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향토색을 화두로 하여 조선영화의 예술적 지향과 싱업적 판로의 개척
2: 극영화와 기록영화 사이에서 사실주의적인 양식 “반실사작품“
3: 조선영화의 '리리시즘 (lyricism)'의 재론
-"영화를 하나의 예술적 대상으로 자각하는", 즉 감정과 대상을 예술적으로
승화하는 과정으로 해석하는 시각을 제시했어
2세대 조선영화인으로의 세대교체
<1세대>:윤백남, 이경손, 나운규
일본 영화촬영소 유학파
<2세대>:이규환, 방한준, 박기채, 윤봉춘등
발성영화로의 스타일 변화
당대 최고의 영화감독은 바로 이규환
리얼리즘 영화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상술한 1932<임자 없는 나룻배>의 감독이면서
또한 상술한 반도영화 <나그네>의 감독
(조선 최고 토키영화이면서 일본에서 흥행에 성공)
1938 <군용열차> 기획, 원작, 각색을 맡았고
1974년까지 총 23편의 영화를 제작
전시체제의 조선영화
- 1940년대~해방전까지
1920〜30년대 영화통제정책과 관람환경은 다음과 같다.
1) 영화의 도입과 상영장의 통제
-1:1917 조선총독부 도서과에서 활동사진 흥행물 단속: 조선인 집단행동차단
2) 1920년대 검열체계의 도입과 대중적 영향력 확대
-성격-
식민 통치에 방해가 되는 영화 제작과 상영 통제
식민 통치를 위한 선전영화
-1: 1920 조선총독부 활동사진반 설치
-2: 1922년 이후 흥행장 및 흥행 취체규칙의 시행
-3: 1926 활동사진필름검열규칙의 시행: 대본과 필름 검열
3) 1930년대 영화배급 통제와 관람환경 변화
-1: 1934 활동영화취체규칙시행: 검열이후 상황과 흥행장 통제
전시체제 전환과 조선영화령 시행
1) 전제체제 전환과 언론통제
-1: ‘총동원 체제’는 전쟁 수행을 궁극적 목표: 모든 분야 유기적 통합과 조정
-2: 내선일체에 입각한 조선 언론 기관 종합적 통제
2) 1940 조선영화령 시행과 신체제
-1: 영화 법적제도, 인적조직, 제작-배급-상영 체계에 통제 강화
-2: 영화를 계몽과 선전에 유익한 도구로 활용- 국책영화 제작
-3: 조선영화인 협회’(1939) 발족
-4: 영화신체제
-’조선영화주식회사’(1942) 발족: 민간 주도 영화사 병합 및 폐쇄(내가 말한 부관참시가 바로 이거야!)
- 민간 주도 영화사 병합 및 폐쇄
- ‘문화영화’제작
친일/국책영화개념의 등장
1) 친일 영화
-1: 내용: 대동아공영권의 전쟁동원과 내선일체의 황국신민화를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영화
-2: 시기: 중일전쟁 발발 이후인 1937년 이후로 제한
-3: 제작 문제: 중국 흔들림으로 대동아 공영권을 대안으로 , 내선일체를 통한 황국신민화기도
-4: 친일과 국책 구분 : 친일영화는 대동아 공영권의 전쟁동원과 내선일체의 황국식민화를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영화로서,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에 만들어진 영화들
2) 확장과 혼용된 용어
-1: 군국주의 어용영화 : 군국주의 영화란 한마디로 군사력에 의하여 국위를 나타내는 정부정책에
동조하고 이를 위해 계몽 설파하는 목적영화
-2: 국책영화 : 일본정부와 조선총독부의 전시 동원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 시책의 영화 지칭
역사적 가치판단 배제
-3: 어용영화 : 영화예술의 독자성과 순수성을 져버리고 그 시대의 권력가나 기관에 아부하여 그의
정책에 공명하는 영화.
‘친일영화’는 스스로 일제 정책에 순응하여 협조하는 영화, ‘국책영화’는 권력기관이
추구하는 정책을 계몽하기 위해 기관이 직접 제작한 영화
-4: 합작 선전영화 : 일제의 정책선전을 식민지 주민에게 주입하기 위해 합작 형태로 식민지의 인력과
자본을 동원하여 제작된 영화
확장된 용어는 다음과 같다.
친일영화:
1937년 중일 전쟁 이후 대동아 공영권의전쟁동원과 내선일체의
황국식민화의 이데올로기를 담아낸 영화
국책영화:
1: 식민지 치하와 유신체제기를 포함한 강압적 독재권력의 통치기에 국가정책과 정권의 홍보 목적으로 국가
기관의 지원에 의해 직접 제작되었거나 간접적인 지원을받고 유통된 영화
2: 한국영화사에서 문화영화와 국가 직접 제작 영화이거나 국영화된 회사에서 제작한 영화
국책영화의 기원으로서 문화영화
1) 문화영화 : 쿨투르필름(Kulturfilm)
1930년대 일본에서 도입, 우파 영화, 교육, 계몽 영화, 전쟁 기록영화, 과학 영화, 민족 영화등
기록영화를 통칭, 이데올로기 전파와 국민 통합 목적
2) 위생영화 :
독일의 공중 위생 정책의 핵심인 건강관리와 위생을 합하여 위생으로 번역. 국가가 일반 국민 건강과
위생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
- <월하의 맹서>는 체신국에서 우편 저금 장려용 영화(1923)
3) 뉴스 영화:
1937년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전시 상황에 돌입한 뒤 영화의 선전-계몽 역할이 더
욱 강화됨에 따라 정책, 산업 양면에서 뉴스영화의 비중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친일 국책영화의 이데올로기: 전체주의 천황제 파시즘
-1: 천황제 가족주의와 대동아 공영권
천황에 대한 충성/황국 전사의 우상화/일선동조론, 일본어 사용
-2: 지원병 제도와 징병제 홍보
조선인 지원병 촉구/강제 징용 수용
-3: 내선 결혼 장려와 총후 부인 이미지
총후부인이란 '남자들을 전쟁터에 보내고 난 뒤 후방의 일을 내조로써 책임지는 부인'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