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은 통치이념인
유교에서 벗어나서
당대의 지식인들이 새로운 길을 제시하지 못했는데
서양 근현대사는 새로운 사상과 철학이 계속 나오고
그 속에서 발전을 이루어냄
만약에 동양에서도 유교와 왕정
그 너머를 생각했던 지식인이 있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궁금하기는 함.
왕정을 욕하면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결국 해결책이 새로운 왕을 세우는 거에서 머물렀던게 안타까움.
한국과 중국은 통치이념인
유교에서 벗어나서
당대의 지식인들이 새로운 길을 제시하지 못했는데
서양 근현대사는 새로운 사상과 철학이 계속 나오고
그 속에서 발전을 이루어냄
만약에 동양에서도 유교와 왕정
그 너머를 생각했던 지식인이 있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궁금하기는 함.
왕정을 욕하면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결국 해결책이 새로운 왕을 세우는 거에서 머물렀던게 안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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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가 문제라기보단 성리학만 보고 그 외에 나머지는 사문난적으로 몰아갔으니
유교가 문제라기보단 성리학만 보고 그 외에 나머지는 사문난적으로 몰아갔으니
식민지가 남긴 내상은 언제까지 되풀이될까
당시에도 혁신적인 사상가는 있었으나 오히려 국가시스템이 빨리 잡혀버린것이 독이된것같음
혹시 홉스봄 읽고있냐
서양도 결국 종교에 있어서는 벽을 부시지 못하지 않았나 지금까지도 그런데. 종교에 근본을 둔게 오히려 다른 방면에 개방적일 수 있던 요인일테고.. 동양은 세속주의적인 유교가 근본이었고
유물론으로 종교를 부정한 마르크스조차도 결국 종교=인민의 아편 드립으로 기존사회에 타협함.
이런거 볼때마다 느끼는데 유럽의 땅덩이와 국가숫자가 동아시아 한국과 중국 합친거랑 맞먹는거라 생각하는지? 수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내전으로 수많은 사상들이 난립했는데. 그리고 유럽조차도 종교재판 등등으로 사상탄압 없는줄 아는건지.
그 수 많은 탄압 속에서도 새로운 사상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길을 갈구한 결과 미국이 만들어졌고 프랑스 헉명이 이루어졌고 왕정 복고와 공화정의 반복 속에서도 결국 현재가 되었잖아. 동양은 결국 성리학과 유교를 넘어서지 못했고 왕이 잘못되면 왕을 다시 세운다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잖아
동양의 당대 지식인들이 새로운 사상과 문물을 접할 길이 서양에 비해서 좁기는 했다만은 당대의 지식인들 모두 왕정과 성리학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거기 까지 생각이 이어지지 못한 건 너무 안타까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갈려나갔지. 프랑스 혁명도 결국 나폴레옹이라는 제정으로 돌아갔고. 애초에 시작 위치가 서로 다르며 문화도 다른데 왜 옳고 그름이 정해지는건지? 서구가 단순히 철학사상 하나만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함?
역사에서 결과를 가지고 뒤집어서 과거를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무의미한 말은 할 필요는 없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아보고 분석하는게 더 도움되고 본인 또한 그렇게 까는 동양의 사고방식으로 바라보고 있구만 뭘
현대민주주의를 제대로 작동시키게 만들고 있는 장치들을 생각하면 왕정이나 성리학의 한계를 굳이 극복해야 한다는 사고가 필연적으로 도출되어야만 하는건 아니지.
통치 이념과 철학이라는게 그만큼 중요한 거니까는. 동양에서 제자백가가 그렇게 피튀기면서 고민하고 논쟁하고 그 덕분에 동양이 서양보다 더 빠르게 중앙 집권화를 이루었고 발전을 해냈으니까는. 국가 시스템이 커다란 한계와 모순을 맞이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거기에 대한 논의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면야 할 말은 없다만
정말 동양에서는 그런거에 대해 어떻게 할줄 몰랐다고 생각한다면 본인이 제대로 역사에 대해 모른게 아닌가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성리학과 유교가 사회의 통치 이념으로 자리 잡힌 이후에 문제 없이 작동되던 사회의 통치 이념들이 전쟁과 기근, 서양 문물과의 접촉, 신분제의 근본적 모순 등 여러 복합적 원인에 의해서 한계를 드러냈지만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끝끝내 답을 못 찾은 건 사실인데 뭐. 당대 몰락한 지식인 양반 계층도 참여했던 동학 농민운동에서도 신분제를 철폐한다는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사상을 제시했지만 그 이후에 어떻게 국가를 통치할까는 결국 왕정이었으니까는.
동학농민운동 뿐만 아니라 홍경래의 난을 비롯해 근대에 일어난 조선의 민란들이 다 그래. 왕정을 무너트리고 신분제를 철폐하자. 하지만 통치는 결국 새로운 왕정이야. 당대에 일자무식 농민들만 반군에 동참한 것도 아니고 서얼을 비롯해서 신분제의 한계에 부딪힌 지식인들이나 몰락 양반들도 반군에 동참 했지만 왕정 그 이상을 바라보지를 못했으니까는. 그 때 지식인들이 사회의 한계와 모순 속에서 고민하면서 서양과 다른 제 3의 길을 제시할 수는 없었을까. 단지 그런 점이 아쉬운거 뿐이고
삭제된 댓글입니다.
라면후르륵
서양에서도 수 많은 지식인들이 지/식/인이 됐어. 그래도 혁명은 일어났고 새로운 길은 열렸어. 지식인 탄압은 동양 왕정만의 전매특허가 아니었어
말씀하신 철학과 사상은 동양에서도 이미 예전부터 있었던 개념이긴 했어요. 시민혁명도 주변 왕정국가들이 퍼지지 않게 탄압하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통치이념이 성리학과 유교로 굳혀지면서 그 이상을 제시하질 못했어. 그게 안타까울 뿐. 분명 고대와 중세까지만 해도 동양에서도 근현대 서양 보다 더 치열하게 국가의 통치에 대해 고민하고 다투었는데 어느 순간 모든게 멈춰 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