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조약 편에서 검은양복이 색채에 대해서 말하길 '게마트리아의 최고의 숙적'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건 색채가 어떤 현상을 일으키는지에 대해서만 볼 수 있을 뿐 이해나 소통이 불가능하니까 연구하거나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겠지만
게마트리아의 4인방이 사실 다른 평행세계에서 입장은 달라도 학생들을 선도하는 선생과 비슷한 자리에 있었는데 색채에 의해 지금의 몰골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에 숙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무명사제들은 숭고도 신비도 없는 한낱 인간에게 색채가 관심을 가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프레나파테스의 사례를 보면 헤일로가 없는 평범한 인간도 색채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므로,
헤일로가 없는 게마트리아 4인방도 원래는 평범한 인간이었지만 색채에 의해 프레나파테스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색채의 효과는 본질의 반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관찰로부터 얻은 검은 양복의 개인적 의견일 뿐일 수도 있다.
실제로 색채를 접한 쿠로코는 본인이 지닌 신비가 공포로 반전되는 결과를 낳았지만, 원래부터 학생들이 '신비'와 '공포'의 양쪽 면모를 가지고 있으며 '공포' 쪽에 치우친 강화로 인해 결과적으로 반전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라는 주장을 본 적이 있다.
색채의 효과는 접촉한 자의 다양한 측면을 일률적이지 않게 강화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단순히 반전이 색채의 효과라면 베아트리체는 선한 성격으로 반전되어야 했을 것이다.
프레나파테스는 쿠로코의 지시에 따라 현재의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했고 현재 세계의 학생들을 위험에 빠뜨리긴 했지만 진짜 목적은 자신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두 학생을 살리는 것이었으니 선생으로서의 본질이 단순히 뒤집혔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오히려 계속 조종당하고 있었던 프레나파테스가 마지막 순간에나마 자신의 의지를 되찾았다고 볼 수 있는데, 원래 죽었어야 할 선생이 육체는 죽었지만 의지의 조각을 유지한 채 현재 세계로 올 수 있었던 건 색채에 의해 강화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검은 양복은 처음에 아비도스에서 선생이 어른의 카드를 사용했을 때에는 미래의 삶과 시간을 가불한다고 말했지만, 최종전에서는 선생이 카드를 계속 사용하면 자신들과 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했다.
이 두 발언은 얼핏 보기에는 인과관계가 있어 보이는데, 미래의 삶과 시간을 전부 쏟아서 마치 '반칙' 같은 행동으로 원하는 결과를 잡아가는 과정 중에 선생이 게마트리아처럼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방향으로 타락할 수도 있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비도스에서 1부 최종전에 이르는 사이에 선생이 가진 어른의 카드에 대한 고찰과 분석이 끝났기 때문에 의견이 달라졌다고 볼 수도 있다.
더 이상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 프레나파테스가 어른의 카드를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었던 점에서, '어른의 카드를 사용하는 대가는 미래의 시간을 가불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가능성이 생긴다.
마지막에 쿠로코를 1200 청휘석만 남기고 강화했으므로 프레나파테스에게 남아있던 남은 시간에서 1200 청휘석만큼만 남고 전부 소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메타적인 시선에서 접근했을 때 프레나파테스=선생은 얼마든지 청휘석을 더 과금할 수 있다.
즉 현재 세계의 선생에게 학생들을 맡기게 되면 더 이상 무명사제들의 수하로서 원래 세계를 멸망시켜야 할 이유가 없기에 본인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른의 카드를 사용하는 다른 리스크는 무엇일까. 사실 어른의 카드가 가진 힘의 근원은 색채이고, 사용하면 사용할 수록 색채의 성질에 따라 사용자의 어떠한 본질을 강화하는 것이 아닐까?
이 게임의 플레이어인 선생은 예수나 부처에 가까운 선한 성격을 가진 어른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다른 세계에서 키보토스에 초대되었을이 '어른' 들이 모두 주인공과 동일한 선성을 가졌을 리는 없다.
게마트리아의 4인방은 어떠한 경위로 색채와 접촉했고 그들의 내면에 숨겨진 악한 성질을 강화당한 것이 아닐까? 학생들을 본인의 목적을 위해 희생하는 어른으로 변질되는 것이 검은 양복이 말하는 '자신들과 같은 결말' 이라면 앞뒤가 맞는다.
어른의 카드를 쓰면 쓸수록 선생 또한 색채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므로.
여기서 좀만 더 사족을 덧붙이자면, 게마트리아의 4인방과 달리 선생은 키보토스 세계관에서는 진짜 선인이고, 어떠한 해석에서는 예수의 재림이라고 불릴 정도로 희생과 고행을 반복한 인물이다.
그의 본질에 부정함과 사악함이 정말 단 한 점도 없다면 어른의 카드를 사용하여 강화되는 성질 또한 긍정적인 것들 뿐일 것이다. 최종적으로 그의 선성이 극대화되었을 때, 어떠한 계기로 인해 그가 목숨을 잃게 되는 순간
선생은 숭고한 신비를 얻게 되고 헤일로와 함께 진정한 의미로 외부인이 아닌 키보토스의 주민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