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난 날아간다.
신이치로가 준 날개로, 저 넓은 하늘로.
하지만…
그 하늘은 신이치로의 하늘이 아니다.
바꿀 수 없는 사실이, 하얀 구름처럼
두둥실 짙은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다.
그 하늘을, 난 올려본다.
그 하늘을 정말로 날고 싶은 것인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알 수 없지만, 하지만…
언젠가는 날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만은 알고 있다.
알고 있다…
트루 티어즈 드라마CD
언젠가 비행할 하늘
사쿠라코: 이스루기.
오늘도 밖에서 점심먹는 거야?
히토미 : 잠깐만, 사쿠라코…
사쿠라코: 우리도 같이 먹어도 될까?
노에 : 어째서?
사쿠라코: 응? 그게… 딱히 이유는 없는데.
노에 : 이유가 없는데 어째서 나와 같이 먹고자 하는 거야?
사쿠라코: 저기… 그러니까…
남학생1: 이봐, 이스루기 따위는 내버려 둬.
남학생2: 괜히 연루됐다간 저주받는다?
남학생1: 월경 안 하게 될지도 몰라~
사쿠라코: 잠깐, 너네들…
노에 : 저기, '이스루기 따위' 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따위'의 의미를 알려줘.
난 '따위'라는 말을 들을 만한 짓은 하지 않았어.
알려줘. 그게 사실이라면 바로 대답할 수 있을 거 아냐?
남학생1: 그 다 아는 듯한 말투가 짜증난단 말이다.
남학생2: 그래, 넌 말이지, 뭐든지 네가 다 옳다고 생각하니…
사쿠라코: 너희들, 왜 괜히 트집을 잡고…
노에 : 그렇지 않아.
나는 옳지 않아.
전혀 옳지 않아!
사쿠라코: 이스루기!
남학생1: 대체 뭐냐고…
남학생2: 됐어. 밥이나 먹자.
히토미 : 그러니까 하지 말자고 했잖아.
사쿠라코가 괜히 말 걸자고 해서는…
사쿠라코: 그치만…
뒷마당으로 이어지는 길은 깊이 쌓인 눈이 얼어서
반짝반짝, 신에게 축복받은 듯한 반짝임에 가득한 그 길 앞엔
무기하 고등학교의 왕자님이 살고 있다.
노에 : 자, 땅바닥. 천국의 식사야.
오늘도 땅바닥은 눈빛으로 빛나는 왕관을 머리에 쓰고
땅바닥을 날고 있다.
하얀 날개엔 지푸라기가 붙은 채로.
사쿠라코: 저기, 이스루기.
저, 저기, 아깐 미안했어.
노에 : 뭐가?
사쿠라코: 응? 아… 그러니까, 내가 괜히 말을 걸어서 그런 소리를 들었잖아.
노에 : 별로 상관없어.
사쿠라코: 저, 저기…
히토미!
히토미: 그, 그게… 그렇지!
남자애들은 말야, 정말 유치하지?
그 나이가 되서는…
노에 : 아니, 내가 짜증난다는 건 어렸을 때부터 자주 지적받아오던 거야.
히토미: 응?
노에 :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적받으니, 분명 그건 틀림없을 거야.
다수의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어.
히토미: 그건…
노에 : 걔네들이 말한대로 하는 걸 추천할게.
괜히 나랑 얽히려고 들면 저주할 거야.
사쿠라코: 이스루기…
내게는 관계되지 않는 편이 좋다.
왜냐면, 나는…
금방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마니까.
쥰 : 어서 와, 노에.
노에 : 어, 가지다.
쥰 : 그래, 가지야.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서 받아왔어.
참깨 된장국을 만들 거야.
노에 : 참깨 된장국, 대단해.
달콤하고, 시고, 고소하고.
여러 가지 맛이 나서 좋아.
쥰 : 옷 갈아입고 와라.
노에 : 응!
오빠는 집을 떠나기로 한 후로도
예전과 전혀 다름없는 오빠로…
이 얼마나 진실된 마음이 있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에 : 안 되겠어…
진실된 상상력이 너무 빈곤해…
이런 말을 하면 떠나기로 결심한 오빠를
더욱 더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다.
그러니까 말할 수 없다, 절대로.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상처받곤 했다.
하지만, 난 끄떡 없었다.
