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의 눈 앞에 있는 영웅이라는 칭호를 얻은 듀얼리스트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본 하림과 청월, 그리고 호철과 수진은, 모두 자신들이 헛것을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연거푸 자신들의 볼을 꼬집고 있었다.
2년 전, 어둠의 신 [아스트라이모나드]와 그를 추종하는 광신도 집단, [애프터라이프]와 숨 막히는 혈투 끝에 승리를 쟁취한 영웅이라는 칭호를 달게 된 듀얼리스트들.
그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이 지금 자신들의 눈 앞에 짠 하고 나타났으니, 어쩌면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이 현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볼을 꼬집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볼을 통해 전해져 오는 짜릿한 통증에, 지금 자신들의 눈 앞에 펼쳐진 이 상황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네 사람.
서로 볼에 느껴져 오는 통증에 아파하는 네 사람은, 자신들의 눈 앞에 서 있는 영웅들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할 말을 잃고, 영웅이라 불리는 듀얼리스트들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림과 청월, 호철과 수진이 반짝이는 눈망울로 자신들을 바라보자, 그 모습을 본 스트는 어린아이들이 자신들을 마치 선망의 대상처럼 바라보는 것이 퍽 귀여운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풋, 쟤네들 정말 귀엽네."
"그러게 말이야." (루카스)
"하긴, 눈 앞에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전설의 영웅들이 모여 있는데, 감탄하지 않고는 못 배기지." (샬롯)
"뻥 치시네. 넌 우리가 애프터라이프랑 싸울 때 꽁무니 빠져라 도망치는 데 바빴잖아." (브레이크)
"헤이, 브레~이크. 그렇게 나오면 나 완전 섭섭해? 내가 SEM 컵에 쳐들어 온 애프터라이프 놈들이랑 싸운 거, 기억 안 나?"
"뻥도 정도껏 쳐라. 우리가 SEM 컵에서 깽판치던 애프터라이프랑 박 터지게 싸우고 있을 때, 넌 민간인들이랑 같이 꽁무니 빠지게 도망가고 있는 거, 내가 그 때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다 봤거든?"
"그, 그건 아마 나랑 얼굴이 닮은 다른 사람을 본 거 아닐까??"
"샬롯 형, 그냥 사실대로 인정하시죠? 저도 형이 대피하고 계신 민간인 분들 틈에서 "걸음아, 나 살려라!"라고 소리 지르면서 줄행랑 치는 거,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헤이, 알리시!"
"하긴, 샬롯은 우리가 그 애프터인지 뭐시기인지 하는 놈들이랑 피 터지게 싸우고 있을 때, 대피하고 있는 민간인 분들 틈에 끼어서 은근슬쩍 도망치긴 했지."
"에스트렐라 누나?!"
"아무튼, 샬롯 넌 여기에 낀 것 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야 돼. 애프터라이프랑 싸워서 이긴 영웅들 사이에 깍두기로 끼어드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니까."
"스트 너까지?!"
샬롯이 자신을 은근슬쩍 애프터라이프와 싸운 영웅들과 같은 급에 끼워 넣으려고 하자, SEM 컵에서 [애프터라이프]가 본성을 드러내고 행패를 부릴 때 샬롯은 은근슬쩍 민간인들 틈에 끼어 도망쳤다는 사실을 말하며 샬롯을 타박하는 브레이크.
에스트렐라와 알리시, 스트 역시 그 날 샬롯이 민간인들 사이에 끼어 도망친 일을 언급하자, 샬롯은 자신이 이 곳에 깍두기로 끼어 있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하며 심통을 부리고 있었다.
2년 전 [애프터라이프]와 싸우지 않고 꽁무니 빠지게 도망친 샬롯이 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이 있는 시점은, 바로 약 2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으로부터 2시간 전, 리나 시티에서 각자의 일상을 보내고 있는 영웅이라 불리는 듀얼리스트들.
이들은 모두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섰다.
