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탄압을 피해 독일에서 해외로 이주했던 미국의 언론인 한나 아렌트가 1960년 체포된 후 예루살렘에서 전범재판을 받는 범죄자 아돌프 아이히만이 자기 스스로를 변호하는 모습을 직접 참관하여 지켜보게 되는데
자신의 죄는 그저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따랐다고 주장하는 아이히만의 모습을 보게 된 한나 아렌트는 ‘악이란 결코 거대하지 않고, 사악한 자들에게만 깃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이며 책 말미에 등장하는 ‘악의 평범성’ 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아이히만의 죄는 상부의 악행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나쁜 의미에서) 그의 순수함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사실.. 이것은 그의 삶 전체를 돌아보지 못한 아렌트의 착각이었고, 아돌프 아이히만은 그저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홀로코스트라는 거대한 악에 거부감 없이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죄를 ‘악행을 거부하지 않은 것’ 하나로 치부하며 스스로를 변호했던 아이히만의 주장과 달리, 그는 자신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저질렀던 짓이 무엇이었는지 몰랐다는’ 말과는 달리 그는 1942년 1월 20일, 독일 영향권 내의 유대인들의 처우를 결정하는 ‘최종 해결책‘에 대해 논의했던 반제 회의 당시
아이히만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측근으로서 분명히 그 자리에 존재하였고, 자신의 결정이 유대인의 절멸을 의미하는 것임을 똑똑히 알고 있었으며
패전 이후에는 아르헨티나로 도주하여 그 곳에서 조차 반유대주의와 나치 부활을 꿈꾸는 신흥 운동조직에 가담하여 남미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에게 나치즘을 전파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자체는 분명히 합리적인 개념이지만 정작 그 의미를 탄생시켰던 아이히만은 ‘평범하지 않았던’ 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