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제우가 직접 약을 만들고 부적을 만들어 먹임
부적뿐 아니라 선약을 만들어 일종의 만병통치약이라고 홍보함
"한울님께 받은 재주로 만병회춘(萬病回春)할 수 있고 편작(扁鵲)과 같은 명의(名醫)가 다시 온다고 하여도 나의 이 선약을 당할 수 없고 만세명인(萬歲名人)은 자신뿐"이라고 하였고
퇴리(退吏) 이내겸은 그의 아버지가 병에 걸렸는데 낫지 않아서 최제우를 찾아갔더니 주문을 외우라고 권하여 밤낮으로 외워보았지만 차도가 없어서 중단했다고 함
최제우 왈:
선약을 병에 써보니 차도가 있기도 하고 차도가 없기도 했는데 그 원인을 살펴보니 정성을 드리고 또 정성을 드려서 천주를 지극히 위하는 사람은 매번 효험이 있었고 도와 덕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하나 같이 효험이 없었다
2.
동학을 창시했던 최제우는 동학의 주문, 부적, 목검, 검무, 검가를 만들었고,
최제우가 용담검무를 만든 건 유명함
또 최제우는 서양인이 우리나라에 오면 동학의 주문, 부적, 검무로 그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도교 방술의 효험을 동학 주술의 효험으로 변형한 것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드립이 아니라 진짜)인데, 목검을 만들고 검무를 퍼트리는 건 조선이 그렇게 경계하던 사병 양성이나 다름 없음
당장 목검을 철검으로만 바꿔주면 바로 민병이 됨
실제로 이건 정말 도가적인 목적이 맞을까 좀 의미심장한게..
3.
최제우는 갑자년(1864) 2월과 5월 사이에 서양인이 용만(龍灣)으로부터 오면 자신의 통문을 기다렸다가 모두 따르라고 하였고 검무를 잘 배운 자들이 장차 보국안민(保國安民)의 공훈을 세우면 자신은 고관이 되고 다른 사람들도 그다음 관직을 얻을 것이라고 예언(?)했음
또 포교활동을 하면서 누가 하양현감(河陽縣監)이 되고 이조판서(吏曹判書)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음
보국안민의 공훈을 세우면 최제우 자신은 고관이 되고 다른 사람도 관직을 얻게 될 것이라는 내용인데 이는 정감록의 거사 방식(개국공훈록)임
정감록의 거사 방식이 위험한 건 무력 봉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높은 자리에 오른다는 걸 대놓고 말한다는 게 문제
///
최재우와 동학에는 실재로 어떤 위기감이나 애민 정신이 있었는데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 것도 그렇고 향촌 지식인인 전봉준이 동학의 ‘보국안민’과 ‘경천수심’, ‘대체정심’에 감동하여 입당한 만큼)
뭘 어떻게 해보려면 세력이 있어야 하고
세력을 부풀리기 가장 현실적이고 빠른 방법이 혹세무민과 가까웠던 것 같음
동학농민운동의 발단을 보면
최제우 신원 운동 => 이를 위해 동학이 서학과 다르며 사도가 아님을 주장 => 외국의 선교사와 상인을 배척하는 운동 => 외국세력에 대한 무력대응을 주장 => 민란과 합쳐져 반봉건/반외세 봉기로 발전한 거지만
동학농민운동을 하기 전에도 최제우의 포교 활동을 보면 몬가몬가를 준비하던 게 확실해 보임
즉 실제로 혹세무민을 했으니까...
+ 종이장사였던 강원보는 병에 걸려 누워 있었는데 동학 주문을 외우면 빠졌던 머리털도 다시 생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최제우를 찾아갔으며 병이 나아서 주문 외우기를 그만했다고 하였다
탈모를... 치료해...?
아! 우린 그것도 모르고 ㅠ-ㅜ
* 한국근현대사연구 108집 참고
동학농민운동 때문에 이미지 좋아서 그렇지. 부적 만들고 병 치료한다 그러고 무장한다 그러면 정부 입장에서는 코리안 황건적이긴 함 ㅋㅋ
혹세무민이고 사이비였을수는 있지 근데 그걸 진압하려고 외국군대 끌고온게 진짜 개븅신었던거지
머리만 나게 해준다면 신도가 될 사람은 넘친다.
청말의 태평천도운동하고 같다고 봐야겠지
갈! K-히노카미 카구라로 한반도의 흡혈귀를 멸살하신 최제우님을 음해하지 말라!