이들이 집 밖으로 나선 순간, 이들의 눈에 발견된 것은 바로 카게야마가 이들에게 보내는 초대장.
우주연방국 소속 우주 경찰대, 시큐리티 포스의 문장 모양을 띤 스티커가 붙은 편지를 본 듀얼리스트들은, 초대장에 적혀 있는 내용을 보자, 각자 조금씩의 온도차는 있을 지 몰라도, 경악하는 반응을 보인 것은 모두가 똑같았다.
- 영웅이라 불리는 듀얼리스트들에게.
이런 식으로 연락을 드리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한 시가 급한 상황이기에, 이런 식으로밖에 연락을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여러분의 활약 덕에 구심점을 잃고 와해된 줄 알았던 [애프터라이프]가,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이 세상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고자 합니다.
새롭게 태어난 그들의 이름은, "암흑 날개".
"암흑 날개"는 지금껏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암암리에 자신과 같은 [애프터라이프]에 소속되어 있던 잔당들을 끌어모았고, 이제 자신의 등 뒤에 달린 검은 날개를 펼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하늘을 자신들의 색으로 물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암흑 날개"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2년 전 목숨을 잃은 어둠의 신, [아스트라이모나드]의 의지를 이어 이 세상을 다시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하는 것.
그들의 야망이 이 세상에 퍼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손을 내밀게 되었습니다.
이 초대에 모두 응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버님과 제가 거주하고 있는 사택(私宅)의 주소를 남겨 놓겠습니다.
트와일라잇 시티와 리나 시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글레이브 하우스.
글레이브 아버님의 뜻에 따라, 저 역시 글레이브 하우스에서 영웅 분들이 모일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영웅이라 불리는 듀얼리스트들이여, X월 X일 오전 9시 30분까지 글레이브 하우스에 모여 주십시오. 이 세상의 자유롭고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서.
- 시큐리티 포스의 전 지휘관, 글레이브 아버님의 양자, 카게야마 올림.
"세상에... 이게 정말 사실이란 말이야?!" (브레이크)
"2년이나 지난 지금, [애프터라이프]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고...?!" (스트)
"만약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지금 당장 글레이브 하우스로 가야겠어." (루카스)
"나도 갈게, 오빠. 나도 그 작자들한테 엄청나게 많은 빚을 지고 있으니까, 이자까지 몇 배로 붙여서 빚을 갚아 줘야지." (루시)
"나에게 잊지 못할 수모를 안겨줬던 그 자들이, 지금 다시 나타나려 한다고...?! 그렇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겠는걸!" (알리시)
"2년 동안 잠잠하던 그 놈들이 다시 나타나려 하다니... 좋아, 놈들에게 진정한 어둠의 힘이 무엇인지, 이 현인제가 확실히 가르쳐 주겠어...!!!" (인제)
"하, 참 내... 얘네들 무슨 소고기 힘줄만 쳐먹었나. 그 때 이후로 시간이 2년이나 지났는데, 왜 또 다시 얼굴을 기웃거리고 난리야?" (아케르나)
"그러게 말이야. 아무튼 암흑 날개랑 싸우는 기간 동안, 우리 방송은 휴방을 해야 할 것 같아." (알파드)
"휴방은 뭐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건 줄 아냐? 우리가 암흑 날개랑 싸우게 되면, 무슨 핑계로 휴방을 할 건데?"
"그건 누나가 알아서 우리 방송 게시판에 공지사항 적어서 올려야지. 난 그동안 글레이브 하우스에 갈 준비나 해야겠다~"
"뭐?! 야, 이 망할 영감탱이야! 나 혼자 두고 가면 죽을 줄 알아!!!"
알파드가 능글맞은 투로 아케르나에게 휴방 공지는 알아서 잘 하라는 말만 남기고 자신은 혼자 글레이브 하우스에 갈 준비를 하자, 아케르나는 불 같이 화를 내며 알파드의 뒤를 따라 글레이브 하우스로 출발할 준비를 시작했다.
