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읊던 시
물들이 아직 모이지 않은 시절, 자애로운 여주인이 과거의 폐허를 뛰어넘어 새로운 도시를 세웠다.
기나긴 밤이 끝나고 해가 떠오르려 했다. 지난 일은 꿈의 잔상이 되어 결국 어둠과 함께 사라질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황금 시대였다. 더 이상 권력에 심취한 참주와 복수에 눈이 먼 야만인이 존재하지 않았다.
웅장한 악장은 더는 없었고, 오직 공평과 정의를 찬송하는 시만이 아침 바람과 함께 높은 바다 곳곳에 울려 퍼졌다….
그중 일부 주제는 오랫동안 이어지며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일례로 물의 기사의 모험은 여러 시인과 극작가의 각색을 거쳐 항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들은 백은 갑주에 맹세했다고 한다. 물의 정령과 함께 싸우고, 오염되지 않은 근원의 이슬을 지킬 것이라고.
또한 그들은 수많은 시련을 겪었으며, 결국 전설 속 순수한 물의 잔을 찾아내 물들의 여왕의 귀환을 맞이했다고 전해진다….
「수많은 호걸이 결집한 영광의 왕정, 용의 피를 뒤집어쓴 기사」
「마법사와 고탑에 갇힌 귀부인, 성물을 찾기 위한 여정」
성대한 연회와 맹세, 슬픔과 이별. 환상처럼 아름답기만 한 수많은 서사시가 「에리니에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막을 올렸다.
다만 그 동명의 영웅은 결국 그녀와 무관했고, 과거의 이름이 붙은 민요는 결국 오늘날의 꿈에 불과했다.
지난날 떠오른 생각
물들이 아직 모이지 않은 시절, 해초처럼 단명하는 부족에 부드러운 밤바람이 아름다운 달빛에 스쳤다.
아직 신왕의 율법을 듣지 못했고 높은 하늘이 정해준 궤적을 모르는 소년은 나비 날개 장식을 그녀의 귓가에 달아주었다.
과거인의 전승에 따르면 춤추는 나비는 영혼의 인도자이자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 약속과 맹세를 상징한다.
당시 아직 악사가 되지 못한 용사는 원무가 지금 이 순간을 맴돌듯 수많은 내일이 수많은 어제와 같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운명의 급류는 결국 고통을 향해 몰아 치기 마련이다. 마치 과거의 헛된 소원이 피와 불의 비명에 삼켜진 것처럼.
다시 만난 건 머나먼 도시에서였다. 서로 정복하던 많은 부족은 이미 하나로 통일된 후였다.
나그네로 위장한 젊은 악사는 무예 대회에서 후대에 칭송받는 무수한 호걸을 꺾었고
결국 우승자로서 군주를 알현해 계속되는 전란과 원한을 해결하고자 조화로운 영광에 대한 이상론을 펼쳤다.
하지만 가장 지혜로운 악사조차 정체를 밝히는 순간 그를 맞이할 것이 그저 호숫빛 칼날뿐이었다는 것을 예상치 못했다.
꾸며낸 몸이 조각나고 의식이 돌아오기 전, 악사가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자신을 품에 안고 있는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 나의 ████… 더는 본의 아닌 말을 전하기 위해 자신을 몰아세우지 마」
「그 저주받은 참주가 당신의 영혼을 더럽히고, 돌로 된 감옥에 가뒀다는 걸 알아」
「걱정 마, 나의 ████… 난 단 한 순간도 그때의 약속을 잊은 적이 없으니」
「어떤 대가가 따르더라도 당신을 그 영생의 차디찬 감옥에서 꺼내줄게」
「우리가 다시 물들의 주인의 품에 안겨 더 이상 고통으로 괴로워하지 않을 때까지」
「이 푸른빛 나비가 다시 춤추며 우리의 영혼을 물들의 피안 너머로 인도할 때까지」
지난날 사라진 맹세
물들이 아직 모이지 않은 시절, 황금의 권위는 거친 파도처럼 매서웠고 강철 군단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야만족이 굴복했다.
도금된 태평성세는 끝이 없는 듯했다. 조율사들의 확신대로 나약한 과거인은 결국 새로운 질서의 악장에 굴복했다….
본래 문명과 질서를 상징하며 인간이 대적할 수 없는 위대한 선율은 야만스럽고 황량한 북쪽 변방에서 가로막혔고
어수선하던 각 부족은 아레모리카라는 젊은 후계자의 휘하에 단결하여 제국의 취약한 변방에서 반란의 불길을 일으켰다….
이것이 바로 후대에 칭송받는 자. 나약한 육신으로 천지를 뒤덮는 황금 대권에 대항하려 했던 「물의 기사」다.
여러 부족을 이끄는 여가수는 자신을 군왕이 아닌 물들의 주인의 계시를 듣고 그 뜻을 실천하는 종이라고 칭했다.
머나먼 카피톨륨의 현자들은 그 터무니없는 말을 비웃으며 어린아이의 잠꼬대 같은 헛소리라고 했지만
그녀의 군대는 광풍처럼 서로 정복 중인 부족을 휩쓸었고, 동포들이 물들의 주인에게 맹세하도록 검으로 설득했다.
후대에 전해지는 시와 연극 속 기사의 맹세는 판본마다 상이하지만, 어떤 판본이든 두 가지 맹세만큼은 빠지지 않는다.