안중근이 동학을 싫어했다던데 이런 이유인가
1번은 그 뭐냐... 황건적이네 황건적!!
1번은 그 뭐냐... 황건적이네 황건적!!
한방사ㅋㅋ
머리만 나게 해준다면 신도가 될 사람은 넘친다.
동학농민운동 때문에 이미지 좋아서 그렇지. 부적 만들고 병 치료한다 그러고 무장한다 그러면 정부 입장에서는 코리안 황건적이긴 함 ㅋㅋ
킬링머신고나우
청말의 태평천도운동하고 같다고 봐야겠지
ㄴ태평천국운동
ㅇㅇ
태평천도는 신x지, 통x교 같은 기독교계 사이비라서 황건적이 좀 더 어울리지 않나 싶음. 민초들의 혁명이기도 하고
태평천도는 기독교계 사이비이고, 동학은 도교계열+ 민족종교계열+ 신분타파를 내세운 황건적 루트지ㅋㅋㅋ
태평천국 운동도 종교색만 기독교계지 가나한 농민들 중심으로 반 봉건을 내세운 집단이라 비슷하다고 한거임
실제로도 황건적스럽게 활동한 애들도 있었지...
황건은 반봉건은 아니라서
탈모치료가 완벽히 됐다면 월드클래스 종교가 됐을듯
뭐... 머리가 났다고...?! 동학 만세!!!
주술써서 성공했으면 몰라도 실패했으면 혹세무민이지..
보고나니 K-태평천국운동.
신원 운동도 군진 형태로 집회를 해 되게 오해를 샀다던데
안중근이 동학을 싫어했다던데 이런 이유인가
민감한 주제라서 잘못건들면 후폭풍이 장난 아니니까 언급을 꺼리는거지. 자세히 정황을 보면 마냥 좋게만 보긴 힘든건이었음.
거기다 여느 농민봉기가 그렇듯 동학 깃발 걸고 약탈한 부류들도 제법 있었기에
안 장군님이 독실한 기독교신자시니까 동학이랑 친한게 말이 안되긴하지ㅋㅋㅋ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력진압하는 쪽
혹세무민이고 사이비였을수는 있지 근데 그걸 진압하려고 외국군대 끌고온게 진짜 개븅신었던거지
조정 대신들도 민란 진압하려고 청나라를 불러들이는 게 말이 되냐, 청나라 부르면 일본도 톈진조약에 의거해 군대 보낼 거다 하며 반대했는데 군밤이가 지 ㅈ대로 청나라를 불러들여가지고
ㄹㅇ 동학이 이정도 미화된 건 고종 ㅂㅅ이 외국군대 끌고와서 밀어버린게 크지ㅋㅋㅋ 차라리 설득을 하거나 밀려면 자국군대로 밀어야하는데 그 조차 할 힘이 없었다는게
근데 동학과 흥선대원군과의 썸(?)을 고종이 혼자 지레짐작해버려 급발진했다던데
더 웃긴 건 20년 동안 개항하고 근대화하면서 당시 미국제, 독일제 소총과 독일제 야포 그리고 캐틀링으로 무장한 조선군은 동학군 진압을 하고도 남을 전력이엇고 실제로 조선군에 의해 진압됨. 오히려 조선군들 진압하러 간 사이에 쪽■■ 군대만 한양으로 난입해서 경복궁 점령하고 고종 인질로 삼으면서 급격하게 일본 영향권으로 들어갔지.
전봉준이 흥선대원군의 식객이었던거 생각하면 의심암귀 걸린 고종이 의심 안 하는게 기적일정도
갈! K-히노카미 카구라로 한반도의 흡혈귀를 멸살하신 최제우님을 음해하지 말라!
(드립입니다)
녹두의 호흡 제 1형!
난 백도교가 결정타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그냥 문SM 사후에 중거장막성전에서 뉴천지 나온 수준이네
따지고보면 의화단 같은거긴 함
동건적이라니
최제우스가 잘못했네.
사실 동학농민운동에서 동학"농민운동"으로 봐야한다고 봄 그리고 우리가 황건적 생각해보면 장각을 일종의 혁명사상가로 생각하듯이 최제우도 그런 포지션인거지
그러니 "청천이사 황천 당립!!!!!!!!"