아케르나와 알파드 남매가 글레이브 하우스로 출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무렵, 다른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오늘은 스케줄이 없는 날이라 집에서 편하게 쉬고 있던 에스트렐라(30세)는, 편지를 읽자마자 격앙하는 반응을 보이며 이번에야말로 그 애프터인지 애XX인지 하는 놈들을 잡아 족쳐 버리겠다고 다짐한 뒤, 콧김을 씩씩 뿜으며 글레이브 하우스로 출발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2년 전 [아트몬]과 [애프터라이프]와 싸운 영웅들이 하나둘씩 글레이브 하우스로 출발하기 위해 준비에 들어간 시각.
집에서 상큼한 레몬 티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던 홍월은, 집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메이드의 손에 들려 있는 편지를 발견하자 편지에 적힌 내용을 보기 시작했다.
편지에 적힌 내용은 영웅이라 불리는 듀얼리스트들과 큰 틀은 같았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존재했다.
- TDC 듀얼 챔피언십 챔피언, 진홍월 님에게.
이런 식으로 연락을 드리게 되어 송구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 시가 급한 상황이기에, 이렇게 서신으로밖에 연락을 드리지 못 하는 점, 바다와 같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바로 본론부터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애프터라이프]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2년 전, 세상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기 위해 여러 우주에서 온갖 악행과 파괴 행위를 일삼았던 광신자 집단, [애프터라이프].
그 잔당들이 지금 "암흑 날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한 데 모여, 이 세상을 다시 자신들의 색으로 물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암흑 날개"가 추구하고 있는 궁극적인 야망은, 2년 전 빛의 신 [아케루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어둠의 신, [아스트라이모나드]의 의지를 이어, 이 세상을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하는 것.
그들의 야망을 막기 위해 2년 전 어둠의 신과 그를 추종하는 광신도들에게 맞서 싸운 영웅들에게도 서신을 보냈습니다만, 그들의 힘만 가지곤 부족할 것 같아 이렇게 연통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진홍월 챔피언 님, 이 세상은 지금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께서도 부디 이 편지에 적혀 있는 주소로 와 주십시오.
트와일라잇 시티와 리나 시티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집, 글레이브 하우스.
진홍월 님께서 저의 연락에 응하시어,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이 곳에 오시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럼 이만 서신의 내용을 마치겠습니다. X월 X일 오전 9시 30분까지, 글레이브 하우스로 와 주십시오.
- 시큐리티 포스 전 지휘관, 글레이브 아버님의 양자, 카게야마 올림.
"이게 정말 사실이란 말이야...?!"
"왜 그래, 큰누나?"
"이것 좀 봐, 현월아. 2년 전에 영웅들에게 패배하고 와해된 광신도들이, 지금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나려 하고 있대."
"그 광신도들이 다시 나타났다고?!"
"놈들이 지난 2년 동안 잠잠하다 싶어서 이제 세상에 평화가 찾아왔나 싶었는데, 이렇게 또 다시 모습을 드러내다니...!!!"
"이 편지 내용이 사실이라면, 나도 누나 따라서 갈래!"
"안돼! 지금 청월이도 어디 갔는지 모르는데, 너까지 사라지면 엄마랑 아빠가 얼마나 걱정하시겠어?!"
"그래도!"
"아쉽지만, 누군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을 지켜야지. 그러니까 현월이 네가 우리 가족의 대표로써, 우리 집을 지켜주렴."
"그럼... 금방 돌아올 거지?"
"물론이지! 멀리 가는 거 아니니까,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알았어. 대신 올 땐 작은누나랑 같이 돌아와야 돼!"
"그럼, 당연하지! 우리 귀여운 막내동생 부탁인데!"
현월의 어리광 섞인 귀여운 부탁에, 막내동생 현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글레이브 하우스로 출발하기 위해 준비에 들어가는 홍월.
