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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태연은 똑같은 자세로 온몸이 저리도록 웅크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어떻게”
우악스러운 인상, 욕심스럽게 째진 눈, 역겹게 얇은 입술, 무엇보다 태연 자신과 자신의 자매를 향한 더러운 눈길. 이 모든 역겨운 표현이 태연의 할아버지를 향한 것이었다.
“개새끼… 어떻게 죽어서도 내 눈앞에… 왜…”
태린의 대한 공포감만으로 뛰쳐 나온 것은 아니었다. 애좀들 사이에는 태연이 저주해 마지 않는 그녀의 할아버지가 있었다. 엄마의 아버지. 역겨운 부녀. 역겹지만 좀비 사태 이전까지 할아버지와 엄마가 태연과 그녀의 자매의 모든 일상에 고삐를 쥐고 있었다. 권위를 지니며, 악랄하게 통치하는 독재자. 왕위를 찬탈하려는 시도는 번번히 실패하였고, 그녀들의 인생은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녀의 엄마가 처음부터 이상했던 것은 아니었다. 태연의 아빠가 살아있을 때만 해도 가정에 헌신적이었다. 아빠가 딸들에게 쏟는 애정을 왜인지 조금 질투하기는 했어도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려 했다. 아빠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기에 집안의 기둥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일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벌어졌다. 태연의 아빠가 암으로 사망한 것이었다. 아빠는 이미 이럴 것이라는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많은 사망 보험과 암 보험을 들어 놓아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찾아올 일은 없었다. 하지만 하이에나 같은 할아버지는 돈 냄새를 맡고 태연의 엄마를 찾아왔다. 태연은 그때 자신의 할아버지를 처음 봤다. 20만원 상당의 용돈을 주며 예쁜 옷을 사 입으라고 하였다. 예쁜 옷. 할아버지로서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말이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상당히 역겹게 느껴졌다.
예전부터 약간의 애정결핍을 느끼던 태연의 엄마는 다시금 할아버지에게 의지하기 시작했고, 뱀과 같은 할아버지는 그 틈새를 파고 들어가 의지하게 하였다. 아빠의 목숨값은 몇년동안 착실히 할아버지의 통장, 도박, 성매매값으로 옮겨졌다. 그 사이 엄마도 할아버지를 따라 도박에 손을 댔고, 호빠에도 자주 가기 시작했다. 이 두명이 집에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고, 집에 있던 날에도 기분이 안 좋으면 자매에게 손찌검을 하였다. 그래도 자매가 중학교 2학년에 될 때까지는 그나마 나았다. 돈은 충분했고, 자매 둘이서 서로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흥으로 쓰던 돈이 점차 사라져 가자 할아버지와 엄마는 두 자매에게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끔찍했다. 신고를 해도 어린 두 자매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고, 증거 또한 남길 수 없었다. 심지어 처음 신고를 하자마자 할아버지는 두 자매를 각기 다른 정신병원에 데려가서 정신병이 있다는 진단서를 받아놓았기에 이후에는 경찰이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물론 도망도 쳐봤지만 할아버지가 대공분실에서 일했다는 얘기가 사실인지 항상 붙잡혀와서 상처가 보이지 않는 곳을 때렸다.
이후 몇년동안 자매는 조건만남 등과 같은 성매매를 해야했다. 수고비랍시고 몇프로를 떼어주긴 했지만, 그 수고비는 콘돔값과 사후 피임약 값으로 다 나가게 되었다. 이런 노력에도 무색하게 차태연의 쌍둥이 언니는 임신을 하게 된다.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태연의 언니는 관련 시설로 도망쳤고, 일이 귀찮아 질 것이라고 생각한 할아버지는 태연의 언니를 다시 데려오는 대신에 태연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게 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태연과 언니는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어차피 소문이 퍼질대로 퍼졌고, 선생들 또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이유는 없었다.
태연의 언니는 결국 출산을 하게 되고, 보호센터를 전전하면서 아이를 키우게 된다. 나쁜일에는 성실했던 할아버지는 태연의 언니가 몇달동안 아이를 키우는 동안 브로커를 알아보려 다녔고, 가장 높은 값을 부른 이와 계약을 했다. 당연히 언니의 자취를 알던 할아버지는 아이에 대한 협박으로 태연의 언니를 다시 집으로 데려오게 되고, 계약까지 남은 기간동안 머물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산모를 먼저 보고 싶다는 구매자의 요구에 할아버지, 엄마, 태연의 언니는 서울의 한 카페로 가게 되었다. 태연은 교복플레이를 하고 싶다는 손님의 요청에 교복을 꺼내입고 약속시간 전까지 조카를 돌보고 있었다.
