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록! 만화 원서를 전자책으로 다 구입했습니다.
한국어판도 리디북스로 다 구매한 지 오래인데, 최신간 나오길 기다릴 수가 없었고, 마침 세트 할인을 하길래 1권부터 통째로 다 원서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비교해본 결과... 번역에 자잘한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애니판 때문에 진즉에 번역 틀린 곳이 있다는 건 알았습니다. 대표적으로 키타가 '이쿠요'란 이름을 들키고 나서 "제 풀네임은 키타 키타에요..."라고 헛소리하는 대사. 이게 "제 풀네임은 '키타 이쿠요'에요..."라고 잘못 번역됐죠. 그밖에 원작에 멀쩡히 있는 '키탕~'이 평범한 효과음으로 바뀌는 바람에 이걸 애니 오리지널로 착각하는 사람이 나온다든가.
그래도 이런 건 넘어갈 수 있습니다. 내용 이해에 큰 지장을 줄 만한 수준은 아니니까.
근데 2권 막바지에 아주 중요한 대사가 문제입니다.
애니만 보신 분들은 모르겠지만, 애니 스토리 이후에 원작에는 '포이즌 야미'라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겉보기엔 저래 보여도 엄연히 성인 여성이며 기자입니다. 실제보다 어려보이려고 애쓰는 좀 한심한 어른이지만, 음악에 만큼은 진심인 면도 있는 그런 캐릭터인데요.
아무튼 얘가 '히토리=기타 히어로'인 걸 알고, 히토리를 프로로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합니다. 그걸 들은 밴드 멤버들과 팬들이 '와~ 드디어 결속 밴드가 프로되는 거야?'라고 꺅꺅 좋아하는데... 야미가 찬물을 끼얹죠.
다음은 한국정발판 기준 대사입니다.
"결속 밴드? 무슨 소리죠? 제가 말하는 건 기타 히어로 씨 하나예요. 결속 밴드는 고교생치고 레벨은 뭐 높다고 보지만, 어디에나 있는 시모키타 밴드라는 느낌이고, ... 뭣보다 '진지함'이 안 느껴져요."
(니지카: 네...?)
"관객도 순 단골밖에 없고 홍보도 거의 안 하는 모양인데 진지하게 프로가 되려 하는 밴드로는 안 보이는데요. 기타 히어로 씨는 이미 프로로 통하니까 제대로 된 밴드에 들어가는 게 나을 거에요! 괜찮은 얘기가 없나 다방면으로 찾아 볼게요!"
제가 지적하고 싶은 건 "뭣보다 '진지함'이 안 느껴져요."라는 대사입니다. 이 대사는 스토리 상 아주 중요한 대사죠. 이 대사를 듣고 결속 밴드 멤버들은 큰 충격을 받고, 본격적으로 프로를 노리는 활동을 시작하며 야미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기로 결심하죠. 이 만화가 고등학생들의 청춘밴드물에서 본격적인 밴드물로 나아가게 되는 계기입니다. 이 만화 최대의 분기점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근데 저 대사를 하는 야미가 결속 밴드를 어떻게 생각한다고 보이나요? 저는 한국어판으로 처음 읽었을 때, 야미가 결속 밴드를 굉장히 깔아뭉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지함'이 안 느껴진다고 하면 그렇잖아요? '당신들 하나도 열심히 안 하고, 성장할 생각이라곤 전혀 없어! 그래서야 되겠어?'라고 무시한다는 느낌이죠.
봇치 더 록!/등장인물 - 나무위키 (namu.wiki)
나무위키에도 그런 식으로 해석해서 쓰여있고요.
(근데 저 각주해석은 틀렸습니다. 히토리는 공연 중 실력은 형편없고, 야미도 그걸 잘 아는 상태에서 한 말입니다 굳이 따지면 낙수효과는 히토리가 아니라 료가 주는 거겠죠.)
근데 원문을 읽어보면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아래가 그 문제의 대사 장면입니다.
「…っていうか、”ガチ”じゃないですよね。」
제가 볼 때 이 대사는 이런 의미입니다.
"아니, 그보다도 당신들은 프로가 되려고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그런 밴드는 아니잖아요?"
사실 ”ガチ”(가치)라는 단어는 일본의 신조어라 번역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진지함'이라는 뜻이 맞기는 한데, 그 뉘앙스가 좀 미묘해요.
주로 'ガチ恋'(가치코이)라는 말로 쓰이는데, 恋(코이)는 ‘사랑’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가치코이’는 '가벼운 연애감정이 아니라 진짜로 좋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걸 참고하면 좀더 이해가 쉬울 겁니다.
-그냥 사랑: 저 사람 내 취향이야! 사귀면 좋을 거 같아!
-가치코이: 난 저 사람이 아니면 안 돼! 평생 저 사람만 사랑할 거야!
이런 느낌입니다.