첫째, 에게리아 신도에게 칼을 겨누지 않는다. 둘째, 악인과 타협하지 않는다(혹은 일말의 불결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는 시들지 않는 백은의 꽃으로 맹세하니, 황금의 참주를 높은 바다에서 몰아내고 피눈물로 불의한 이들을 씻어낼 것입니다」
「과거에 그랬듯 맑은 샘물이 다시 솟아날 때까지, 순수한 물에서 온 정령과 물들의 주인이 남기신 축복을 지킬 것을 맹세합니다」
그렇게 계속되던 전쟁은 역병처럼 퍼져나가 오만방자한 황금뿐만 아니라 순수하고 무결한 백은까지 불태웠다.
분쟁을 잠재우려던 조율사의 염원은 물거품이 되었고, 원한은 성난 파도처럼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향해 덮쳐왔다.
이윽고 어렴풋한 구원의 빛이 마침내 먼 지평선에 떠올랐지만, 구원을 바라던 이들의 눈동자를 더는 비출 수 없었다….
지난날 에돌던 소리
물들이 아직 모이지 않은 시절, 과거인 부족에는 종을 울리는 전통이 있었다.
종소리는 일출과 일몰, 탄생과 죽음을 위해 울렸고
마침내 황금의 수시포가 하늘을 덮는 종말의 순간에도 파멸을 위해 울렸다.
지칠 줄 모르는 강철 군단은 이미 잊혀버린 부족을 지도에서 지워갔지만, 그들은 몰랐다.
번영한 제국이 겨우 수십 년 만에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줄은 말이다.
황금으로 장식된 궁은 하룻밤 사이에 붕괴되었고, 고귀한 음률은 야심과 배신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신왕의 비원은 막을 내렸지만, 황금의 노래는 잔향처럼 남아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누군가는 지난날의 영광을 탐닉하며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악장을 다시 연주하려 했고
누군가는 과거의 이름을 버리고 평화로운 내일을 위해 잠복해 있는 끔찍한 그림자를 사냥했다.
또 누군가는 과거의 이름만 남긴 채 희미한 전설과 함께 민요 속으로 숨어들었다….
「모든 소원을 이뤄주는 성물이라… 훗, 아무리 그 물의 전령이 한 말이라곤 해도 황당무계하구나」
「물속의 피를 씻어낼 수 없듯 죄업을 씻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사람들에게 잊힌다 한들 죄업은 여전히 죄업일 뿐이지」
「오후의 빛을 돌이킬 수 없듯 지난날을 돌이킬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지난날을 이미 잃어버렸다는 건 나조차도 알고 있지」
「……」
「하지만 정말 그런 성물이 이토록 우스운 세상에 존재하고, 모든 소원을 이뤄줄 수 있다면」
「미래를 위해 모든 눈물을 닦아주고, 높은 바다의 아이가 다시는 과거의 슬픔과 고통을 겪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부디 내가 마지막으로 헛된 일에 빠지게 해다오」
수십 년간 그녀의 귓가를 맴돌던 흐느낌과 비명, 그 죽은 자들의 환영
그녀를 위해 죽은 자와 그녀로 인해 죽은 자 모두,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홀로 산골짜기에 들어서기 직전, 지난날 밤에 울리던 종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했으니…
그것은 분명 황혼의 태양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여명의 빛이었다.
지난날 약속했던 꿈
물들이 아직 모이지 않은 시절, 과거인의 부족 내에서는 「순수한 물의 잔」에 관한 전설이 전해졌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 진귀한 잔을 실제로 본 이는 없었고, 오직 고대 정령들의 몇 마디 말만이
「원초의 물이 가득 담긴 황금잔」이 인간의 환상에서 탄생한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방증했다.
전설에 따르면 그 지극히 성스러운 물건은 어떤 끔찍한 상처도 치유할 뿐만 아니라 늙은 자를 젊어지게 하고 죽은 자를 되살리며
오직 가장 순수한 사람만이 그 영광을 목도하고, 영원한 삶과 끝없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던 고대 철학가들의 말처럼, 눈부셨던 영광의 노래는 하룻밤 사이에 막을 내렸고
문명인이라고 자부하던 수많은 이들의 비명은 영원함의 상징인 황금 도시와 함께 끝없는 파도 속에 묻혔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던 고대 철학가들의 말처럼, 예정되었던 복수의 맹세는 하룻밤 사이에 수포가 되었고
피와 눈물로 적을 씻겠다 맹세했던 여가수가 여느 날처럼 악몽에서 놀라 깨어났을 때, 시선에 닿은 피안에는 오직 성난 파도뿐이었다….
「원죄를 짊어진 높은 바다의 아이이자 크나큰 고통을 겪고 있는 형제자매여」
「그대는 이미 정해진 불행을 알고 있으며, 끝내 닥쳐올 재앙을 목도하였다」
「마음을 굳게 다지고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마라」
「그 원초의 물만 찾으면, 요구에 반드시 응하는 원초의 잔만 찾으면 된다」
「그분에게 소원을 털어놓기만 하면, 모든 죄악을 가엾이 여기실지니」
그렇게 정령과의 약속을 위해 여가수는 「순수한 물의 잔」을 찾기 위한 여정에 올랐고
그렇게 「순수한 물의 잔이 모든 소원을 이뤄준다」는 소문이 민간에 널리 퍼지게 됐다.
황혼이 짙게 드리워진 후에야 그녀는 그 「원초의 잔」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물들의 가수」를 소환해 일정 시간마다 주변에 있는 현재 필드 위 캐릭터의 HP를 회복시킨다. 치유량은 HP 최대치에 영향을 받는다. 푸리나 스킬의 "물들의 가수"가 여기 나오는 여가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