같은 시각, 카게야마가 보낸 초대장을 받은 호철과 수진 역시,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독하게 마음을 먹고 글레이브 하우스로 출발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모인 듀얼리스트들이, 바로 지금 글레이브 하우스에 모인 17명의 듀얼리스트들이었다.
초대장을 받고 글레이브 하우스에 찾아온 17명의 듀얼리스트들은, 모두 각자 통성명을 주고 받으며, 서로 열심히 해 보자는 말도 주고 받았다.
초대장을 받지 않고 글레이브 하우스에 있는 듀얼리스트들 중 하림과 청월은, 카게야마를 향해 조용한 목소리로 자신들은 초대장을 받지 않았는데 여기 있어도 괜찮은 거냐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고, 카게야마는 하림과 청월에게 두 사람 모두 자신이 보낸 두루마리를 받았으니 하림과 청월도 당당히 이 모임에 낄 자격이 있다며, 너무 불편해 하지 말라는 말로 두 사람을 격려했다.
이렇게 되면 카게야마가 보낸 초대장을 받지 못 한 듀얼리스트는 샬롯과 마리아, 단 두 명 뿐.
샬롯은 자기도 [애프터라이프]랑 싸운 듀얼리스트 중 한 사람인데, 왜 자신이 초대장을 받지 못 한 거냐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고, 샬롯이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 없는 마리아는, 전날 카게야마에게 들은 말이 신경이 쓰였는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리아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하루 전 하림과 라이카가 듀얼을 했던 그 날, 카게야마가 했던 말에 답이 있었다.
기절한 하림을 침대에 누인 뒤, 창문을 통해 어둠에 깊게 잠긴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는 마리아.
그녀는 한 때 [애프터라이프]의 핵심 간부인 신의 일곱 눈 중 한 사람, [마카리아]라는 사람이었던 과거가 있었기에,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저지른 잘못들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싶어했다.
그 죄책감 때문에 사회 봉사 활동도 많이 했고, 프로 생활을 하며 번 수익도 매번 일정 금액씩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했지만,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은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마리아의 마음 속에서 그녀의 지우고 싶은 과거를 계속 들추어 내며 그녀를 괴롭게 했다.
별들이 아름답게 수 놓인 밤 하늘을 바라보던 마리아는, 마음 속에서 끊임 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어떻게든 떨쳐내려 하였지만, 마음 한 구석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죄책감은 오히려 계속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처럼 마리아의 과거를 들추어 내며 마리아를 괴롭혔다.
괴로운 마음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글레이브 하우스 창문으로 비춰지는 야경을 바라보는 마리아.
마리아가 계속 창문에 비치는 도시의 야경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카게야마는 천천히 입을 열어 마리아와 대화를 시작했다.
"아직도 과거 때문에 괴로워 하고 있는 것이오?"
"카게야마."
"그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계속 낭자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오?"
"네. 제가 아무리 그 죄책감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려고 해도, 제 마음 속에 깊게 자리잡은 죄책감은, 계속 저를 괴롭히고 있어요."
"그렇구려."
마리아가 과거에 마카리아였을 적 저지른 악행들과, 그로 인해 마음 속에 자리 잡은 죄책감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카게야마.
잠시 후,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가는 카게야마는, 마리아에게 뜻을 알 수 없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낭자는, 혹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소?"
"무슨 말이죠?"
"이승에서 과오를 저지른 영혼은, 죽은 뒤 지옥에 간다는 말 말이오."
"그런 건 이미 알고 있어요. 제 못난 영혼이 바로 그 지옥에 떨어질 뻔 했으니까요."
"그렇다면 낭자에게 묻겠소. 지옥에 떨어진 영혼이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수행한다면, 그 영혼은 어떻게 될 것 같소?"
"글쎄요. 제가 알기로는, 한 번 지옥에 떨어진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갈 방법은, 없는 걸로 알거든요."
"낭자의 말처럼 저승의 규율은 그럴지도 모르오. 하지만, 만일 이승의 규율이 저승의 규율보다 너그럽다면 어떨 것 같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
"마리아 낭자에게 주어진 기회는, 한 번이 아니라는 말이오."
