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바로 자기 자식들에 대한 관점의 차이였는데, 일단 태종은 자식인 대군들이 어느정도 장성해서 상투를 틀고
장가를 갈 나이가 되면 무조건 대궐 밖으로 나가서 살게 했음. 그리고 그 어떤 중요한 나랏일도 맡기지 않았고.
실제로 충녕대군은 책벌레일 정도로 엄청난 학구파였고, 태종의 아들들인 대군들 중에서도 가장 명석한
두뇌를 가진 재능 있는 아들이었지만, 태종은 그걸 알면서도 충녕대군은 물론 효령대군에게도 나랏일을 맡기지 않았고.
하지만 충녕대군 시절을 거쳐서 왕위에 오른 세종의 생각은 아버지의 태종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는데,
자신의 아들들이라는 이유로 대군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일을 하지 못하면 그게 말이 되느냐는 생각이었음.
그래서 세종은 수양대군, 안평대군을 비롯한 왕자들에게 굵직굵직한 나랏일에 참여해서 일을 하도록 했고,
수양대군이 석보상절을 간행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워낙에 잘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