“미르야, 우리 도망칠까? 니 엄마도 그걸 원하지 않을까? 그래도 이번에는 잘 도망치면…… 너랑 나랑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는 너희 엄마도 여기서 꺼내주고….. 이모랑 같이 갈까?”
태연은 울것 같은 표정으로 미르를 내려보았다. 미르는 배실배실 웃으며 이모의 얼굴을 만지려 손을 뻗으려 했다. 결국 태연은 눈물을 쏟으며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 같이 가자. 이모랑 가자”
태연은 혹시라도 엄마나 할아버지가 빨리 돌아올까봐 재빨리 돈, 통장, 애기용품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또 다른 지옥이 있었다. 뭔지 모를 폭발이 계속되었고, 사람들은 도망치고, 비명지르고, 육편이 찢겨나가는 소리.
차갑게 식은 몸을 이끌고 온 배수로와 굴다리를 뒤지던 태린은 한 굴다리 입구에서 김이 나는 것을 발견했다. 조심스레 다가가서 머리만 살짝 기울여 보니 짱돌을 집어들고 벌벌 떨고 있는 차태연이 보였다. 태연은 태린을 발견하지 못한 듯 했다.
“태연씨?”
차태연은 흠칫 놀라서 두리번 거리며 굴다리 입구를 쳐다보며 짱돌을 더욱 꽉 쥐었다. 어찌나 꽉 쥐었는지 손에는 피가 흘렀다. 숨소리는 거칠어졌고, 동공은 떨렸다.
“…태연씨?”
여전히 차태연은 답이 없었다. 다만 태린의 목소리가 들릴때마다 몸을 움찔거렸다.
“음… 태연아?”
태연이 답이 없자, 태린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더 친근한 말투로 말을 걸었다.
“…….그거뭐야”
태연은 혼란스러운 와중에 애좀들의 정체를 물었다.
“어…. 좀비들이 특유의 냄새나 페로몬을 뿜어내는 것 같아. 그래서 좀비 피를 묻히고 있으면 공격받을 확률이 현저히 줄어들어. 그런데 피를 묻히고 다니다 상처에 들어가면 감염 위험성이 있어. 그래서 저렇게 공격할 수 없게 만든 다음에 좀비를 주변에 데리고 다니면 공격 위험성을 줄일 수 있어. 그것 뿐이야. 이상한 줄은 알지만, 이미 세상이 이런데 더 이상할 게 있나? ”
태린은 태연의 말을 기다렸지만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무섭지 않아?”
”사람이 더 무섭지”
또 침묵
“어디서 데려온 거야?”
“서울 멀티플렉스에서”
태연은 역시 자신의 할아버지를 본 것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네가 나를 잘 못 믿는다는 건 이해해. 저 꼴을 보고 누가 제정신으로 생각하겠어. 그러니까 여기에 도끼하고 권총 놓고 갈게. 앞으로 쓸일 있으면 써. 나한테는 쓰지 말고. ”
태린은 굴다리 속으로 탄창, 70발 들이 총알, 안전장치가 된 제리코, 홀스타, 도끼가 차례로 던져넣었다.
“그리고 동생은 너 알아서 해. 너 혼자 가면 내가 키울거고, 데리러 오면 다시보내줄테니까”
‘미르!!!!’ 태연은 깜짝 놀랐다. 심장이 쥐어짜지는 것 같았다. 현재 자신의 가장 중요한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슬프고 화가 났다. 분노의 대상 때문에 지켜줘야 할 존재를 잊었다는 것이 또 화가 났다. 그리고 그 화는 다시 할아버지를 향했다.
“이태린!!!!!”
이태린이 남긴 권총을 재빨리 챙기고 나가 보니 이미 이태린은 사라지고 없었다. 태연은 남은 물품을 모두 챙긴후에 미니버스로 달려갔다.
“자장자장 우리 아기~”
태린은 놓고 온 아이가 걱정되어서 재빨리 돌아온 후에 깨어나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였다. 귀저기를 확인하고, 젖병을 물린 후에 자장가를 부르며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어린 사촌이 많았던 태린은 어깨 너머로 배운 지식이 있었기에 나름 수월하게 아이를 다시 재울 수 있었다.
