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군과 당군이 이미 방어요지 백강과 탄현을 통과해서
나라가 죷되게 생긴 상황이지만
군대 내놓고 황산에서 방어하자는 의자왕에게
백제 귀족들이
3년전 왕자들 전부 좌평(재상)으로 만들어놓은 다음부터 우덜 나라는 끝나버렸제
라고 비꼬기만 하는 장면
대야성을 포함한 신라의 성 40여개를 뺏어서 선덕여왕 시절 신라를 그야말로 절멸직전까지 몰고갔던 백제의 국력과 군사력이었는데
황산벌 전투에서 결사대 5천 밖에 동원할 수 없었다는 점에 확실히 의문을 느낄만도 한데
보통 위인전이나 학습만화 같은데서는
의자왕이 방탕해져서 국정을 게을리했기 때문에 군사를 모을 수 없었다 로 뭉뚱그리는데
사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에서 쫓겨나 웅진으로 천도할 때 부터 계속되어온
귀족세력과 백제 왕실의 알력다툼의 연장선
그게 왜 하필 나라가 결단나게 생긴 때에 터지냐고 묻는다면
전근대 시대에 귀족들은 나라의 안위는 대부분 안중에도 없기때문
수틀리면 당에 투항해버리면 당의 통제는 받지만 기득권은 누릴 수 있게 우대해줄 것이기 때문에
짐 코로나 시국에도 ㅈㄹ하는 국회 모당과 집회 허가 또 해주는 일 보면 있을법한 일
이래서 한반도 먹은 다른 나라들은 봉건제 버렸나 싶어지는 느낌
삼국통일 어느나라가 헀건 결과가 같은 이유
성리학 : 누구든지 작은 명분론을 무시하면 아주 죷되는거야
그래서 예식진 같은 배신자가 나왔구나
황산벌에서 나온 3년전 그때 이후로 우덜 나라는 끝나버렸제 하는게 바로 그 사건
귀족과두정이 전제군주정보다 더 나쁜 예시지
당나라 대군을 막느라 주력군이 가 있으니 당연히 신라를 막을 군대가 모자랄 밖에요.. 탄현을 안 지킨게 아니라 못지킨걸로 요즘 연구 결과가 나옵니다.
세종이 부민고소금지법을 만든것도 지방 토착세력으로부터 수령들을 보호해서 중앙행정을 공고히 하려는 목적이었으니까. 태종의 사병 혁파와 더불어 조선 초기가 지나야 중앙화가 완성됐다고 볼 수 있지.
아, 그정도였어? 조선 중앙집권 존나 겪은 후라 그런지아예 실감이 안나네
이래서 한반도 먹은 다른 나라들은 봉건제 버렸나 싶어지는 느낌
버리고 싶다고 버려지는게 아니고, 귀족 약화 시키고 왕권 강화하는 중에 생긴 진통이 나라까지 망하게 만든거지.
중앙 집권화가 잘 되었지 땅이 성주 영주께 아니라 왕이 임명한 관리꺼고 물론 왕권 ㅁㅁ나니 세금도 안들어오지만
봉건제를 버린게 아니라 신흥세력이 그 자리를 먹은거지
그래서 예식진 같은 배신자가 나왔구나
삼국통일 어느나라가 헀건 결과가 같은 이유
백제 개로왕이 중국에 보면 편지만 봐도 고구려의 내분은 멸망까지 해결을 못했음.
짐 코로나 시국에도 ㅈㄹ하는 국회 모당과 집회 허가 또 해주는 일 보면 있을법한 일
그런데 그것이...
아, 그정도였어? 조선 중앙집권 존나 겪은 후라 그런지아예 실감이 안나네
루리웹-5314108961
세종이 부민고소금지법을 만든것도 지방 토착세력으로부터 수령들을 보호해서 중앙행정을 공고히 하려는 목적이었으니까. 태종의 사병 혁파와 더불어 조선 초기가 지나야 중앙화가 완성됐다고 볼 수 있지.
민족의식이나 국가관이 생기기 전임. 당이나 신라로 귀순하면 그만.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하나의 나라에서 분열 된게 아니라 여러 부족들이 뭉처서 하나가 된거 이기 때문에 남남이라는게 당연한 시절
귀족과두정이 전제군주정보다 더 나쁜 예시지
홍차맛
성리학 : 누구든지 작은 명분론을 무시하면 아주 죷되는거야
홍차맛
이방원 : 방긋
유교와 성리학을 명분으로 삼은 주제에 성계탕부터가 조져버림
홍차맛
이방원이 초반에 기강 씨게 잡은 영향도 있는듯
홍차맛
이방원:아들아, 더러운짓은 내가 다하마.
정작 왕씨 조진건 세종도 마찬가지임 문종 되서야 왕씨문중 제사지내게 해줌
당나라 대군을 막느라 주력군이 가 있으니 당연히 신라를 막을 군대가 모자랄 밖에요.. 탄현을 안 지킨게 아니라 못지킨걸로 요즘 연구 결과가 나옵니다.
나당 연합군은 수도성으로 바로 진군하고 의자왕이 성에 틀어박혀서 농성하려는데 최측근 귀족이 의자왕 포박해서 당에 항복한게 백제 멸망. 라는 내용을 역사 스페셜에서 봤었음.
