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신성로마제국은 친황제파와 반황제파로 나뉘어 있었고 그레고리우스7세(법모름, 선대 교황의 말 무시)는 개혁에 앞서, 본보기가 필요한 탓에 자신과 성직매매로 마찰이 있던 하인리히 4세를 파문을 시켜버렸고, 한창 반황제파랑 다투던 하인리히 4세는 "보편성은 교회에 있는데, 너 말 안 들어주니깐 파문." 이라는 얼척없는 사건 때문에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까봐 도게자를 박았다. 결과적으로 정권을 잡은 하인리히 4세가 교황청을 침공하게 됐지.
처음에는 하인리히 4세의 패배처럼 보였지만 이후 힘을 길러 막강한 황제권을 가진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오 11세를 역으로 파문하고 클레멘스 3세를 다음 교황으로 옹립함. 그런데 후에 하인리히 4세의 아들 하인리히 5세가 교황청과 화해함.
???:여기서 룩을 내줘야 몇수뒤에 체크메이트를 외칠수 있다니까?
하지만 타임라인을 늘려서 거시적인 시각을 만들면 또 해석이 바뀌죠. 역사 서술 읽다보면 주장이 다 각각 다 다름.
하인리히 법칙이 생각나는 이름이네
처음에는 하인리히 4세의 패배처럼 보였지만 이후 힘을 길러 막강한 황제권을 가진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오 11세를 역으로 파문하고 클레멘스 3세를 다음 교황으로 옹립함. 그런데 후에 하인리히 4세의 아들 하인리히 5세가 교황청과 화해함.
티렉스9
하지만 타임라인을 늘려서 거시적인 시각을 만들면 또 해석이 바뀌죠. 역사 서술 읽다보면 주장이 다 각각 다 다름.
???:여기서 룩을 내줘야 몇수뒤에 체크메이트를 외칠수 있다니까?
하인리히 법칙이 생각나는 이름이네
하인리히 힘러가 아니라서 다행 ㅋㅋㅋㅋㅋ
유럽사를 잘 몰라서 억측일지 모르겟는데 카노사 굴욕은 신성로마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는 사건인데도 중세 유럽의 보편적인 사례로 인식되버린거 같음
선제후들의 투표로 황제를 뽑는 신성로마제국의 특수성. 그 선제후들 속에는 쾰른 대주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