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종군 전까지만해도 분명 복잡한 심경이었겠지 한편으론 이미 군에서 끈떨어진 자신을 군주가 거의 독단적으로 7계급이나 승진시킨일에 대한 감개무량함이 남았을것이고 한편으론 번번히 자신의 충심을 의심하고 지휘권한에 제한을 두거나,도성을 버리고 파천한일,그외 명나라와의 관계설정같은 불만도 당연히 있었을것이고
덧붙이는 이야기인데 지휘권에 간섭을 거의 안 했음. 적극적 지휘권 보장했고 통신 찐빠과 왜측 반간계로 정유재란 발발 직전에 사고가 터짐. 요청 작전을 씹어 그 비난이 이순신 장군님한테 돌아간 거임. 하성군이 발발 직전까지만 해도 우리 이순신 하고 싶은 거 다해 하다가 갑자기 돌변한 거도 그 이유고. 한 번 털어달라는 조정 요청에 대해서 평소처럼 '장수 작전권 보장'으로 가지말아야 하는 상황이었음. 분명 일선 장수 이야기나 들어온 정보 보면 정유재란 발발 전 크게 피해를 입히고 시작 할 기회여서. 하성군이든 조정 신하든 이걸 씹다니 과연 무슨 의도인가 하는 생각들이 다들 들었고 특히 하성군은 의심암귀가 크게 생겨났고 때문에 이루어진 길들이기가 이순신 파직임. 그 파직의 직간접적 여파로 83세 노모가 죽어서 효가 더 우세한 당대 조선인 사고관에서 짜게 식을 일이었던 거고.
일기를 본인만 본다고 하는 건 틀린 게 뭔가 꼬투리 잡히면 당연히 일기도 조사 대상이 될거고
그렇게까지 안되도 본인 죽고 난 뒤 자손들도 보게끔 쓰는 거라서 어지간해선 주군 욕은 안 쓰지.
그리고 왕이 잘못한 점이 있으면 목숨 걸고 간언해서 안 고치면 처벌 당하든 파직 당하든 스스로 물러나든 하는게 맞지 뒤에서 궁시렁 대거나 일기에라도 쓰는 것도 떳떳하지 못한 일로 여겼고.
근데 이순신 장군도 난중일기 적으면서 혹여 자신의 일기가 조선 임금 선조아니더라도 훗날 누군가에 의해 공개될거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연산군 당시 조의제문으로 일어난 무오사화 자기 어머니 폐비윤씨에 대한 사건을 알게 되고 일어난 갑자사화라든가... 훗날 임금을 욕보인 기록이 드러나게 되면...
권율쪽 기록도 원균 개끽끼로 표현되어 있다
저게 사람새낀가? 를 되게 정중하게 표기 ㅋㅋㅋㅋ
원균은 단순히 못싸운거 무능한것만 문제가 아니라 우리 백성 모가지를 베어서 그걸 왜구 수급이라고 조정에 보낼정도로 개-씨-팔 새끼라서 저런 욕을 먹은거다
비판적이면 평범~비범한 사람 비판을 넘어서는 비난이면 원균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7774294 근데 저번에 이순신 관련 베글 보니까 누명쓰고 복귀한 뒤로 망궐례 한번도 안 올린 거 보면 딱히 선조에 대한 충심이 남지 않았던 거 같다던데
자기 자신마저 가차없이 엄격하게 평가하던 사람이니 정확도 쩔어줌
'오늘부터 원균을 원흉이라 부르겠다!' 어디감
저게 사람새낀가? 를 되게 정중하게 표기 ㅋㅋㅋㅋ
자기 자신마저 가차없이 엄격하게 평가하던 사람이니 정확도 쩔어줌
권율쪽 기록도 원균 개끽끼로 표현되어 있다
칠천량 해전 직전에 직접 매질까지 한 이유
비판적이면 평범~비범한 사람 비판을 넘어서는 비난이면 원균
'오늘부터 원균을 원흉이라 부르겠다!' 어디감
근데 진짜 이순신이 선조를 신랄하게 깠으면 원균보다 더 살벌하게 깠을 것 같긴 해
난중일기에서 그게 적혀 있었으면 지금처럼 천하의 충신으로는 못 남았을거임
성악설의 모범을 보여주신 유교머신 정인군자 여해 영감님에겐 힘든 일이시지…
선조가 그래도 신의 한수는 이순신 파격등용인데.. 살살 돌려 깠을듯 ㅋㅋㅋ
울 조상님은 무슨 평가 받았을지 궁금하네.. 끝까지 같이 하신걸로 아는데..
그 균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7774294 근데 저번에 이순신 관련 베글 보니까 누명쓰고 복귀한 뒤로 망궐례 한번도 안 올린 거 보면 딱히 선조에 대한 충심이 남지 않았던 거 같다던데
ㅇㅇ 인간적으론 실망감과 원망이 있었을 것이란 추측 그 이후부터는 문자 그대로 나라와 민초를 위해 스스로를 불살랐다는 느낌
나라에 대한 충심은 몰라도, 혈안이 되어서 갖다버리려고 했던 선조 개인에 대한 존경과 충성심은 작살나고도 남았을거 같긴해...