장각을 일종의 혁명사상가로 보는건 중국 공상당정도나 그렇지 장각은 혁명사상가라고 볼수 없어 내용부터가 한나라 무너트리고 내가 황제 하겠다인데
황건당도 봉기운동이란데 가치가 있는거지, 장각같은 대가리들한테 가치가 있는건 아님
그 당시 정치체계의 한계점으로 볼 수도 있고 어차피 장각은 시작한 사람일뿐 중요한건 황건적 자체가 중요하듯이 동학농민운동도 최제우는 동학을 만든 시작점이고 당시 왜 만들게 된건지 배경이 중요하게 된거지 애초에 자혀서 효수된 이후부터 최제우 역할은 없지 그리고 공산당말고도 다른나라 학자들도 황건적에 관심이 많음 나름 동아시아 초기 거대한 농민봉긴데
그말에 동의함 혁명사상가라는게 크게 중요치 않지 막말로 체게바라도 장각 최제우랑 다를게 뭐임
보통 반란과/혁명을 구분할때 새로운 체계에 대한 비전의 유무를 보거든 새로운 비전없이 윗대가리만 바뀌면 쿠테타고 새로운 체계를 만들면 혁명이라고 봄 성공여부와는 상관없음 우리나라 예를 들자면 왕건의 궁예축츨은 쿠테타고 이성계의 조선 건국은 혁명임 황건의 경우 한나라 전복뒤 비전이 없어 그래서 그의 영향이 오래 가지 못하고 지방 군벌에게 다 흡수가 되고 사상은 사라짐 그 이유로 혁명이라 보기 힘든거야
그런면에서 보면 나름 동학농민운동은 성공했음 혁명의 단계까진 볼 수 있겠구만
체게바라와 장각은 차이점이 크지 체게바라는 그의 행동을 통해 제3세계에 민족주의 봉기에 영향을 주었고 자본에 의한 주권 침입에 대한 경각심을 주어 현재가지 영햐응ㄹ 기치는지라 혁명의 아이콘이 된거고 장각이 내세운건 전국시대부터 있던 오행설을 가져다가 수덕인 진을 화덕인 한이 몰아 내엇고 이제는 토덕인 내차래다라고 주자을 했을뿐이야 중국의 농민 봉기로 혁명의시초라고 할구 있는건 차라리 "왕ㅁㅁ상의 씨가 다로 있냐"라는 기치를 내세운 진승,오광의 난임 실제로 이 이후로 민심을 얻으면 출신 성분따위는 별 상관 없다가 되었으니간
최재우의 동학에 대해서는 한국인인지라 객관적으로 내가 평하기는 힘듬
너가 말하듯이 최제우의 동학이야 몰라도 그냥 동학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볼만하지 않을까?
왕건의 궁예축출은 단순히 쿠데타가 아니라 기존의 국가인 태봉국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국가 고려를 건국하는 역성혁명이기 때문에 혁명이 맞기도 함. 이성계도 왕건처럼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건국했기 때문에 조선 건국과 다르지 않음.
새왕조를 열었다고 혁명이라고 보기 힘듬 왕건의 고려의 경우 호족 중심의 사회를 그대로 놔둔거라서
고려는 한동안 지방관도 파견 못할정도로 호족 사회였음
외국 군대 끌고 온 상대가 ㅄ이어서 좀 나아보이는 것이지 사실 K 황건적과 다를바는 없다고 봄
창천의 세상은 이미 졌으니, 황천의 세상이 온다!
그 혹세무민 동학마저 기겁하고 그만둘테니 외세 돌려보내라고 말하게 만든 고종 너가 넘버원이다
일단 계기만큼은 탐관오리에 대한 저항이라는 충분한 명분으로 일어났음에도, 자기들 때문에 외세 개입의 여지가 생기자 바로 타협에 들어간 동학 vs 겨우 청나라와 일본이 '한 쪽이 먼저 들어오기 전까진 조선 개입 금지'로 조약 맺어서 외세로부터 안전장치 마련했는데, 그걸 깨버리고 멍청하게 외세에 원군 요청해서 균형 깨버린 고종과 민비 혹세무민이라도 동학이 고종보다 똑똑하긴 한듯
그건 또 아닌게 전자에서 타협안보고 움직인 동학애들도있어서
'한 쪽이 먼저 들어오기 전까진 조선 개입 금지'가 안전장치가 아님
원래 주권국가가 원조를 요청하면 그때 가서야 개입이 가능한데 (조선의 요구에 의한 명의 개입) 그거 없이 너 들어 왔으니 나도 들어갈께 라는거니깐
보편적으로는 그렇겠지만, 당대 한국사의 흐름에서만 본다면 불평등조약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조선을 지켜주는 조항이었다고 생각함
일본이 군사 행동하기 위한 함정조약이고 실제로 그렇게 작용한거임 의도는 불순해도 조선정부의 원군 요청에 의한 청의 원군 파견은 외교적으로 문제되는건 아니야 그걸 저조항을 무기로 무단으로 일본이 군을 보낸거지
저게 진짜 보호장치였다면 "무단 개입시"라고 되야 함 그게 없이 무조건 개입시라고 하면 어떠한것도 고투리 잡을 수 있음
그런 거면 안전장치를 깬 게 아니라, 함정 장치가 있는데도 멍청하게 발동시킨 쪽에 가까웠네. 덕분에 알고 감
1급주술사 최제우. 특급이였으면 성공했을텐데..
