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사람들 기준으로 서로 다른 나라였음
정동행성이 설치되었으나
이는 고려가 원나라와는 별개라는 개념 하에
고려의 지위를 원나라 제후로 확정시키고
내정간섭 및 일본 공격 준비를 위한 기구였지
2차 일본 공격이 실패한 뒤에 폐지했다가
다시 설치한 적도 있고
내정간섭의 정도는 원나라 황제의
성향에 따라 매 시기 다르게 나타남
당시에 고려가 원나라와 별개였다는 인식은
역설적으로 원나라-고려 병합 주장에 의해 증명되는데
4차례에 걸친 이 사건을 입성책동이라고 함
입성책동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음
1. 정동행성의 폐지
2. 본토와 같은 직할 통치기구로서 가칭 '삼한행성' 설치
물론 이 시도는
고려가 내세운 쿠빌라이 실드
불개토풍, 세조구제에 의해 실패함
쿠빌라이 : 그래도 나힘들때 내편 들어준건 고려왕뿐이었어 (왈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