선조한테 오만정 다 떨어진건 맞을듯 그렇다고 반역을 하자니 고통받는 백성들이 눈에 밟히고 내면의 유교드래곤이 용납하지 않았을거고
아 이거 그 고기 티배깅 개찌라시 글이구나
백의종군 전까지만해도 분명 복잡한 심경이었겠지 한편으론 이미 군에서 끈떨어진 자신을 군주가 거의 독단적으로 7계급이나 승진시킨일에 대한 감개무량함이 남았을것이고 한편으론 번번히 자신의 충심을 의심하고 지휘권한에 제한을 두거나,도성을 버리고 파천한일,그외 명나라와의 관계설정같은 불만도 당연히 있었을것이고
덧붙이는 이야기인데 지휘권에 간섭을 거의 안 했음. 적극적 지휘권 보장했고 통신 찐빠과 왜측 반간계로 정유재란 발발 직전에 사고가 터짐. 요청 작전을 씹어 그 비난이 이순신 장군님한테 돌아간 거임. 하성군이 발발 직전까지만 해도 우리 이순신 하고 싶은 거 다해 하다가 갑자기 돌변한 거도 그 이유고. 한 번 털어달라는 조정 요청에 대해서 평소처럼 '장수 작전권 보장'으로 가지말아야 하는 상황이었음. 분명 일선 장수 이야기나 들어온 정보 보면 정유재란 발발 전 크게 피해를 입히고 시작 할 기회여서. 하성군이든 조정 신하든 이걸 씹다니 과연 무슨 의도인가 하는 생각들이 다들 들었고 특히 하성군은 의심암귀가 크게 생겨났고 때문에 이루어진 길들이기가 이순신 파직임. 그 파직의 직간접적 여파로 83세 노모가 죽어서 효가 더 우세한 당대 조선인 사고관에서 짜게 식을 일이었던 거고.
원균은 단순히 못싸운거 무능한것만 문제가 아니라 우리 백성 모가지를 베어서 그걸 왜구 수급이라고 조정에 보낼정도로 개-씨-팔 새끼라서 저런 욕을 먹은거다
정확히는 백의종군 한뒤론 선조에 대한 긍정적인 코멘트가 아에 사라짐 약간 이혼한 부부처럼
그리고 현재. 어떤 미치광이들이 '이순신 장군을 도운' 원균동상을 세우는데..!
멀쩡히 전공 세운 조상은 내다 버리고 원균 빤다는 후손들?
이순신 장군같이 그릇이 큰 사람이었으면 선조에 대해서도 '나도 이렇게나 힘든데 대왕께서는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되실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것 같긴 함. 근데 원균 너는 아니야.
이몽학의 난만 없었어도 선조가 조금은 심신의 여유를 가질수 있었을려나
아님 임진왜란보다 훨씬이전 정여립의 난 처리때의 태도를 봐도 선조는 총명하기는 하나 의심암귀와 왕권강화에 병적으로 매달리는 사람이었고 이몽학의 난이 아니었어도 그이전부터 의병과 각 군지휘관들을 주시하며 건덕지 찾았을사람이야
그 또한 맞는 말 같고만
처음에는 난중일기에서 원균을 그래도 살벌하게 까는 듯한 글을 쓰지 않다가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위가 높아지는걸 보면 얼마나 참으셨는지 알수 있지.
그래서 사라진 을미일기 원본이 발견되면 거기에 원균 욕이 얼마나 가득가득 적어져 있을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대목임
한산 영화에서도 전략 논의할 때 '그럼 경상 우수군(원균)이 먼저 들이치는건 어떻소이까?' 하고 이순신 장군님이 그러던데 그거 생각나네 그 때 그 장면 장군님이 하다하다 열 받아서 일부러 돌려깐건가 싶던데 ㅋㅋㅋㅋ
암만 일기라지만 거기에 왕 욕 적어놨다가 다른 사람이 발견하면 바로 역적행인데 그럴 깜냥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거기다가 장수인데 어느날 전투에서 전사하기라도하면 유품 수습하다가 어쩌려고
일기를 본인만 본다고 하는 건 틀린 게 뭔가 꼬투리 잡히면 당연히 일기도 조사 대상이 될거고 그렇게까지 안되도 본인 죽고 난 뒤 자손들도 보게끔 쓰는 거라서 어지간해선 주군 욕은 안 쓰지. 그리고 왕이 잘못한 점이 있으면 목숨 걸고 간언해서 안 고치면 처벌 당하든 파직 당하든 스스로 물러나든 하는게 맞지 뒤에서 궁시렁 대거나 일기에라도 쓰는 것도 떳떳하지 못한 일로 여겼고.
근데 이순신 장군도 난중일기 적으면서 혹여 자신의 일기가 조선 임금 선조아니더라도 훗날 누군가에 의해 공개될거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연산군 당시 조의제문으로 일어난 무오사화 자기 어머니 폐비윤씨에 대한 사건을 알게 되고 일어난 갑자사화라든가... 훗날 임금을 욕보인 기록이 드러나게 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