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회사 업무 과다와 스트레스 압박으로 뇌출혈로 쓰러져 힘들어하며 고민 글 올렸던 사람입니다.
그 당시 제 글 읽어 주시고 써주신 댓글들. 힘들고 눈물 날 때마다 읽으며 재활에 힘 썼었는데.. 벌써 일 년하고, 더 지났네요.
댓글 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글 올리고 얼마 뒤. 대구 재활 병원에서 열심히 재활 하던 중.
다시 이상이 와. 급하게 서울 큰 병원에서 다시 치료와 많은 검사하며 힘들어 했었고. 1시간 이상 잠을 못 자서 괴로워 했던 것이.
뇌에 수면을 돕는 부분의 손상이 원인이었더군요. 병실 천장 보며 울며 빌고 했었는데. 원인을 알고 나니, 조금씩 상황을 인정해가며
배웠던 재활 운동들 복습하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수면, 감각, 운동 신경들이 조금씩 다쳐서 여러 증상의 아픔과 불편함이 함께 하였습니다.
재활 시작할 때. 죽으려면 걸을 수 있어야 한다. 생각으로 병원 복도를 휠 체어 타고 복도를 돌며 힘 썼던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조금씩 힘이 돌아 오는 것이 느껴짐에 눈물 흘리며 병원 복도 안전 바를 붙잡고, 기대 걸으며 조금씩 단계가 올려가며 운동하였습니다.
당연했던 걸음을 하기 위해 운동해하니 괴롭지만 참고 해야했습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낙상 하면 안된다고 말리고 했었지만,
간호사실 떨어진 곳에서 계속 걷고 연습하였습니다. 당연했고 건강했으며. 불편을 몰랐던 신체가 이젠 당연하지 않아지니.
우울증과 열등감. 건강한 사람들이 부럽고 현재의 제 모습에 힘들었습니다.
어르신 환우님들 사이에 저는 더 비참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르신 환우님들 마저도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분들의 건강했던 젊음. 그리고 가정 꾸리며 열심히 해온 시간들. 30대 후반. 미혼이며 장남인 저로서는
'다시 어린 아기가 되었다. 생각하며 마음 급히 생각 하지 마라'는 이야기는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간병 옆에 붙어 챙기는 동생에게 미안하고, 코로나로 인해 함께 병원에 갖혀있는 동생을 집으로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보내던 중 마비 증상이 더 커지고, 불편함이 늘어나 mri 찰영을 하였는데, 영상의학과 선생님이 유심히 지켜보시더니 저에게
'젊은데 촬영 결과가 이상하다' 하였습니다. 간병하는 동생에게 이야기 하였더니. 선생님을 찾아 면담을 하고 오더니. 급히 서울 탑3 병원들을
하루 동안 돌며 다녀와선 서울로 병원 생활이 시작됩니다.
다음 날 불안한 걸음 걸이로 동생과 함께 KTX타고, 서울로 올라와, 힘겹게 걸으려 억지 부리며 지하철 타고. 지하철 안.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며, 병원 두 곳의 인지도 있는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받고 입원을 결정합니다. 가족력도 없고 증상이 커져 감에. 저의 발병의
쓰러진 원인을 알아야 했습니다. 커진 증상의 치료와 검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3주간 치료와 여러 검사를 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알게 된 것은.
뇌출혈 발병 후 폐부종으로 중환자실에서 힘들어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안구 쪽 손상도 컸고. 다른 몇 곳도 발병 후에 손상 되었습니다.
다행히 유전적인 원인은 없었고. 원인불명의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로 결론 지어졌습니다.
1년 가까이 꼰대 무식 갑 질의 대표 년 놈들과 일하면서.. 생각해보니. 화를 잘 안내는 편이었던 성격인데 발병 전 싸우며. 흥분한 일이 많았었고.
평일 17시간씩 근무하고. 주말에 일하거나 잠만 자며 생활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해는 없고 딴소리만 연발하는 2~3시간의 회의에 공황장애도 몇번 오고
했던 일을 생각하면, 정상 혈압이었던 저에게 병이 오겠구나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당시 산재 신청하고 몇 일 뒤 친한 직원들 연락이. 근로 공단에서 산재 관련 메일이 회사에 왔었는데
회사에 관련된 모든 게 이상 없음. 정상 근무 했음으로 도배해서 제출 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화가 났고, 미칠 것 같았지만 뇌졸중 회복 극성기 시기를
더 놓치면 안될거 같아. 회복 후 퇴원하고 준비해야할 것 같아 산재는 미뤘습니다.
