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분 아님
1. 1821년생으로 흥선대원군과 동년배. 고종 즉위 전에는 흥선군과 신정왕후 조씨의 가문인 풍양 조씨 사이에서 연락책을 담당했다고 알려져 있음. 특히 풍양 조씨의 유력자였던 조성하가 다름 아닌 이호준의 사위가 되었음.
2. 고종 초기에 과거에 급제하고 과거 급제 2년 만에 홍문관 부제학까지 오름
3. 전라도 관찰사를 지내며 군비 확충에 공을 세우는 등 나름대로 행정을 잘 했음
4. 중앙정계로 복귀해서는 형조, 예조, 이조, 병조판서를 두루 거침. 그러면서 당시 세자였던 순종의 교육 책임자도 맡음.
5. 대한제국 성립 직전에는 정1품 직위에 이르러서 조선 말엽에서 대한제국에 이르는 격동의 정치판 속에서 계속 출세가도만 달림. 그리고 1901년 편히 사망함.
특히 이 조선시대의 이호준은 자신의 서자 이윤용과 흥선대원군과 그의 기생 출신 첩 계섬월 사이에서 나온 딸을 혼인시켜서 운현궁계 세력 일원으로 분류됨.
초년기에는 거의 대원군의 가신이라 봐도 지나치지 않았는데, 대원군 실각 후 여흥 민씨 우세기에도 요직을 거쳤고, 갑신정변이나 을미사변 같은 정치적 대혼란 속에서도 좌천된 적 없이 계속 승진했던 것을 보면 상당히 정치적 처신이나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음.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라는 드립은 사실 조선시대부터 이미 있었을 수도 있겠다 싶은데...
문제는 이 사람의 '양자'가 굉장히 유명함.
그렇다. 우리가 잘 아는 바로 '그 새끼'다.
이완용은 이호준과 거의 본관만 같은 남남이었는데 열 살때 이호준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중앙정계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셈...
그리고 이완용의 행적이야 그림으로 그린 듯한 권력지향적 기회주의자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완용의 그런 면모는 어쩌면 양부 이호준에게 제대로 배운 것일지도 모르지.
광혜원으로 잘 알려진 미국인 호러스 알렌은 이완용을 가리켜 기계 같은 인간이라고 평한 바 있는데, 알렌의 이 평이 여러 모로 뼈 있는 평가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