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그 술집을 찾은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애초에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그였지만
그날 밤만은 최근 들어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잊은채 취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하지만 고성과 노래소리로 정신없는 그곳 분위기는 남자에게 불편함만을 주었다.
그랬기에 구석자리에 혼자 앉아 심각한 얼굴로 술을 마시는 청년의 곁에 앉은 것이다.
적어도 생면부지인 사람과 어깨동무를 한 채 노래를 불러대는 것보다는 나아보였다.
“자네, 저런 분위기는 싫어하나봐?
혼자 이렇게 떨어져 있는걸보니.
사실 나도 그래.
맘 같아서는 왕창 취해서 다 잊어버리고 싶었는데 말이야.“
청년은 남자에게 잔을 권하며 대답했다.
“네. 저도 조용히 마시는걸 좋아해요.
그래도 이런 곳에선 아무리 취해도 다들 전혀 신경 안쓰거든요,
아저씨도 취하고 싶으시면 실컷 취하셔도 되요.“
남자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잔을 단숨에 비우고는 말했다.
“그럼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네.
오늘은 제대로 마셔야지 도저히 안되겠거든.
자네도 그런 것 같으니 괜찮으면 내 술 상대좀 해줘.“
그렇게 둘은 취기가 오를때까지 별다른 말없이 잔을 주고받았다.
“아직 젊어 보이는데 힘든일이 많나 보구만.
고민거리가 있으면 한번 얘기해 보는게 어때?
오히려 이렇게 전혀 모르는 사람이 더 속내를 털어놓기 좋은 법이거든?“
남자의 말에 청년은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저씨. 아저씨는 나쁜 놈들을 보면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뭐 뉴스라든가 이런데 보면 진짜 인간 같지도 않은 쓰레기 놈들 많잖아요?
도둑놈부터 시작해서 사기꾼이며 살인자며 그런 놈들이요.“
갑작스레 꺼낸 질문에 남자는 당황하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글쎄? 뭐 말할 것도 없이 화가 나지.
요새야 뭐 정신 나간 놈들이 한둘이야?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전부 잡아다가 어디 구덩이에라도 던져버리고 싶지.“
“그렇죠? 아저씨도 그렇게 생각하죠?
저도 그래요. 그런 놈들은 법이니 교도소니 이런거 없이 다 죽여 버려야 되요!“
흥분한 듯 잔을 비운 청년은 이어서 이야기 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어요.”
남자는 손을 멈추고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잊을만하면 한번씩 뉴스에서 나오던 연쇄살인 사건에 대해 떠올렸다.
청년은 확신에 찬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세상엔 죽어 마땅한 놈이 많은데, 정작 제대로 된 벌을 받는 놈들은 손에 꼽아요.
그게 정말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나서기로 했죠.
처음엔 조금 힘들었지만 조금씩 요령도 생기고 확신도 생겼어요.
피해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엄청 좋기도 했구요.
그런데... 나쁜놈이라도 사람 죽이는게 생각보다 그리 마음편한 일은 아니었어요.
눈만 감으면 내가 죽인 놈들의 마지막 눈빛이 떠올라요.
순 사이코패스에 죽어 마땅한 놈들 뿐이 었는데 기분이 정말 이상해요.
가끔은 이게 잘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내가 맞는 거라고, 이게 옳은 일이라고 다짐해도 맘이 편해지지 않아요.
결국 이렇게 술이라도 취하지 않으면 잠도 제대로 못자게 되어버렸어요.“
남자가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청년이 다시 이야기 했다.
“위로라든가 걱정이라든가 그런걸 바라고 한 얘기가 아니에요.
그렇다고 살인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싶지도 않구요.
전 그냥 제가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할 뿐이에요.
그게 생각보다 힘들지만 결국 제가 짊어져야할 짐이죠.
아저씨한테 말을 꺼낸건 그래도 누군가는 들어줬으면 싶어서 그런거구요.“
말을 마친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들어가 봐야 겠어요. 이런 소릴 하는걸보니 취했나봐요.
제가 한 얘기는 다 잊어 버리세요.
그냥 술취한 놈이 한 헛소리니까요.
남자는 비틀거리며 나가려는 청년을 붙잡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아저씨. 혹시라도 뭔가.....”
“아니 아니, 난 다른얘기를 하려는게 아니야.
나도 자네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자네가 힘들어 하면서도 신념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니 응원을 하고 싶구만.
그거보다 이번엔 내 얘기를 들려줄 차례다 싶어서 말이지.
나도 고민이 있거든?“
청년은 미심적어 하면서도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난 말이야. 이래 뵈도 제법 큰 사업을 하고있어.
뭐 나혼자는 아니고 친구놈이랑 동업을 하고 있지.
그 친구놈이랑은 어릴 때부터 같이 지내서 서로 막연한 사이야.
그래서 같이 일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뭐 실제로 둘이서 시작한 구멍가게가 지금은 규모도 커지고 돈벌이도 제법 되지.
그런데 말이야.
최근에 그 친구의 비밀 하나를 알게 됐어.
그녀석이 어디선가 나쁜 녀석들을 사귀었는지 노름판을 운영하는 것 같더라고.
사업으로 비자금을 만들어서 몰래 판을 벌이는 모양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데려다가 도박 시켜 돈 잃게 하고,
몰래 약타서 약쟁이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하고 있어.
모르긴 해도 장기매매나 인신매매까지 손대고 있을지 몰라.
우리 사업이 힘들때마다 그녀석이 어디선가 돈을 융통해 오곤 했는데
아무래도 그 돈도 그리 깨끗한건 아니었던 것 같아.
난 우선 그 녀석을 설득해 보려고 했지만 녀석은 눈도 깜짝 안했어.
우리 사업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다 자기 덕분이라면서 말이야.
경찰에 알려볼까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그녀석이 여기저기에 이미 손을 잘 써놓아서 금세 풀려나고 말겠지.
무엇보다 이제 슬슬 내 목숨이 위험해 지고있어.
그 녀석에겐 이제 내가 걸림돌일 테니까.
그 녀석은 이제 내가 알던 친구가 아니야.“
청년은 진중한 얼굴로 이야기를 들고 있었다.
“그저 죽어 마땅한 범죄자 녀석일 뿐이지.“
남자는 조용히 덧붙이며 무언가를 청년에게 내밀었다.
얼굴 사진이 나온 명함이었다.
아무래도 남자가 말한 그 친구의 명함인 것 같았다.
청년은 가만히 명함을 받아 챙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가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들은 건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이었다.
뉴스에서는 또다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며 시끄러웠다.
남자는 지금 자신의 기분이 기쁜지 슬픈지 알 수 없었다.
“일 처리 한번 빠르구만. 그 덕에 30년지기 친구를 잃었어.
멍청한놈. 그냥 모른척 했으면 그렇게는 안죽었을텐데.
하여간 융통성도 없이 착해빠져서는....“
남자는 당장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소리를 지르던 친구의 모습을 떠올렸다.
의외에 곳에서 이용해먹을 만한 녀석을 만나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청년을 만났던 그 술집을 찾아 갔지만 청년을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뭐, 또 어딘가에서 술이나 처마시고 있겠지.
정신나간 살인마 새끼...“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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