그 후 서울 쪽 재활 병원 큰 곳들 입원과 전원 하며 좋은 의사, 치료사 선생님들 만나가며 손 재활과 편마비 재활에 집중하며 노력하였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잠과 식사 시간 외에는 운동과 매일 만오천보에서 이만보 씩 걸으며 운동하며 작년보다는 좋게 회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신과 치료를 함께 받으며 노력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아직 정신적으로는 많이 불안하긴 합니다..
아프고 나서 안 사실인데.. 뇌는 다른 장기와는 다르게 회복이 안되는 부위입니다. 총몽이나 뇌 관련 초능력 만화들을 좋아했었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군요..
회복이 아닌 다쳐서 죽은 뇌세포나 신경은 주변 뇌세포가 그 역활을 연결하고 대신 해주는 뇌가소성이 있다하지만 극성기 이후 점점 점점 약해져갑니다.
노력으로 환자들 중에서 많이 좋아졌다 생각하지만 마취가 덜 깬듯하며 굳고 저린 느낌의 이상 감각은 우측 몸통과 어깨 팔 그리고 다리 부분 등은 계속
저의 처지를 알려주듯이 불편함으로 괴롭힙니다. 가장 힘든 것은 손입니다.
재활로 기능과 부분은 좋아졌지만 이상 감각으로 촉감은 불쾌한 느낌으로 바뀌어 괴롭습니다.
처음 손 작업치료하며 연필 잡고 동그라미 그렸을 때. 나이 먹고 사람들 있는데도 눈물 흘리며 울어습니다. 그림 그리느게 제일 가장 오래된 취미이고,
이걸로 일 했었는데.. 불편한 감촉과 뻗뻗하고 굳은 손은 절망을 주었었습니다. 아직도 적응이 안되는 감각과 느낌 입니다. 지금 어느 정도 펜을 잡고 쓰고
그리기가 조금 될 정도로 회복하였지만 아직도 그림 그리는 연습하다가 눈물 흘립니다.
저보다 더 아픈 환자들은 배부른 소리라 하겠지만 하루 아침에 갑자기 생긴 장애는 크고 작든 힘이 드네요.
아직도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안 좋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프고 변한 지금 환경이.. 전에 좋아했던 것들이 의미 없게 느껴지고 흥미가 없어졌습니다.
작년에 목표가 있었었습니다. 더 크고 좋은 전세로 이사 가거나 못 가면, 첫차 이제 그만 보내주고 새차 사자 바꾸자. 그리고 올해는 장가 갈수있게
노력하자 였는데 그때 있던 여유자금은 병원비로 다 썼고.. 작년 겨울 잠시 퇴원했을 때 좋아하던 자전거는 다 팔아버렸고..
좋아하던 친구는 작년 휠 체어에 실려 걷지도 못했던 제 현실에 괴로워하며 이별하였습니다.
보험료 나온 건 1년을 걱정하며 간병해준 동생 다 주었고 병원비의 실비도 동생한테 가게 바꾸었습니다. 그나마 조금 있던 돈도
전 회사 친했던 직원이 급여 밀리면서 힘들어하기에 급한 불부터 끄라고 빌려주었네요.
안 좋은 생각 들면 가족 생각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1년 간 병원 함께하며 챙겨준 동생. 아직도 구급차 소리에 불안해 합니다.
대화 하면 기 승 전 결혼 이셨던 어머니는 10년만 더 일하고 싶다 하십니다. 무뚝뚝하신 아버지 매일 108배 하시며 자주 말 거십니다.
사실 고민상담 게시판 글도 안좋은 생각 떨치려 병원에서 열심히 했잖아 다시 생각하자 하며 기록하려 남깁니다.
현재 퇴원 한지 3달 정도 되었습니다. 한달 정도 우울증에 집과 금호강 만 걸었습니다.
두달째에 서울까지 병문안 와준 친구들 만나고 사람들 조금씩 만나고 했습니다.그리고 초등학교 이후 간 적 없었던 가족여행으로 바다 보고 왔습니다.
현재는 산재 준비와 전 회사와의 임금체불 건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회사와는 여전히 답답합니다. 퇴원해서 임금체불 신고하니.