아이의 얼굴을 보며 등을 토닥이던 손을 태린은 움찔하며 멈췄다. ‘차태신!’.
태린은 계속해서 태연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디서 본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아이 얼굴의 진한 갈색 눈을 보자 며칠 전 공포와 환희 그 중간쯤 되는 눈이 떠올랐다. 컨테이너에서 벌벌 떨며 나를 쳐다보던 차태신의 그 눈.
“재밌게 흘러가네…”
미소를 엷게 띄며 생각에 잠기다가 갑작스러운 인기척이 뒤에 느껴져 백미러를 보았다. 거기에는 차태연이 온몸에 열기를 내뿜으며 애좀들 앞에 서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차태연은 괴음을 지르며 할아버지의 어깨에 도끼를 박았다. 도끼는 뼈에 잘못 박혔는지 잘 뽑히지 않았고, 태연은 당황해하다가 권총을 꺼내 쏠려고 했다.
“틱…틱틱틱”
“씨바아알, 왜 안돼!!!”
안전장치가 되어있던 권총은 발사되지 않았고, 태연은 오열하며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엎어졌다. 아스팔트위로 떨어진 눈물은 비와 합쳐져서 저 멀리로 흘러갔다. 그러다가 눈물이 떨어진 곳에 웅덩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상한 느낌에 위를 올려다본 태연은 한손에는 우산을, 한손에는 미르를 들고 있는 태린과 눈이 마주쳤다.
“총 왼쪽 봐바. 스위치 같이 생긴거 있지? 그게 안전장치야. 그거 밑으로 내리면 총 쏠 수 있어”
태린은 우산을 턱으로 잡고, 태연 옆에 떨어진 제리코를 한손으로 잡고 안전장치를 해제했다. 그리고 권총 끝을 잡고는 태연에게 건내려 했다. 태연은 홀린듯이 권총을 받아들고는 할아버지의 미간에 총을 겨누었다.
“쏘든 안 쏘든 니 자유지만, 니 할아버지는 아직 쓸데가 있어. 그리고 어차피 결말은 네가 원하는 결말이야. 더 통쾌할 수도 있지. 이건 내가 보증할 수 있어.”
태연은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웃기지마. 지금 아니면 내가 복수할 수 있는 기회는 없을 수도 있어. 지금이 기회야. 언니 복수도 지금밖에 못해”
“차태신은 아직 살아있어. 어디있는지는 모르지만 멀티플랙스에 있을 때 따로 도망갔어.”
태린의 말을 들은 태연은 여전히 총을 든체로 놀란 눈으로 태린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니 할아버지. 고통받다 죽었어. 내가 그렇게 해줬어. 팔을 자르고 며칠동안 고문하다가 좀비에 물리게 했어. 내가, 내가 그랬어. 엿 같은 말들 계속 내뱉다가 살려달라고 애원하게 만들어줬어.”
결국 태연은 다시 권총을 떨궜다. 그리고 미르를 태린에게서 빼앗아 안은 후 비가 젖을까 걱정되어서 온몸으로 감쌌다.
“그 말 진짜야? 태신이 살아있는거, 그리고 할아버지….일. 그러면 왜 그런건데?”
태연은 미르를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어, 진짜야. 같이 다니던 사람들이 배신했거든. 그리고 죽이려했지. 거기서 나름 주도적이었던게 너희 엄마하고 할아버지이고. 저기 있는 좀비 중에 4마리는 모두 배신자들이야. 1명은 배신자들 때문에 죽은 혜진이라고 하는 여자애고. 그것뿐이야. 차태신 포함 몇명 빼고는 다 죽였어.”
“그렇다고 해도 내가.. 널 어떻게 믿어”
“안 믿어도 돼. 날 믿지 말고 내 행동을 보고 이상적으로 생각해. 날 어떻게 이용할까 생각하고, 네가 살기 위해서, 미르?가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해. 위험하다고 느껴지면 언제든지 도망가면 돼. 나를 배신하지만 않으면 내가 지켜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
말을 마친 태린은 담배를 꺼내 물고,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네 선택이야.”
한참을 생각하던 태연은 미르를 끌어안으며 미니버스 안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물기를 닦았다. 태린은 다시 한번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때, 할아버지의 어깨와 목 사이에 박힌 도끼가 보였다. 담배를 입술로 꼬나물고는 한손으로 도끼를 반대로 잡아 빼었다. 압력 때문인지 피가 조금 솟구쳤지만, 금새 빗물에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