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대
사림이 삼사, 대간 진출해서
얼마나 개차반 짓을 했는지 알면
연산군이
대간들을 찍어 누르려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음
성종 16년
창경궁 통명전에 연못이 있고
이 연못에 물을 끌어다쓰는 수로가 있는데
성종이 이걸
좋은 재질인 구리 수통을 쓰려고 했음
요즘말로 하면 시제품을 다 만들어놓고
설치만 하면 되는데
대간들이
이유없이 사치품을 쓰면 안된다며
기를쓰고 반대를 함
어지간하면 왕이니까 씹어버리고
그냥 깔았을텐데
성종대 대간 권력은 왕권을 쥐고 흔들정도로
너무 비대했음
그래서 결국 성종은 "사치품"인 구리수로
대신 사치를 안하는 석재 수로를 새로 깔기위해
멀쩡한 궁궐 담장을 부숴야했고
구리수로는
궁궐 뒤뜰로 가지고가서
나라를 좀먹는 사치품이니 산산조각 내버려라
라는 명을 내리는 뒤끝을 보여줌
이런걸 보고 자란 연산이었으니
대간 언론이 곱게 보였을리가 없음
정사를 토대로 보면
연산군이 이유없이 폭정을 휘두른게 아님
문제는
그렇게 해서 잡은 왕권을
순전히 자신의 욕심 채우는데 썼으니
암군으로 불리게 된 것이고
그걸 본인도 잘 알아서 언젠가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있었고
그의 아들은 촉망받는 왕재였지만
훈구세력은 그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걸
기다려주지 않았을 뿐
결국 연산군도 사림새끼들도 조선을 망친 주범일뿐
연산때 딱히 탐관오리가 들끓었던 것도 아니고 일시적인 언문 탄압 정도랑 경기도 땅을 너무 자기땅으로 써서 경기도 땅이 부족해져 평택을 경기도에 편입해야했던 거 빼면 딱히 민생에 뭐 한것도 없음. 중종반정 일으킨 세력도 연산때 정치세력도 다 훈구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