"네...??"
"생각해 보시오. 에스트렐라 낭자와 오벨 사장이 왜 낭자의 삶을 다시 태어나게 했는지 말이오."
"그건..."
"어쩌면, 두 분 모두 낭자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신 것일지도 모르오. 지난 생의 마카리아라는 사람이 저지른 과오를, 다음 생인 마리아라는 사람의 인생을 통해 갚으며 살아가라는 뜻으로 말이오."
"그건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 두 분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죠."
"그렇다면, 낭자는 그 두 분께서 주신 단 한 번의 기회를 어떻게 사용할 생각이오?"
"네?"
"마카리아라는 사람의 존재는, 이제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소. 지금 여기 서 있는 그대는 마리아라는 독립적인 존재를 가진 사람이오. 비록 과거에 낭자가 저지른 잘못이 현재의 낭자를 괴롭힌다고 해도, 지금의 낭자는 항상 그 죄책감과 싸우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소. 그렇다면, 과거가 계속해서 낭자를 괴롭힌다고 해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낭자가 계속해서 그 죄책감과 싸우며 선의의 길을 걷는다면, 낭자의 영혼은 진정한 의미로 구원받을 수 있지 않겠소?"
"카게야마..."
"이것 하나만 기억하시오. 지금 이 곳에 있는 낭자는 애프터라이프 신의 일곱 눈 마카리아가 아닌 마리아라는 독립적인 존재,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축복받은 존재라는 사실 말이오. 그러니 그대는 마리아라는 사람이 걷는 길을 그대로 걷기만 하면 되오."
"고마워요, 카게야마."
"감사 인사를 받으려고 한 말이 아니오. 그저, 낭자가 야경만 바라보고 있으니 걱정되는 마음에, 소인이 말벗이라도 되어 드릴까 싶어 낭자와 사담을 나눈 것 뿐이오."
"그래요? 이유가 어찌 되었든, 고맙네요."
"낭자가 기운을 찾아서 다행이구려. 그럼 이제 밤이 늦었으니, 슬슬 잠을 청하시오. 내일이 바로 암흑 날개와 싸우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하는 날이니 말이오."
"알겠어요. 당신도 이제 자요, 카게야마. 임무도 좋지만 몸이 망가지면 아무 소용 없으니까요."
"내 걱정은 말고, 낭자 먼저 들어가서 잠을 청하시오. 난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니."
"알았어요. 당신도 잘 자요, 카게야마."
창문으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던 마리아는, 카게야마가 건넨 위로의 말 한 마디가 큰 힘이 되었는지,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는 미소를 띠며 자신에게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 날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자신의 과오를 조금이나마 갚기 위해 이 자리에 합류하게 된 마리아.
비록 초대장은 받지 못 했어도, 자신 역시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들을 갚아 나가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기에, 마리아는 당당한 모습으로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모인 듀얼리스트 중, 정식으로 초대받지 못 한 사람은 샬롯 한 사람 뿐이다.
샬롯은 뜨거운 콧김을 씩씩 뿜으며, 카게야마에게 왜 자신에게는 초대장이 오지 않았는지 조목조목 따지기 시작했다.
"헤이, 미스터 닌자!"
"무슨 일이오?"
"난 왜 여기 있는 사람들처럼 초대장을 받지 못 한 거죠?! 나도 애프터라이프랑 싸운 듀얼리스트 중 한 사람인데!!!"
"난 아버님께서 맡기신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오. 아버님의 초대장을 받지 못 한 이는, 소인이 알기론 단 한 명도 없는 걸로 알고 있소만?"
"그럼 me는요?! me도 애프터라이프와 싸운 듀얼리스트인데, 왜 나한테는 초대장이 안 온 겁니까?!"
"글쎄 말이오. 어쩌면 초대장을 보낸 사람들 중에 빠진 이가 있을지도 모르지. 혹시 모르니 내가 자세히 확인해 보도록 하겠소."