중환자실에서 발병 후 폐부종으로 의식 유지가 힘들 때. 동생에게 전화하여 '오빠한테 사직서 써서 보내거나 대체인력 구해달라고 전하세요' 했던 여자대표는
당연히 권고사직 시켰는줄 알았는데, 저는 회사에 휴직 상태였었고.. 그러고 몇일 뒤 회사 직원들 경영악화로 권고사직 시키면서 저도 권고사직 처리되었다고
임금체불 건 담당관님 연락으로 권고사직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표의 사직서 전화는 제가 받았다면 조금은 덜 분 할거 같은데 전화를 동생에게 하여 동생이 받았고. 동생 옆에 어머니께서도 그 상황을 다 보게되셔 부끄럽고
죄송스러웠습니다. 임금체불 건은 작년 쓰러진 날까지 근무한 급여. 3번을 나눠 주겠다 약속해놓고는 1번 주고 주지않은 상여금등을 1년이 지나도 주지 않았고.
노동청에서 체불금액 책정하는데 지원사업 때문에 권고사직 처리안한건지, 까먹고 안한건지 덕분에 퇴직금까지 책정되었더군요.
(1년 채우고 하던작업 어느정도 마무리 후 퇴사하려했는데 1년을, 보름 못 채우고 쓰러졌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던 그래픽 작업은 경력 급여 적고 자신들 말 잘 들을 수 있는 사람들 몇 번 뽑았는데 다행으로 다 탈출하였고. 어린이 대상인 앱 개발인데 성인오락실
그래픽 리소스작업하는하는 사람을 뽑아서 혐짤 만 채우다가 프로젝트 엎어졌더군요.. 사업계획서만 있고 방향성도 없는 걸 열심히 만들어 놓았는데 씁쓸하더군요.
6억을 투자했다 회의 때마다 소리를 쳤는데 직원들 급여 고만 고만한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수가 없는 결과물이 되었습니다. 상여금 문제는 고생하는 거 인정하고
지원사업에서 보여줄 일정부분 리소스 작업 마무리하면 주기로 약속했어놓고.. 전체 프로젝트가 끝나면 주기로 했다로 태세전환해서 줄수 없다로 우기고 있습니다.
급여 부분은 쓰러진 날 출근하여 작업한 리소스와 업무보고서도 있는데 전날 쓰러져서 출근 안했다로 우기며 모든 부분을 부인하며 시간 끌기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5개월 전 민원이 진전이 없네요..
재활을 1년 넘게 하며, 병원생활 할 때는 병원 밖 나가면 하나 씩 문제들 해결하겠지 했는데.. 아무런 진전이 없네요. 병원 밖은 무섭군요.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걱정입니다. 발병 후. 첫 겨울 너무 힘들어서 병원으로 재 입원 했었는데 올해 겨울도 걱정되네요.
저의 기록 겸. 예전 저의 고민상담 글 읽어주신 분들께 살아 있다고 소식 전할 겸 남김니다.
저번 글 보다 길어졌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나치시다가 글 읽게 되어 아픈 동생이나 친구라 생각 드시면 조언이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무슨 말씀을 드리면 좋을까요? 희망적인 말, 꿈 같은 내용들, 여러가지 늘어놓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보니. 말문이 막히는 게 어쩔 수가 없네요. 뭔가, 도울 방법이 없을까 싶어도. 고통을 느낄만해서 고통스러운 마당에 불안을 느낄만해서 불안해지는 상황에 저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단지, 뇌수막염, 장염, 대장염 겹쳐서 대한민국 내놓으라 하는 병원들이 살릴 수 없다고 말했음에도. 죽지 않고 살아났던 저에 대해서 말하면 좋을까요? 아니면, 신경이 죽어서 발가락이 고장나서 생활에 방해가 되어서 잘라내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게 없다고 했을 때. 그런 아버지의 발가락에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지켜보자고 했던 의사 선생님과 실제로 기적이 일어나서 움직일 수 있게 된 발가락에대해 말하면 좋을까요? 기적을 말하기엔, 저도 기적을 믿는 편은 아닙니다. 기적 같은 얘기는 님께서도 많이 찾아보셨겠지요. 그리고 아직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은 기적에 대해서도 고민하실 수 있겠지요. 무엇을 말하면 좋을까요? 어떤 앞날이 펼쳐진다고 하더라도, 후회는 남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서, 언젠가 님을 몰아넣은 모든 부조리들의 면전에서 크게 웃어줄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그저, 내가 잘못된 노력을 따라가다 실수하는 일도 있고, 포기할 때도 있을 뿐. 자신감의 근원은 축적된 노력과 경험, 이해라고 했지요. 지금까지 해오신 과정이 있을 겁니다. 견뎌오신 시간이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나중도 다 견디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디, 후회는 남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의지를 잃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가지 않으면 닿을 수 없다는 걸, 님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후회는 남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전 오른쪽 온도 감각이 죽었는데 몇년 지나니 0% 에서 10% 정도 돌아오더군요. 저리거나 마비된 감각은 거의 없어졌고요. 손으로 하는 미세한 일... 셔츠의 손목 단추 채우는 일 같은 것도 여러번 해야 하는데... 사지 마비 없이 걸어다닐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저 있던 병실에서 자기발로 걸어서 퇴원한 사람은 저 밖에 없었고요. 쓰러지고 난 뒤의 삶은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제가 매우 운 좋았다고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재활 열심히 하시고 희망 잃지 마세요. 저희 어머니도 편마비로 손이 불편하시고, 엄지 손가락이 세워지지 않아서 병원에서도 여기까지인것 같다고 했는데 2년 지난 지금 엄지 손가락이 조금씩 세워진다고 병원에서도 다시 작업치료 추천했거든요. 6개월안에 재활하는게 제일 좋다고 하지만 꾸준히 조금씩 좋아지는게 느껴지더라고요. 힘내시고 항상 화이팅하시길 바랍니다!
