의 실권자를 좌지우지하는 분이라 이말씀이야! 정의실현부도 지원받기 어렵다는 티파티 휘하 포병대도 전화 한통이면 움직인다고!
세이아는 친구도 아니라는 냉혈한 나기사는 당해도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