"OK. 그럼 자세한 확인 부탁~해요~"
"알겠소."
얼굴을 붉으락푸르락거리며 화를 내던 샬롯은 카게야마의 말 한 마디에 바로 다시 평소의 자뻑 가득 마가린 왕자 모드로 돌아왔고, 샬롯의 느끼한 움직임을 본 하림과 청월은, 순간 어제 먹은 밥이 다시 역류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카게야마에게 혹시 샬롯에게 정식으로 초대장을 보낸 것이 맞냐고 속닥거렸다.
"카게야마!" (림)
"무슨 일인가?"
"진짜 샬롯 님한테 초대장 안 보냈어? 샬롯 님도 2년 전 영웅 중 한 사람이라고 하던데?"
"내가 알기로 샬롯 공은 그러한 칭호를 받지 못 한 걸로 알고 있다."
"그게 정말이야?!"
"틀림 없는 사실이다. 못 믿겠으면 아케루스 파크에 세워진 비석에 새겨진 이름들을 확인하게나."
"내가 전에 봤던 아케루스 파크에 세워진 추모비에 적힌 영웅 명단에, 샬롯 님 이름은 없었던 걸로 아는데."
"음. 그대의 말이 맞다면, 그건 틀림 없는 사실이군."
"그럼, 저 분은 지금... 자기가 영웅이라고 착각하고 계신 거란 말이야...?!" (청월)
"그렇다는 말밖에 할 수 없을 것 같군."
"그런 거라면 진짜 망상증이 심각하시네. 샬롯 님처럼 일행에 스리슬쩍 끼어서 온 사람을 뭐라고 부르더라...?? 우리 아버지랑 어머니가 하셨던 말 중에 그런 말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아,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나도 갑자기 그런 뜻을 가진 단어가 떠오를랑 말랑 하는데... 아, 생각났다! 그거야, 그거!"
"그거? 그거가 뭔데?"
"...깍두기."
"내가 방금 그 단어를 말하고 싶었는데, 청월이 나이스!"
"음. 조금 저급하긴 하지만, 지금 샬롯 공의 상황에 딱 맞는 말이로군."
"데헷★"
하림이 샬롯처럼 초대받지 않았는데 은근슬쩍 일행에 끼어서 온 사람을 뜻하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머리를 싸매자, 그런 하림을 위해 머릿속에서 샬롯과 같은 사람을 뜻하는 은어, 깍두기를 말하는 청월.
청월의 말처럼 샬롯은 브레이크가 2년 전 [아트몬]과 [애프터라이프]에게서 세상을 구한 영웅이라 불리는 친구들과 한 데 모여 글레이브 하우스로 향하자, 자신도 그 일행 속에 끼고 싶었던 샬롯은 은근슬쩍 브레이크 일행에 끼어 글레이브 하우스에 오게 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브레이크 일행은 글레이브 하우스에서 샬롯이 자신 역시 [애프터라이프]와 싸웠던 영웅이라고 말하자, 오히려 도망치기 바빴던 녀석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며 샬롯을 타박한 것이었다.
각자 이유야 어찌 되었든 글레이브의 부름으로 다시 한 번 한 자리에 모이게 된 2년 전 어둠의 손아귀에서 세상을 구한 아홉 명의 영웅들(브레이크, 스트(20세), 에스트렐라(30세), 루카스, 루시, 인제, 아케르나, 알파드, 알리시)과, 어쩌면 새로운 영웅이라는 칭호를 얻게 될 지도 모를 일곱 명(림, 청월, 호철, 수진, 마리아, 홍월, 카게야마)의 듀얼리스트들, 그리고 이 경건하고 엄숙한 자리에 양심도, 눈치도 없이 끼어든 깍두기 듀얼리스트 한 사람(샬롯).
이들이 서로 각자 살아가는 인생 이야기와 암흑 날개에 대한 대비책을 의논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어느새 시간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하는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는 오후 4시 경이 되었다.