사실 저렇게 개길 수 없는 게 나름 의자왕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연개소문마냥 싹쓸이했다던데 ㄷㄷㄷ
황산벌에서 나온 3년전 그때 이후로 우덜 나라는 끝나버렸제 하는게 바로 그 사건
그리고 좌평 임자는 김유신과 뒷거래를 했고 ㄷㄷㄷ
오히려 정사에 안나오고 김유신의 후손이 쓴 김유신전에 나오는 내용인데 굳이 그게 아니었더라도 저 꼬라지가 났을것 의자왕이 한가지 망각한건 연개소문은 군사력을 장악했고 실제 전장에 나가니까 쿠데타를 하고도 허수아비 왕 세워놓고 정권 유지할 수 있었지만 국왕이 친히 정권을 갈아치우면 통한의 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을...
고려 명종이 생각나네. 드라마 무인시대에서 비슷한 이유로 무신 정권을 놓칠 수 없었다고 ㄷㄷㄷ
중앙집권 하기 싫어서 안한게 아님
그리고 저때 국가 개념은 고려 이후의 국가랑 많이 다를텐데
어.. 지금도 있는 놈들이잖아?
의자왕:(계백에게)니가 좀 거시기혀야겄다.
끄덕? 유럽유럽 봉건제 소리 들을 정도인 동네는 저게 '정상'임. 유교 관료제가 전근대 기준으론 오히려 너무 멀리 나간 거고
중앙집권은 고려도 못했음
당에 복속하거나 일본 간다란 생각이었을러나.
나라 위치도 좋았고 인구 생산력도 신라에 꿀리지 않았는데 정치란게 참..
않이 저번에 선빵칠때 공성전 포로로 잡아서 처형한 애 아빠가 왕으로 즉위했는데, 이 타이밍에 자문회에서 권세 봉신을 다 갈아버리고 아들들을 올리면 어떡함 ㅋㅋㅋㅋ
크킹만 해봐도 답 나옴 내가 공작이나 백작이면 내가 어느 나라에 속해 있던지 우리 가문의 영속이 최우선임
저주받은손을가진심해심해어
왕권 폭망하고 군웅할거 엔딩
이걸 또 단순히 귀족들이 자기 기득권때문에 협력안해서 그랬다 매국노다로 퉁치네. 당나라 군이 상륙하고 백제 멸망까지 걸린게 딱 열흘임. 귀족들이 일부러 협력안한것도 아니고 그냥 모을 시간 자체가 없었고 당장 13만이 몰려오는 탄현에 주력보내야 되니까 황산벌에 5천밖에 못보낸건데. 실제로 의자왕 끌려간 후에도 남은 지방 세력이랑 귀족들이 바로 당에 항복한것도 아니고 거진 3년을 질질 끌면서 나당연합군에 저항하다가 결국 쓸린건데 왜 왜곡을 하고 있나
왜곡이라고 따질거면 한국고대사학회에 따지셈
예나 지금이나 지역 유지랍시고 토호 세력들은 자기들 이익만 생각하는 족속들. 중앙 정부의 강력한 권력으로 짓밟아놔야 함.
그렇다고 보기에는 한중일 3개국 사료가 의자왕의 사치를 논하는걸 봐서는 아에 없는 내용은 아니였을것. 친우 쿠데타까지 해서 귀족들 다 밟아 놓고 나서 하는게 사치니깐 귀족들이 다 넘어간거지. 이걸 기득권층 까는데 선동한다고?
한국의 중앙집권제는 조선시대 태종을 거쳐서 세조때 완성을 했고(완벽한건 아니지만 삼국시대와 비교를 하면) 저 삼국시대가 부족이 모여서 나라가 된거 이기 때문에 남남이라는 개념이 계속 있었음.
그렇지 심지어 백제내부의 삼한이 소멸한걸 요즘에는 성왕시기로 보는데. 막말로 전라도쪽은 백제에 흡수된지 100년 간신히 될 시기임.
사람들이 가끔 간과 하는게 백제는 멸망 전까지 전라도에 수도를 세운적이 없었음.
웅진 사비 ... 는 의외로 충청도구나
며칠만에 순식간에 동원해서 막는건 수백년 뒤인 조선시대때도 미리 준비해야 가능했던 일임; 그것도 부산에서 서울까지 뛰어오니까 몇번 모은거지 기벌포(사천)에서 사비(부여)까지면 길어야 한주야;;;
사천이 아니라 서천임...오타 지금으로 따지면 저쪽 안산에 드랍해서 서울로 존내 뛰어오는건데 병력도 전국에 총동원해야 막을수준이니 말 다했지..
애초에 삼국시대때는 절대왕정이라 할만한 왕권이 강한 나라가 없었음 고구려는 부족연합국가가 기반이였고 백제도 알다시피 십제라고 나라 이름부터 그당시 주요신하들 머릿수로 만들었고 그나마 신라가 골품제로 한 가문이 나라를 다 해먹으니까 지금 잣대로는 굉장히 안좋은 통치법같지만 당시엔 꽤 효율적인 이 통치법으로 살아남은게 아닌가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