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 가비 브라운의 입체성
[악마같은건 없었어..
이 섬에는 사람이 있을 뿐이야..]
흔히 가비 브라운은 여자 에렌 예거라고 불리죠.
당돌하고 패기넘치는 성격때문인것도 있지만, 가비와 에렌의 후반까지의 행보때문에 더더욱 그런 평가가 나오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에렌은 세계의 진실을 깨달은 후에, 절망과 학살을 선택했고, 가비는 세계의 진실을 깨달은 후에, 후회와 고민, 그리고 용서를 선택했으니까요.
(사실 뭐 당한것도 없는 가비가 용서를 선택했다는 표현자체가 웃기긴합니다. 그래도 가비의 뇌속에서 벽안 인류는 악마였으니, 증오로 똘똘 뭉쳐있긴 했었죠. 주입당한 증오였지만.)
태어났을때부터 자신은 악마의 후예인 민족이라고 멸시를 당했으며, 수용구에 사는 자신들은 그나마 양심적인 후예들이며, 벽안의 사람들이야 말로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요.
진격의 거인이 대단한점은, 정말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준다는겁니다.
건담의 토미노씨는 진격의 거인이, 괴롭힘당하는 약자가 울분을 토하는것만 같다고 평가했지만, 오히려 그런점이 진격의 거인의 다면성을 심화시켜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사진은 그로스 상사인데, 인간적인 면모는 1도 찾아볼수 없는 그런 인물이죠.
벽안의 에르디아인을 멸시한다는 점은 가비와 같지만, 두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로스는 가비와는 달리 수용구의 주민들까지 멸시한다는것.
가비가 벽안의 인류에게 향하는 감정이 폭발 직전의 분노와 치를 떠는 증오라면, 그로스 상사가 벽안의 인류에게 품는 감정은 무시와 경멸, 그리고 차가운 시선이라는 거지요.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도 있죠.
가비가 불에 타는듯한 증오를 벽안 인류에게 보였다면, 대다수의 마레인들은 가비까지 포함하는 모든 에르디아인들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있습니다.
나무위키에는 이런 서술이 있더라고요.
그냥 무슨 척수액같은 용액좀 주입하고 상처를 내면 식인 거인으로 변하는 특수한 인종을, 같은 인류라고 보는것도 어렵긴 하다고요.
사실 맞는말입니다.
그럼에도 그로스 상사같은 대다수의 마레인들을 용서할수가 없는건, 설령 유미르의 백성인 에르디아인들이 조금 다른 신체를 가졌다고한들, 언어가 통하고 똑같은 희노애락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이기 때문입니다.
에렌이 처음 대다수의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거인화했을때, 모두가 대포로 에렌을 처형하려했을때 지휘관이 이렇게 말하죠.
[네녀석의 정체는 뭐냐?
사람이냐, 거인이냐?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의 언어를 써봤자 너는 거인이다!]
뭐 이런 뉘앙스로 말을 하죠.
저는 이 대사를 보았을때 이런위화감이 들더라고요.
거인으로 모습을 바꿀수 있는 인간을발견했을때, 거인쪽에서 인류측에 스파이를 보냈다고 생각할게 아니라, 거인측에도 인류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는게 정합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말이죠.
실제로 아르민이 훌륭한 경례를 하며, 거인들이 에렌을 포식의 대상으로 인식한 [팩트] 를 근거로, 에렌이 인류의 적이 아님을 논증합니다.
가비의 이 표정을 보니까 정말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까지 자신이 믿어왔던 가치관이 [박살] 난것은 물론이고, 악마라고 핍박받는 벽안 인류(=예를 들면 사샤)에게 자신이 해왔던 짓거리야 말로 진짜 악마의 행동이었으니까요.
정작 자신도 마레인에게 핍박당하면서, 그냥 자기얼굴에 침을 뱉은 꼴일뿐입니다.
자신의 한계는 정해져있으며, 명예 마레인이 되는것만이 친구들을 구할수 있는 길이며, 13년짜리 시한부가 되는걸 스스로 선택하다니..
세뇌도 이런 세뇌가 없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약간 정치적인 발언일수도 있는데, 저는 현대의 일본인들이 생각나더라고요.
독도에 가본적도, 독도를 공부해본적도, 독도가 뭔지 생각해본적도, 고민해본적도 없는주제에, 다케시마는 단 한순간도 일본의 영역이 아니었던적이 없는 일본의 고유영토이며, 한국이 외교적 결례를 범하면서까지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있으니까요.]
정작 독도를 사랑하고, 공교육에서까지 독도의 중요성을 가르치는건 한국인이라는걸 아는지 모르겠어요.
니코동에 가보니까, 한 넷우익 유저가 한국이 다케시마에 사는 일본인을 다 죽이지않았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진격의 거인이 일본의 만화라는게 정말 놀라웠습니다.
자유와 역사를 강조하는 원피스도 그렇지만, 일본의 문화적 매체는 일본의 [최면이라고 불러도 좋을] 집단 세뇌를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일본인들(=정치인까지 포함해서)의 세계인식을 보면 무슨 레이스왕에 의해 기억을 빼앗기기라도 한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만큼 현실판단 능력이 너무나도 저조합니다.
정치인들이야 자기들 지지율을 걱정하는 족속들이니, 그럴수밖에없는 분위기를 스스로 만들고 있고, 자신들의 나라가 거짓을 말할리가 없다는 [광신] 에 가까운 믿음을 가지고 있는게 현 일본의 주소가 아닐까합니다.
가비 이야기에서, 정치 이야기까지 와버렸네요.
진격의 거인이 극우사상에 심취한 만화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건 독자들 한명한명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다시 취직준비나 하러 가야겠습니다 ㅋㅅ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