오빠와 할머니는 내 마음을 알아줬으니까.
상냥한 눈으로, 부드러운 판단으로
진실된 상상력으로 날 봐줬으니까.
그런데…
나는, 오빠를…
쥰 : 노에, 밥 다 됐다.
노에 : 아, 응.
교문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은 미끄러지기 쉽게 되어 있어서
발 끝에 힘을 주어 천천히, 신중하게 걸어가야만 한다.
사쿠라코: 안녕, 이스루기!
노에 : 아…
사쿠라코: 교실까지 같이 가자.
저기, 사쿠라코…
이스루기, 오후의 선택수업 말인데…
노에 : 그만.
사쿠라코: 응?
노에 :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사쿠라코: 확인?
노에 : 너, 그…
나와 사이 좋아지고 싶어서 말을 거는 거… 지?
사쿠라코: 응, 그래.
노에 : 저주, 신경 안 써?
사쿠라코: 저주? 당연하잖아.
노에 : 그렇구나… 특이하구나, 너는.
사쿠라코: 정말 이스루기는 재밌어.
그런 건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잖아.
나, 집요할 정도로 친해지고자 하는 오오라를 뿜어댔는데.
히토미: 이스루기는 날카로워 보였는데, 실은 꽤나 둔하구나?
노에 : 너희들에게 불행이 찾아오기를!
사쿠라코, 히토미: 뭐?
노에 : 역시 취소! 불행이 찾아오지 않아도 괜찮아!
히토미: 기다려, 이스루기… 아, 조심해!
히토미: 아, 넘어졌다…
사쿠라코: 괜찮아, 이스루기?
노에 : 오지 마!
이 이상 접근하면 또 저주할 거야!
너희들도 넘어지도록 말이야!
히토미: 이스루기…
정말… 재밌다.
사쿠라코: 그렇지? 흥미가 좀 생겼어?
히토미: 응… 왠지 차분하지 않은 작은 동물 같아!
놀려주면서 즐기고 싶어!
사쿠라코: 히토미, 사디스트 기질 발동했구나.
두근두근거려.
그 애들, 나와 친해지고 싶다고 했어…
아니, 알고는 있었어. 하지만, 저주한다고 못을 박아뒀는데…
그 애들, 꼭 신이치로 같아.
노에 : 네 이름은?
신이치로: 나카가미 신이치로.
신이치로: 나카가미… 신이치로…
신이치로에게도 저주를 걸었는데
그래도 나와 있어주고자 했다.
진실된 상상력으로 생각해보면, 난 신이치로에게 접근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하면 오빠가…
여러 사람들이 상처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노에 : 땅바닥, 땅바닥, 밥…
닭장 앞에 있던, 먼저 온 손님의 그림자.
나도 모르게 건물의 그림자에 몸을 숨겼다.
신이치로: 자, 땅바닥. 천국의 식사다.
신이치로가 가끔 땅바닥에게 천국의 식사를 주고 있는 것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말은 걸지 않는다.
분명 신이치로도 내가 이곳에 먼저 와 있을 때는
그렇게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신이치로: 땅바닥, 오늘은 잘 먹는구나.
신이치로가 땅바닥의 이름을 부른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아주 약간 바보같은 생각을 했다.
신이치로: 땅바닥!
내가 땅바닥이라는 이름이었다면 하는 생각.
신이치로: 진정하라니까.
역시 신이치로의 목소리는 멋지다고 생각한다.
선택받은 자의, 선택받은 음색이라고 생각한다.
신이치로: 저기 말이야, 땅바닥.
오늘 아침, 노에가 같은 반 여자애들이랑 얘기하고 있었어.
노에 : 에?
신이치로: 그 느낌…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지?
그렇지, 땅바닥?
노에 :…….
신이치로: 슬슬 가볼까?
땅바닥, 그럼 안녕.
신이치로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달려 나갔다.
그렇다, 나는 신이치로의 등만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분명…
신이치로…
신이치로의 눈은 언제나같이, 매우 부드러운 색을 띄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신이치로와 걸었던 바다.
신이치로와 바라봤던 하늘.
상처받았다.
나는 분명히 상처받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기뻤다.
행복했다.
그래…
상처받는 것도, 상처를 주는 것도 관여치 않고 신이치로에게 다가갔기에
나는 날개를 얻었다.
