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예송논쟁이 피 안 흘리게 되는 원인들중 하나
흔히 말하는 예송논쟁은 총 2번 있는데
하나는 현종의 즉위년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현종의 마지막 해, 즉 죽기 2달 전에 있음
어쨌든 예송논쟁의 판단 주체는 현종이고,
현종은 두번 다 크게 갈등을 키우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했음
조선왕으로서는 특이한 건데 붕당이 생긴 이후의 왕들 생각하면
진작에 환국 겸 숙청 벌일만도 하는데 두번 다 그냥 조용히 마무리함.
그 전 그리고 그 후의 붕당 간의 충돌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거 생각하면
현종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이 듬
즉 조선이어서 조용히 처리했다기보다는
현종이라는 사람 요인이 더 강하게 적용한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듬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고
반박시 님말이 맞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