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주가 그를 만나기를 청했으나 거절당하자 곧바로 들어가 독우를 묶고 장(杖) 2백 대를 때렸다. 그리고 인끈을 풀어 그의 목에 걸고는 그를 말뚝(馬枊)에 묶어두고 관직을 버린 채 달아났다.
얼마 후 대장군 하진(何進)이 도위(都尉) 관구의(毌丘毅)를 보내 단양(丹楊)으로 가서 모병하게 했다. 선주가 그와 함께 행동하다가 하비(下邳)에 이르러 적(賊)을 만났는데, 힘써 싸워 공을 세우고 하밀승(下密丞-청주 북해국 하밀현의 현승)에 제수되었다. 다시 관직을 버렸다.
(중략)
-선주전
영릉선현전(零陵先賢傳)에 이르길: 이 당시 중국 사람들의 감정은 일관되지 못했다. 유비가 촉군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방에서는 목을 길게 빼고 그의 내방을 기대했다. 유비는 제위에 오르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파는 그같은 일은 천하에 대해 기량이 좁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느긋하게 하기를 원했다. 주부 옹무(雍茂)가 유비에게 간언했는데, 유비는 다른 일을 빌려 옹무를 살해했다. 이 때문에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시는 오지 않았다.
유비에게는 수염이 없었기 때문에 장유는 이런 방법으로 그를 개우친 것이다. 유비는 항상 장유의 불손함을 미워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실언을 한 것에 분노하였다. 그래서 장유의 한중 쟁탈에 관한 직언이 효험이 없었음을 문제 삼아 하옥 시키고 사형에 처하려고 했다.
제갈양이 표를 올려 그의 죄를 용서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주군전
유비 정도면 하고 싶은 거 그때그때 다 해보긴 했음
독우건만 봐도 브레이크 없는 사람인데
유종 전까지 1짱 못먹어서 그런말 나온듯
독우건만 봐도 브레이크 없는 사람인데
조조 밑에서 수구리고 있던게 인상 깊긴 하지
[주 : 『한진춘추(漢晉春秋)』에 이르길 「태조가 처음 유성(柳城)을 정벌할 때, 유비는 유표에게 허도를 습격하라고 설득했지만, 유표는 이 말을 따르지 않았다. 태조가 귀환하게 되자, (유표가) 유비에게 말하길 “그대의 말을 쓰지 않았다가, 이 큰 기회을 그르쳤구려.”라 했다. 유비가 말하길 “지금 천하는 분열되어 날마다 전쟁이 일어나니, 기회가 오는 것에,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만약 이후에라도 그런 기회에 호응할 수 있다면, 이번 일은 후회하기에 족하지 않습니다.” 라 했다.」고 한다.] 객장이면 상대방 기분 잘 맞춰주기는 하는게 그것도 안되는 애들보다 낫긴함
대충 자기가 뻗댈수 있을땐 뻗대는 사람 아마 라이벌이 그럴 판도 아닌데 초반에 감정적으로 굴다 ㅈ될뻔한 조조라 부각되는 게 있는 듯 싶음
유비 정도면 하고 싶은 거 그때그때 다 해보긴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