그런데, 날개를 장난으로라도 한 번 사용해보지 않았다.
날아가버리면, 점점 신이치로와 멀어지게 되니까.
늦겨울의 바람이, 나를 내몬다.
노에 :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날 몰아붙이지 마!
날아갈 거야! 굳이 말 안 해도, 나는…
그래, 난…
날 거야!
달려가는 내 등을, 마침 바닷바람이 밀어주는 형태가 되어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발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서…
노에 : 재미있다!
힘차게 나아간다. 바닷바람에 떠밀려서.
떠밀려서, 탁탁탁.
힘차게, 탁탁탁.
그래, 난 달린다.
이대로, 힘차게, 가속해가면서.
쥰 : 좋아, 다 끝났어.
남은 건…
노에 : 오빠!
쥰 : 노에. 학교에서 오는 거야?
노에 : 나, 말하고 싶었던 게… 있어.
쥰 : 진정해, 숨좀 고르고.
노에 : 잠깐 기다려줘.
노에 : 가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토쿄에는 가지 말아줘, 오빠.
쥰 : …….
쥰 : 고맙다, 노에.
그렇게 말해주니 기쁘다.
정말로 기뻐.
노에 : 오빠…
쥰 : 이걸로 난, 가슴을 펴고 토쿄에 갈 수 있게 되었어.
노에 : 오빠…
응, 다녀와.
쥰 : 전화 자주 할게.
노에 : 편지도 받고 싶어. 사진도 보내줘.
뭘 먹고 지내는지, 식사 사진 찍어서 보내줘.
쥰 : 그럼 노에도 사진 보내라, 식사 하는 게 걱정이니까.
어차피 좋아하는 것만 먹을 생각이겠지만.
노에 : 그렇지 않아. 당근 껍질도 꼭 무쳐서 먹을게.
쥰 : 기특해.
노에 : 응, 오빠도 기특해.
쥰 : 기특한 오누이구나.
노에 : 응!
오빠는 가장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말에
고맙다고 답해주었다.
그 미소는, 그저 상상만 했었다면
분명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 난 알고 있었다.
신이치로에게 날개를 받았던 그 날부터, 아주 오래 전부터 깨달았었다.
진실된 상상력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을…
상처주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으면 날 수 없다는 것을…
노에 : 사쿠라코… 히토미…
사쿠라코… 히토미…
사쿠라…
사쿠라코: 일찍 왔네, 이스루기.
뭐 하고 있어?
노에 : 저기, 그게…
사쿠라코: 응?
노에 : 노에라고 불러도 돼.
사쿠라코: 뭐라고?
노에 : 그러니까, 노에라고 불러도 괜찮아.
사쿠라코: 부르다니… 지금?
노에 : 응.
사쿠라코: 노에.
사쿠라코: 노에. 자, 히토미도.
히토미: 노에.
여자애들은, 차례로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신이치로의 목소리와는 다른
폭신하고 따뜻한 목소리.
그것이 왠지 간지러워서…
노에 : 무슨 일인데?
사쿠라코: 그게… 부르라고 해서 불렀을 뿐이야.
사쿠라코: 저기, 내 이름도 불러줘.
아… 내 이름을 모르나?
난 말이지…
노에 : 사쿠라코.
히토미: 그럼 나는?
노에 : 히토미.
사쿠라코: 우리들의 이름, 알고 있었구나.
노에 : 알고 있어. 반 애들의 이름 전부.
히토미: 말도 안 돼, 풀 네임을?
노에 : 응. 암기하는 건 자신이 있으니까.
히토미: 대단하다, 노에!
히토미: 미안,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었네.
사쿠라코: 너 말이지, 아무리 동물 같다고 해도…
노에 : 괜찮아.
히토미: 응?
노에 : 좀 더 쓰다듬어도 괜찮아.
히토미: 그럼 그 말에 부응해서…
쓰윽쓰윽.
노에 : 쓰윽…쓰윽…
나는 곧 날아간다.
그 하늘은, 신이치로의 하늘이 아니다.
바꿀 수 없는 사실이 조금, 지금도 가슴에서 따끔거리지만
하지만, 그 하늘도 분명 오늘처럼
푸르고, 높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고 있을 것이다.
상처받아도, 날아보고 싶다고 느낀다.