그러니까 야미가 '”ガチ”(가치)가 아니다'라고 한 건 '프로가 될 생각은 없고 아마추어 수준에서 적당히 즐기는 걸로 만족하는 것'이란 뜻이지, '진지하게 안 하고 대충 한다'란 수준으로 까내린 것은 아닙니다.
사실 전후 대사를 살펴보면 그 의도가 더 확실합니다. 분명 야미는 결속 밴드를 두고 "고등학생치고는 실력이 높다."라고 말했죠. '어디에나 있는 시모키타자와 밴드'라고 했지만, 시모키타자와가 인디밴드의 성지임을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낮게 평가한 말은 아닙니다. 어쨌든 자기 나이에 비해 잘한다고 말한 시점에서 '진지하지 않다'라고 평가한 건 아니죠.
게다가 말투도 다르게 번역됐습니다. 원문의 말투를 좀 직역에 가깝게 번역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니, 그보다, (당신들은) ”ガチ”가 아니지 않나요?"
이렇게 원래는 '그냥 툭 던지는' 말투에 가깝습니다. 결속 밴드를 향해 신랄하게 쏘아붙이려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죠.
제 생각에 야미는 '결속 밴드는 프로를 목적으로 하는 밴드가 아니다'라고 진심으로 믿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들, 프로가 되려면 그런 식으로는 안 돼!'라고 일침을 가하려는 의도였던 게 아니라요. 위의 표정을 봐도 그래요.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아니라, 진심으로 당황하는 표정이죠. '내가 결속 밴드를 프로로 만들라고요? 어이 없네ㅋㅋ' 같은 의도가 아니라, '네? 왜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죠?'라고 진심으로 이해를 못했다고 보입니다.
이게 제 일본어가 모자라서 잘못 해석한 것이 아닌가 걱정돼서, 일본 반응도 찾아봤습니다.
...이렇듯이 '진심으로 프로를 노리고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등의 발언을 하며 그리 높게 평가하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ぼっち・ざ・ろっく ぼざろ ぽいずん♡やみ14歳こと佐藤愛子の声優は誰? | マニアックステーション (maniac-station.com)
기타 히어로 씨의 재능이 아까우니까 놓아주라고."
라는 생각이었을 거라고 봐
"이야기의 흐름상 '프로 의식'의 이야기가 되었을 뿐이지
일부러 까려고 의식했던 것은 아님"
"얘가 한 짓은 '진심충(ガチ厨)‘이 '엔조이파(エンジョイ勢)'에게
가치관을 강요한 것일 뿐이지만, 결과적으로
좋게 끝났으니까 적당히 용서할래"
https://youtube.com/watch?v=DJdl787yico&si=EnSIkaIECMiOmarE
분명 일본인들도 저처럼 '높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냥 '프로의식'이 없다는 말이었다', '프로가 될 생각이 없는 밴드에 기타 히어로 씨를 두기는 아깝다.' 정도로 이해할 뿐, 신랄한 비판으로 이해하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대사는 이 정도로 번역해야 적당했다고 보입니다.
"애초에 '본격적'인 밴드가 아니잖아요?"
야미의 대사가 잘못 전달된 건 그 앞에도 있습니다. 처음에 결속 밴드를 대충 취재하고 라이브를 듣고 있을 때인데요.
「あーライブ観てかなきゃいけないのだるいな~」
이게 한국어판에서는
"하~ 라이브를 꼭 봐야 하나? 지루한데~"
이렇게 번역되었던데, 어째 야미가 라이브 안 보고 당장이라도 가 버릴 것 같은 뉘앙스가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원문이 살짝 비문이라 번역하기 힘들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원문의 의도는 그렇습니다.
"하~ 라이브를 꼭 봐야한다는 사실이 귀찮아~"
이렇듯이 원문에서 야미는 '싫더라도 라이브를 봐야한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글러먹은 면도 있지만 음악 관련으로는 프로의식이 투철한 성격이 드러나지요.
그밖에도 봇치가 무대 공포증이 있단 걸 알고 '...괜찮아요☆(…いいんですよ☆)'라고 하는 대사가 '...좋네요☆'라고 잘못 번역돼서 콩깍지가 업그레이드 되는 등, 자잘한 오역의 피해를 많이 봅니다.
번역은 힘든 일입니다. 다른 나라 말의 뉘앙스를 전달하는 것은 어렵고, 완전히 전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죠. 하지만 적어도 전반적인 느낌이 바뀌지는 않을 정도는 되도록 좀더 신경 써줬으면 좋겠습니다.
꺼무위키답게 저 부분은 누구인지 모를 작성자의 자의적 해석이 팍팍 들어가서 원래부터 무시하고 봤는데, 설명해주신거보니 정발판 번역 문제가 의외로 심각하군요 ㄷㄷ
정발판 번역은 일단 내기만하면 그만이니
저도 전부 읽었는데 캐해석이 완전 달라질 정도로 오역이 몰려있네요. 책 읽으면서 좀 싸가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캐가 아니었음 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