+@로 동학 규모 커지고나선 처음 의도였던 이 탐관오리 새끼 처벌좀 해주소서라는 농민집단에서 벗어나서 정감록이라는 예언서 믿으면서 "이씨 왕조 시대는 끝났다. 정씨의 왕조가 들어선다!" 하는, 왕실 입장에선 역도 무리가 되버린게 존나 컸음
둘이 섞여있다는걸 의외로 모르더라 사람들이 당장 충청도 지방 동학봉기만해도 난 왕이다 이러는 찐 반란군계열이였던가..
교과서에서 동학 가르칠때 최제우 살짝 언급되고 전봉준으로 포커스 넘어가는게, 북접 남접이 별개의 집단이었다가 합쳐진거고, 동학 이름아래 약탈하던 도적무리들도 섞여있었고 그러다보니 세세하게 다 설명하면 동학 경멸하게 될 학생들 많아서 그럴듯
그리고 의외로 전봉준이 컨트롤 할수있는 집단도 아니였다는거 처음알았을때 좀 놀라긴했음ㅋㅋ
그리고 솔직히 농민들한테 뭔 돈이 있어서 전라도에서 시작한 농민군이 충청도까지 올라왔겠음 그냥 오는 도중 털면서 왔지 근데 동학농민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좋은 소리하면 걍 친일파로 까이니까 걍 조용히 있는거지
소설 토지에도 비슷하게 언급이 되는ㅋㅋㅋ
황건적 ㄷㄷㄷ
저래서 민비는 동학이 아닌 월급 때인 군인들 손에 감금 당하거나 축출 됐어야했음
진짜일수도 사이비일수도 있지만 민란을 막기 위해 외세를 부른다는건 미치광이나 할 생각이었음
그냥 전형적인 망국기 민란이었으니까 동학 고평가가 들어간건 사학계에서 식민사관 잡겠다고 지나치게 민족주의 사관 밀어주면서 뜬건데, 뉴라이트계열서 식근론 미는거 정확히 반대방향이라 썩 좋은건 아님
도교라는게 단순히 도교라는 종교나 철학이란 단순한 이미지만 생각하지만 중국 민중의 세계관이 반영된 생활 철학같은거라 도교로 흥한거 보면 중국에서 발흥한 사이비랑 차이가 없음
나라는 상관 없고 자기들 정권 아니 사실 정권도 아니지 자기들 이익만 보장되면 된다는거니까 나라가 망하든 말든 나만 등따숩고 배부르면 되는거지 마인드가 위정자가 가질 마인드인가
동학도 동학농민운동 할때에는 북접남접으로 갈라져 있었고 일부는 일본과 접촉한 정황증거도 있었음 솔직히 지나치게 농민,민중봉기 측면만 강조하다 보니 학정에 들고 일어난 농민들이란 점만 부각되는데 다루는데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이라고 봄
국사때 정의의 편이라 생각했는데
동학의 난 이후로 나라를 빼았긴후....차경석 이라는 인물이 강증산의 막내제자 였는데 독립해서 세운 교단이 천리교~~~똑같이 정감록을 베이스로 해서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에 세상이 뒤바꿔 져서 노비가 왕이되고 왕이 노비가 된다고 설교하고 각 지역관리자격은 돈받고 팔아먹다 망함 왜냐?.....그때가 됬는데 아무런 일도 안생겼음 이후 계룡산에 지어졌던 천리교 건물을 허물어서 지금은 없어진 중앙청 기초 말뚝으로 사용되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