언젠가, 난 날아간다. 신이치로가 준 날개로, 저 넓은 하늘로. 하지만… 그 하늘은 신이치로의 하늘이 아니다. 바꿀 수 없는 사실이, 하얀 구름처럼 두둥실 짙은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다. 그 하늘을, 난 올려본다. 그 하늘을 정말로 날고 싶은 것인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알 수 없지만, 하지만… 언젠가는 날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만은 알고 있다. 알고 있다… 트루 티어즈 드라마CD 언젠가 비행할 하늘 사쿠라코: 이스루기. 오늘도 밖에서 점심먹는 거야? 히토미 : 잠깐만, 사쿠라코… 사쿠라코: 우리도 같이 먹어도 될까? 노에 : 어째서? 사쿠라코: 응? 그게… 딱히 이유는 없는데. 노에 : 이유가 없는데 어째서 나와 같이 먹고자 하는 거야? 사쿠라코: 저기… 그러니까… 남학생1: 이봐, 이스루기 따위는 내버려 둬. 남학생2: 괜히 연루됐다간 저주받는다? 남학생1: 월경 안 하게 될지도 몰라~ 사쿠라코: 잠깐, 너네들… 노에 : 저기, '이스루기 따위' 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따위'의 의미를 알려줘. 난 '따위'라는 말을 들을 만한 짓은 하지 않았어. 알려줘. 그게 사실이라면 바로 대답할 수 있을 거 아냐? 남학생1: 그 다 아는 듯한 말투가 짜증난단 말이다. 남학생2: 그래, 넌 말이지, 뭐든지 네가 다 옳다고 생각하니… 사쿠라코: 너희들, 왜 괜히 트집을 잡고… 노에 : 그렇지 않아. 나는 옳지 않아. 전혀 옳지 않아! 사쿠라코: 이스루기! 남학생1: 대체 뭐냐고… 남학생2: 됐어. 밥이나 먹자. 히토미 : 그러니까 하지 말자고 했잖아. 사쿠라코가 괜히 말 걸자고 해서는… 사쿠라코: 그치만… 뒷마당으로 이어지는 길은 깊이 쌓인 눈이 얼어서 반짝반짝, 신에게 축복받은 듯한 반짝임에 가득한 그 길 앞엔 무기하 고등학교의 왕자님이 살고 있다. 노에 : 자, 땅바닥. 천국의 식사야. 오늘도 땅바닥은 눈빛으로 빛나는 왕관을 머리에 쓰고 땅바닥을 날고 있다. 하얀 날개엔 지푸라기가 붙은 채로. 사쿠라코: 저기, 이스루기. 저, 저기, 아깐 미안했어. 노에 : 뭐가? 사쿠라코: 응? 아… 그러니까, 내가 괜히 말을 걸어서 그런 소리를 들었잖아. 노에 : 별로 상관없어. 사쿠라코: 저, 저기… 히토미! 히토미: 그, 그게… 그렇지! 남자애들은 말야, 정말 유치하지? 그 나이가 되서는… 노에 : 아니, 내가 짜증난다는 건 어렸을 때부터 자주 지적받아오던 거야. 히토미: 응? 노에 :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적받으니, 분명 그건 틀림없을 거야. 다수의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어. 히토미: 그건… 노에 : 걔네들이 말한대로 하는 걸 추천할게. 괜히 나랑 얽히려고 들면 저주할 거야. 사쿠라코: 이스루기… 내게는 관계되지 않는 편이 좋다. 왜냐면, 나는… 금방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마니까. 쥰 : 어서 와, 노에. 노에 : 어, 가지다. 쥰 : 그래, 가지야.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서 받아왔어. 참깨 된장국을 만들 거야. 노에 : 참깨 된장국, 대단해. 달콤하고, 시고, 고소하고. 여러 가지 맛이 나서 좋아. 쥰 : 옷 갈아입고 와라. 노에 : 응! 오빠는 집을 떠나기로 한 후로도 예전과 전혀 다름없는 오빠로… 이 얼마나 진실된 마음이 있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에 : 안 되겠어… 진실된 상상력이 너무 빈곤해… 이런 말을 하면 떠나기로 결심한 오빠를 더욱 더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다. 그러니까 말할 수 없다, 절대로.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상처받곤 했다. 하지만, 난 끄떡 없었다. 오빠와 할머니는 내 마음을 알아줬으니까. 상냥한 눈으로, 부드러운 판단으로 진실된 상상력으로 날 봐줬으니까. 