뭔말하는지는 알겠는데 이러지맙시다 인간이기에, 인간이라면 감정을 느끼는게 당연한겁니다 지금 당장 가서 죽을 용기 있는거 아니면 무책임한 원론적인 얘기는 삼가주세요
응원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리면 좋을까요? 희망적인 말, 꿈 같은 내용들, 여러가지 늘어놓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보니. 말문이 막히는 게 어쩔 수가 없네요. 뭔가, 도울 방법이 없을까 싶어도. 고통을 느낄만해서 고통스러운 마당에 불안을 느낄만해서 불안해지는 상황에 저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단지, 뇌수막염, 장염, 대장염 겹쳐서 대한민국 내놓으라 하는 병원들이 살릴 수 없다고 말했음에도. 죽지 않고 살아났던 저에 대해서 말하면 좋을까요? 아니면, 신경이 죽어서 발가락이 고장나서 생활에 방해가 되어서 잘라내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게 없다고 했을 때. 그런 아버지의 발가락에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지켜보자고 했던 의사 선생님과 실제로 기적이 일어나서 움직일 수 있게 된 발가락에대해 말하면 좋을까요? 기적을 말하기엔, 저도 기적을 믿는 편은 아닙니다. 기적 같은 얘기는 님께서도 많이 찾아보셨겠지요. 그리고 아직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은 기적에 대해서도 고민하실 수 있겠지요. 무엇을 말하면 좋을까요? 어떤 앞날이 펼쳐진다고 하더라도, 후회는 남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서, 언젠가 님을 몰아넣은 모든 부조리들의 면전에서 크게 웃어줄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그저, 내가 잘못된 노력을 따라가다 실수하는 일도 있고, 포기할 때도 있을 뿐. 자신감의 근원은 축적된 노력과 경험, 이해라고 했지요. 지금까지 해오신 과정이 있을 겁니다. 견뎌오신 시간이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나중도 다 견디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디, 후회는 남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의지를 잃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가지 않으면 닿을 수 없다는 걸, 님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후회는 남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인생의 끝은 죽음입니다. 다들 죽어가고 있습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고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혹시 소시오패스이신가요?
연쇄생인마
뭔말하는지는 알겠는데 이러지맙시다 인간이기에, 인간이라면 감정을 느끼는게 당연한겁니다 지금 당장 가서 죽을 용기 있는거 아니면 무책임한 원론적인 얘기는 삼가주세요
글쓴 분의 삶과 보통 사람들의 삶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것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근본은 동일한 조건입니다.
전 오른쪽 온도 감각이 죽었는데 몇년 지나니 0% 에서 10% 정도 돌아오더군요. 저리거나 마비된 감각은 거의 없어졌고요. 손으로 하는 미세한 일... 셔츠의 손목 단추 채우는 일 같은 것도 여러번 해야 하는데... 사지 마비 없이 걸어다닐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저 있던 병실에서 자기발로 걸어서 퇴원한 사람은 저 밖에 없었고요. 쓰러지고 난 뒤의 삶은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제가 매우 운 좋았다고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재활 열심히 하시고 희망 잃지 마세요. 저희 어머니도 편마비로 손이 불편하시고, 엄지 손가락이 세워지지 않아서 병원에서도 여기까지인것 같다고 했는데 2년 지난 지금 엄지 손가락이 조금씩 세워진다고 병원에서도 다시 작업치료 추천했거든요. 6개월안에 재활하는게 제일 좋다고 하지만 꾸준히 조금씩 좋아지는게 느껴지더라고요. 힘내시고 항상 화이팅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