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 (부- 어둠과소금(13))
아뉴스 데이*
―화장터에서
우리의 마음은 영원의 시간 속에서 찢김 없이 고왔죠
배냇저고리 같던 그때 무한으로부터 도안된 백옥 같은
얼굴은 무표정했고 신비로움 가득한 생애 첫 시선에 영
근 세상은 뿌연 연기 속 이슬 같았죠 시선을 돌려도 무늬
의 중심에 있는 빛
생각나요
아니
생각조차 나지 않아요
몽홀의 얼굴과 윤곽이 메아리처럼 지나갈따름 마음
속 낙태 그 자리에 당신은 안 계셨어요 기척조차 없으셨
죠 한 사람이 퇴장해야 다음 사람이 등장하는 뼈아픈 차
례가 가슴에 구멍을 뚫어요 살의 확신이 가져다주는 건
안 계심의 확실성에 비해 불확정적이나마 무엇보다도 자
명한 이 부딪힘과 아울러 천만 번을 의심 없이 섞여도 결
국은 흔적도 없어진다는 것 그 두 가지죠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요
끝내는 뒤집히리라는 걸
당신도 알잖아요
지금 뜻 모를 예감처럼 기다리고 있는 패가 당신 속에
쥔 그거예요 지금은 괴로움이 앞서네요 나중엔 보고 싶
어지겠죠 바다에서 손바닥으로 물을 떠다가 누구를 먹
이겠어요 너무나 막막한 그 넘침이 쓴웃음으로 돌아와
요 이 모든 게 과정의 일부죠 계속해서 과정인 거죠 각성
할게요 사랑도 미움도 기쁨도 슬픔도 결핍과 학대의 뒤
안길에서는 터무니없이 헐값에 거래된다는 충고를 잊지
않을게요 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저마다의 입속에 입맛을
달고 세상에 나와 그 입맛을 위해 시간과 즐거움이 봉사
하고 화릉거리는 불더미 속에 던져지고 난 다음 태양처
럼 눈부시게 승천하는 순백의 뼈들이 부르는 환희의 송
가 들으며 옷자락을 펄럭이는 구름의 흩어짐 앞에 무릎
을 꿇고 묵상합니다
시간의 비탈을
보이지도 않게 활강합니다
빛을 타고 빛의 속도로
* Agnus dei: 천주의 어린 양.
빛과 이름
성기완, 문학과지성 시인선 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