그런데… 나는, 오빠를… 쥰 : 노에, 밥 다 됐다. 노에 : 아, 응. 교문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은 미끄러지기 쉽게 되어 있어서 발 끝에 힘을 주어 천천히, 신중하게 걸어가야만 한다. 사쿠라코: 안녕, 이스루기! 노에 : 아… 사쿠라코: 교실까지 같이 가자. 저기, 사쿠라코… 이스루기, 오후의 선택수업 말인데… 노에 : 그만. 사쿠라코: 응? 노에 :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사쿠라코: 확인? 노에 : 너, 그… 나와 사이 좋아지고 싶어서 말을 거는 거… 지? 사쿠라코: 응, 그래. 노에 : 저주, 신경 안 써? 사쿠라코: 저주? 당연하잖아. 노에 : 그렇구나… 특이하구나, 너는. 사쿠라코: 정말 이스루기는 재밌어. 그런 건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잖아. 나, 집요할 정도로 친해지고자 하는 오오라를 뿜어댔는데. 히토미: 이스루기는 날카로워 보였는데, 실은 꽤나 둔하구나? 노에 : 너희들에게 불행이 찾아오기를! 사쿠라코, 히토미: 뭐? 노에 : 역시 취소! 불행이 찾아오지 않아도 괜찮아! 히토미: 기다려, 이스루기… 아, 조심해! 히토미: 아, 넘어졌다… 사쿠라코: 괜찮아, 이스루기? 노에 : 오지 마! 이 이상 접근하면 또 저주할 거야! 너희들도 넘어지도록 말이야! 히토미: 이스루기… 정말… 재밌다. 사쿠라코: 그렇지? 흥미가 좀 생겼어? 히토미: 응… 왠지 차분하지 않은 작은 동물 같아! 놀려주면서 즐기고 싶어! 사쿠라코: 히토미, 사디스트 기질 발동했구나. 두근두근거려. 그 애들, 나와 친해지고 싶다고 했어… 아니, 알고는 있었어. 하지만, 저주한다고 못을 박아뒀는데… 그 애들, 꼭 신이치로 같아. 노에 : 네 이름은? 신이치로: 나카가미 신이치로. 신이치로: 나카가미… 신이치로… 신이치로에게도 저주를 걸었는데 그래도 나와 있어주고자 했다. 진실된 상상력으로 생각해보면, 난 신이치로에게 접근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하면 오빠가… 여러 사람들이 상처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노에 : 땅바닥, 땅바닥, 밥… 닭장 앞에 있던, 먼저 온 손님의 그림자. 나도 모르게 건물의 그림자에 몸을 숨겼다. 신이치로: 자, 땅바닥. 천국의 식사다. 신이치로가 가끔 땅바닥에게 천국의 식사를 주고 있는 것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말은 걸지 않는다. 분명 신이치로도 내가 이곳에 먼저 와 있을 때는 그렇게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신이치로: 땅바닥, 오늘은 잘 먹는구나. 신이치로가 땅바닥의 이름을 부른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아주 약간 바보같은 생각을 했다. 신이치로: 땅바닥! 내가 땅바닥이라는 이름이었다면 하는 생각. 신이치로: 진정하라니까. 역시 신이치로의 목소리는 멋지다고 생각한다. 선택받은 자의, 선택받은 음색이라고 생각한다. 신이치로: 저기 말이야, 땅바닥. 오늘 아침, 노에가 같은 반 여자애들이랑 얘기하고 있었어. 노에 : 에? 신이치로: 그 느낌…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지? 그렇지, 땅바닥? 노에 :……. 신이치로: 슬슬 가볼까? 땅바닥, 그럼 안녕. 신이치로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달려 나갔다. 그렇다, 나는 신이치로의 등만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분명… 신이치로… 신이치로의 눈은 언제나같이, 매우 부드러운 색을 띄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신이치로와 걸었던 바다. 신이치로와 바라봤던 하늘. 상처받았다. 나는 분명히 상처받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기뻤다. 행복했다. 그래… 상처받는 것도, 상처를 주는 것도 관여치 않고 신이치로에게 다가갔기에 나는 날개를 얻었다. 