글레이브가 주최한 모임은 어느덧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했고, 하림은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자신이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브레이크 님!"
"응?"
"호, 혹시... 기왕 이렇게 자리도 마련되었으니까, 저랑 듀얼 한 판 어떠신가요?"
"뭐?"
하림의 떨리지만 당찬 포부가 담긴 말을 듣자 순간 사고 회로가 정지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브레이크.
약 3초 후, 브레이크는 미소를 지으며 하림의 말에 명쾌한 답을 건네 주었다.
"좋아! 이런 기회는 흔치 않긴 하지. 네 도전을 받아 주겠어, 림아!"
"가, 감사합니다!!!"
"유후! 림이 오늘 계 탔구나!!!" (호철)
"우리 자기, 파이팅!!!" (청월)
"어머, 자기라니?" (스트)
"아, 그게요... 여기에는 말 못 할 사연이 있어요." (림)
"아주 긴 사연이지. 아마 다 듣고 나면 하루가 다 지나 있을 걸? 언제 한 번 날 잡아서, 우리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귀여운 동생 청월이랑, 내 예비 매제가 될 림이가 연인 사이가 된 이유랑, 두 사람이 데이트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다 말해줘야겠네." (홍월)
"그래? 그럼 언제 한 번 날 잡아서 알려줘, 홍월찡!"
"물론이지! 스트찡이라면 언제든 OK야!"
"저기요, 그 말은 다른 사람들한텐 안 알려준다는 소리 아니에요?" (알리시)
"맞아, 맞아! 홍월 누나 치사하다! 우우우-" (알파드)
"제발 좀 가만히 있어라, 이 망할 영감아..." (아케르나)
"다른 분들께도 알려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면, 듀얼 필드로 자리를 옮겨 볼까요?"
"좋아요!" (알리시)
"야호! 오랜만에 브레이크의 듀얼을 이 자리에서 내 두 눈으로 보게 됐구나!!!" (루카스)
"좀 진정해, 철부지 오빠야." (루시)
"아야야야...!!!! 야, 루시! 내 귀 잡아 당기지 마!!!"
"하하하... 루카스 님, 괜찮으시려나...??" (호철)
"쟤네는 원래 저러니까,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인제)
"저 두 분이 저러는 걸 많이 보신 것처럼 이야기하시네요?" (수진)
"그럼. [애프터라이프]가 활개칠 때는 두 사람이 저러는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애프터라이프]와의 싸움이 끝나고 난 뒤로는, 두 사람이 가끔씩 저렇게 투닥거리는 모습을 많이 봤거든."
"2년 전 싸움이 일어나고 있을 땐 엄청 우애 깊고 애틋한 사이였는데, 싸움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니까, 우리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남매 사이가 된 거다, 이 말씀이시죠?"
"정확한 평론이야."
오랜만에 브레이크의 듀얼을 볼 수 있다며 어린아이처럼 신나서 뛰어 오르려는 루카스와, 그런 오빠를 제지하며 면박을 주는 루시.
그리고 루카스와 루시 남매가 저러는 모습이 본인에겐 익숙한 광경인지, 테이블 앞에 놓여 있는 찻잔을 홀짝거리며 평을 내리는 인제.
[애프터라이프]가 패악질을 부리던 2년 전이라면 저런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었겠지만, [애프터라이프]가 와해된 지금이라면 남매가 사는 집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
루카스가 자리에서 방방 뛰다 루시에게 제재당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멋쩍은 웃음소리를 내며 식은땀을 흘렸고, 이후 듀얼 필드로 이동한 사람들은 하림과 브레이크의 듀얼을 관람하기 위해 두 사람에게서 떨어진 곳에 비치된 자리에 앉아 두 사람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림이 파이팅!!!" (호철)
"브레이크, 힘내라!!!" (루카스)
"이 듀얼, 꽤나 흥미진진할 것 같지 않아? 안 그래, 마ㅋ..." (아케르나)
"(찌릿)"
"아, 아니... 마리아."
