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고니와 로코를 용서하고 등용하는 누르하치. 만주실록 삽화)
1584년 음력 9월 누르하치는 옹골로 공격을 지휘하던 중 옹골로의 궁사 '오르고니'와 '로코'에게 저격을 당하여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다. 그는 후방지역으로 후송되어 하루동안 생사의 기로를 오가다가 다음날서야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자신의 군대에 퇴각을 명령했다.
퇴각한 누르하치는 얼마 뒤 몸을 완전히 회복하고서 다시금 옹골로를 공격하였다. 그 때의 옹골로는 이전에 비해 대단히 약해져 있었다. 지난 번에 있었던 누르하치의 공격에 의해 입었던 피해를 미처 회복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옹골로는 누르하치의 맹공을 버티지 못하고 함락되었다.
그 전투에서 오르고니와 로코는 누르하치에게 포로로 잡혔으나 누르하치는 그들이 자신을 저격한 것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니루 어전' 직책을 주어서 본인의 수하로 등용했다. 여기서 니루 어전이란 장정들로 이루어진 소규모의 집단인 '니루'의 통솔자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때에 누르하치가 오르고니와 로코에게 준 니루 어전 직책은 어느정도 급의 직책일까?
현행전례를 비롯한 후금-청계 사료들은 누르하치가 오르고니와 로코에게 직책을 수여하는 대목에 '3백명의 장정을 통솔하는' 이라는 단서를 붙여 니루 어전 직책의 수준을 설명하고 있다. 이 설명을 그대로 신뢰한다면 당시 니루 어전은 3백명의 장정을 통솔하는 직책이며 오르고니와 로코는 각각 3백명의 장정을 통솔하는 장수가 된 것이다.1
(누르하치 시기, 이론상 3백명의 장정을 통솔했던 니루 어전)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후대의 사료 편찬자들이 1601년~후금 초기 당시의 니루 어전의 직책 수준을 1584년의 니루 어전에 그대로 대입한 탓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사실 니루 어전 직책이 '3백명의 장정을 통솔하는 직책'이 된 것은 1584년으로부터 훨씬 시간이 지난 뒤인 1601년이다. 태조고황제실록을 비롯한 후금-청계 실록들은 모두 1601년에 '니루'가 '표준 장정 3백명으로 구성되는 집단'으로, 그 관리자인 니루 어전 직책이 '3백명의 장정을 통솔하는' 직책으로 개편되었음을 시사한다. 이 시기서부터 하나의 '니루'는 '이론상 3백명의 장정'들로 구성되었으며 니루의 관리자인 니루 어전들은 '이론상 3백명의 장정'들을 통솔했다. 그것은 홍타이지 치세 초중기까지 이어졌다.
사실 1584년 당시의 누르하치의 군대와 세력 규모만 봐도 이 시기에 니루 어전 직책이 '3백명의 장정을 통솔하는' 직책이 아니었음은 금방 알 수 있다. 당시 누르하치가 치기다 공격에 투입했던 군대의 숫자를 보면 기껏해야 5백명에 불과했다.2 그것은 사실상 누르하치의 전군에 가까운 숫자였다. 치기다 원정 당시 허투 알라를 지키고 있었을 방어 부대를 포함하더라도 끽해야 6백명 정도가 누르하치 휘하의 군대의 총원이었을 것이다.
군대가 5~6백명이라면 그가 통솔하는 백성의 수도 그에 비례하여 1~2천 정도에 불과할 것이 분명했는데 그 중 '장정' 6백명을 자신의 적이었던 평범한 궁사 두 명에게 맡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즉, 이 당시(1584년)의 니루 어전이 3백명의 장정들을 통솔했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당시 오르고니와 로코가 받았던 니루 어전 직책은 몇 명의 병사들을 통솔했을까? 필자는 이에 대해 '10명 정도를 지휘하는 소규모 분견대장' 정도였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고 싶다.
'니루'라는 것은 본래 여진족의 수렵 및 전투 조직 단위로서 누르하치의 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다. 이 때에 니루는 상설 조직이기보다는 임시 조직으로서 사냥이나 전투가 있을 때마다 그때그때 조직되었다. 이 때 한 니루는 표준적으로 10명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니루를 구성할 때에 그들을 이끌 대장 역시 임시로 선출해 니루 어전으로 삼았다. 이 때 선출된 니루 어전들은 큰 화살(니루niru)를 받고 그것을 징표로 하여 임시적으로 통솔권을 행사했다.
16세기 후반 시기쯤 되면 전쟁이 상당히 빈번해진지라 니루가 구성될 일 역시 그에 비례하여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누르하치는 보다 효율적인 병력운용을 위해 니루 어전들을 전시때마다 임시로 선출하지 않고 특정 인물들에게 상시적으로 역할을 맡긴 것으로 추정된다.
즉, 이전까지는 니루가 구성될 상황-예컨대 전쟁등이 일어나면 10명의 장정들로 니루를 임시로 조직, 해당 니루 구성원중 한 명을 임시로 니루 어전으로 뽑았다면 이 시기에는 니루 어전직을 상설화하여 니루가 구성될 상황이 발생하면 이미 존재하고 있던 니루 어전들에게 니루를 소집케하고 지휘를 맡기는 형태로 변화했다고 생각된다.
일종의 전문장교 육성을 꾀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새롭게 등용된 오르고니와 로코 역시도 이 경우에 해당되어 니루 어전으로 임용된 것이 아닐까 한다.
다만 니루 어전은 몰라도, 니루라는 조직 자체가 이 시기에 이미 상설조직화 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니루의 조직 규모 역시도 여전히 10명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601년 이전에 니루가 상설조직화되고 규모가 개편되었다는 사료는 존재치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오르고니와 로코는 유사시 10명의 병사를 통솔하는 지휘관 정도로 기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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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각주
1.현행전례, 태조고황제실록 1584년 음력 9월조, 만주실록 권2 1585년 음력 2월조
2.만주실록 1584년 음력 9월
칼부림 꿀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