그런데, 날개를 장난으로라도 한 번 사용해보지 않았다. 날아가버리면, 점점 신이치로와 멀어지게 되니까. 늦겨울의 바람이, 나를 내몬다. 노에 :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날 몰아붙이지 마! 날아갈 거야! 굳이 말 안 해도, 나는… 그래, 난… 날 거야! 달려가는 내 등을, 마침 바닷바람이 밀어주는 형태가 되어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발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서… 노에 : 재미있다! 힘차게 나아간다. 바닷바람에 떠밀려서. 떠밀려서, 탁탁탁. 힘차게, 탁탁탁. 그래, 난 달린다. 이대로, 힘차게, 가속해가면서. 쥰 : 좋아, 다 끝났어. 남은 건… 노에 : 오빠! 쥰 : 노에. 학교에서 오는 거야? 노에 : 나, 말하고 싶었던 게… 있어. 쥰 : 진정해, 숨좀 고르고. 노에 : 잠깐 기다려줘. 노에 : 가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토쿄에는 가지 말아줘, 오빠. 쥰 : ……. 쥰 : 고맙다, 노에. 그렇게 말해주니 기쁘다. 정말로 기뻐. 노에 : 오빠… 쥰 : 이걸로 난, 가슴을 펴고 토쿄에 갈 수 있게 되었어. 노에 : 오빠… 응, 다녀와. 쥰 : 전화 자주 할게. 노에 : 편지도 받고 싶어. 사진도 보내줘. 뭘 먹고 지내는지, 식사 사진 찍어서 보내줘. 쥰 : 그럼 노에도 사진 보내라, 식사 하는 게 걱정이니까. 어차피 좋아하는 것만 먹을 생각이겠지만. 노에 : 그렇지 않아. 당근 껍질도 꼭 무쳐서 먹을게. 쥰 : 기특해. 노에 : 응, 오빠도 기특해. 쥰 : 기특한 오누이구나. 노에 : 응! 오빠는 가장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말에 고맙다고 답해주었다. 그 미소는, 그저 상상만 했었다면 분명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 난 알고 있었다. 신이치로에게 날개를 받았던 그 날부터, 아주 오래 전부터 깨달았었다. 진실된 상상력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을… 상처주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으면 날 수 없다는 것을… 노에 : 사쿠라코… 히토미… 사쿠라코… 히토미… 사쿠라… 사쿠라코: 일찍 왔네, 이스루기. 뭐 하고 있어? 노에 : 저기, 그게… 사쿠라코: 응? 노에 : 노에라고 불러도 돼. 사쿠라코: 뭐라고? 노에 : 그러니까, 노에라고 불러도 괜찮아. 사쿠라코: 부르다니… 지금? 노에 : 응. 사쿠라코: 노에. 사쿠라코: 노에. 자, 히토미도. 히토미: 노에. 여자애들은, 차례로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신이치로의 목소리와는 다른 폭신하고 따뜻한 목소리. 그것이 왠지 간지러워서… 노에 : 무슨 일인데? 사쿠라코: 그게… 부르라고 해서 불렀을 뿐이야. 사쿠라코: 저기, 내 이름도 불러줘. 아… 내 이름을 모르나? 난 말이지… 노에 : 사쿠라코. 히토미: 그럼 나는? 노에 : 히토미. 사쿠라코: 우리들의 이름, 알고 있었구나. 노에 : 알고 있어. 반 애들의 이름 전부. 히토미: 말도 안 돼, 풀 네임을? 노에 : 응. 암기하는 건 자신이 있으니까. 히토미: 대단하다, 노에! 히토미: 미안,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었네. 사쿠라코: 너 말이지, 아무리 동물 같다고 해도… 노에 : 괜찮아. 히토미: 응? 노에 : 좀 더 쓰다듬어도 괜찮아. 히토미: 그럼 그 말에 부응해서… 쓰윽쓰윽. 노에 : 쓰윽…쓰윽… 나는 곧 날아간다. 그 하늘은, 신이치로의 하늘이 아니다. 바꿀 수 없는 사실이 조금, 지금도 가슴에서 따끔거리지만 하지만, 그 하늘도 분명 오늘처럼 푸르고, 높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고 있을 것이다. 상처받아도, 날아보고 싶다고 느낀다.
셋 다 해피 엔딩이라 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