"흠... 글쎄. 듀얼은 일단 시작하고 나서 과정을 봐야 알 수 있지 않겠어?"
"그... 그렇겠지?"
"하여튼 누나는 가끔씩 눈치는 밥 말아먹은 말을 한다니까."
"시끄럽다...?!"
"메롱~"
"어유, 저 영ㄱ... 아니, 꼬맹이를 그냥...!!!"
"히힛."
"하여튼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어쨌든, 듀얼이나 지켜보자. 저 두 사람이 벌이는 듀얼, 어쩌면 우리가 볼 듀얼 중 가장 재미있는 듀얼이 될 것 같지 않아?" (마리아)
"소인도 마리아 낭자의 말에 동의하오. 두 도령이 벌이는 듀얼이, 과연 어떤 결과로 향해 움직일 지..."
"브레~이크!!! 네 소중한 절친 샬롯이 응원하고 있으니까, 힘 내서 잘 싸워!!!"
"우웁...." (에스트렐라[30세])
"왜 그래, 언니?" (스트)
"쟤 말 들으니까, 오늘 먹은 음식들이 갑자기 올라오려고 한다..."
"언니도 그래? 실은 나도 그래..."
샬롯의 버터를 가득 삼킨 듯한 느끼한 말을 듣게 된 에스트렐라 자매는, 오늘 먹은 음식들이 역류하려고 하는지 속이 니글니글 끓기 시작했다.
샬롯의 느끼함을 제재하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은 바로 알리시.
바람처럼 빠른 움직임으로 샬롯의 목 뒤를 가격해 샬롯을 기절시킨 알리시는, 에스트렐라 자매를 향해 순수한 표정을 보이며 "이제 괜찮죠, 누나들?"이라고 말하였고, 알리시가 샬롯을 제압하자 에스트렐라 자매는 역류하려는 음식들을 간신히 억누르고 알리시에게 감사 인사를 말했다.
샬롯의 느끼 무브도 제압되었으니, 이제 듀얼에 온 정신을 집중할 수 있게 된 관중들.
관중들은 이 두 사람이 벌이게 될 듀얼이 어쩌면 세기의 듀얼이 될 지도 모를 것 같다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하림과 브레이크가 벌이게 될 듀얼이 펼쳐질 듀얼 필드를 바라보았다.
아케르나와 알파드는 대체 어디서 가져왔는지 출처가 불분명한 카라멜 팝콘과 콜라를 들고 하림과 브레이크가 벌이게 될 듀얼을 관람할 준비를 마쳤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저마다 팝콘과 음료수가 제공되어, 듀얼 필드는 마치 영화관 혹은 스포츠 스타디움에 온 것 같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긴장감 속에서 팝콘과 콜라를 목으로 넘기며 듀얼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관중들.
하림과 브레이크, 두 사람이 펼칠 듀얼은, 이제 그 서막을 올리려 하고 있었다.
""듀얼!!!""
하림과 브레이크의 외침에 긴장감이 배로 돌기 시작하는 듀얼 필드.
과연 이 듀얼에서 승리하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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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편 연재 완료!!!
이번 편은 듀얼 장면도 조금 쓰려고 했는데, 스토리를 진행하다 보니 내용이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적당한 선에서 잘랐습니다.
듀얼 장면을 기다리던 분들께는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ㅠㅠ
전작 주인공과 현작 주인공의 듀얼은,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모두 트와일라잇 스토리 26편을 기대해 주세요!!!
그러면 이상으로 이번 편을 마치겠습니다.
모두 다음 편에서 만나요, 제발~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그렇다면 저도 저대로 암흑 날개의 모습을 묘사할 필요가 있을지도요? 그런데 내 글써야하는데 안 쓰는 걸 보면 역시 내 일은 정말 하기 싫은게 맞나 봅니다 =(
잘 부탁드립니다!!! 자신 일은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감정... 저도 그런 감정이 드는 날이 있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