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거처가 불길에 휩싸여 연기를 내뿜을 때까지도 백귀야행의 오니, 어느 누구도 반 오니 연합의 기습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화공을 감행해 올 때까지 그들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과 가장 방심하고 있을 틈을 노린 것도, 오니 백귀야행 내부의 사정을 잘 알지 모르면 불가능했을 일.
반 오니 연합의 요괴들이 우렁찬 함성과 함께 물밀듯 밀러든다. 산 중턱에 분지형태로 자리 잡은 오니들의 거주지를 에워싸듯 포위하며 진격해온다. 그 수많은 요괴들의 발소리와 외침에도 오니들은 소란 정도로 여길 뿐. 위기감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이것(요괴들의 기습)이 그들에게 있어 아무런 위협조차 되지 않는 것인지. 누구하나 긴장된 기색을 띠지 않았다.
이윽고, 선발대로 들이닥친 요괴들이 오니들과 맞닥뜨렸다.
"상대가 오니라 해도 이 정도의 수를 어찌하지 못하겠지!"
"케헤헤. 누가 먼저 오니의 수급을 얻어갈지 내기하지 않겠어?"
"좋지. 난 먼저 저 예쁘장한 계집애의 목을 얻고 싶군."
수라는 폭력을 앞세운 요괴들은 기고만장했다. 눈앞에 그 폭력의 화신이라는 오니가 있는데도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것처럼 열을 올리며 경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그 저능한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실이 있었다.
"귀엽지도 않은 버러지가 잘도 주절거리네."
자신을 노리는 요괴들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는 코하루에게서 근처에만 있어도 동상에 걸릴 듯한 냉기가 새어 나온다. 응? 화공으로 인해 후끈 달아올라 있어야할 공기가 갑자기 서늘해지기 시작하자, 요괴들의 입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들 중 위험을 감지한 자는 극소수였다. 대다수는 여전히 숫자로 어떻게 해 보려는 요괴들 뿐. 갑자기 불어 닥치는 냉기에도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고집한, 본능도 무시했던 우둔의 말로는 죽음. 순식간에 몸 안의 체온을 전부 빼앗겨 차갑게 얼어 죽는 동사(凍死)였다.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자들도 예외 없었다. 위험을 감지하고 몸을 돌려 달아나던 그들은 달음박질하던 발부터 얼어붙는 바람에 무릎 아래가 동파되어 땅바닥을 뒹굴었고,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는 사이 얼음조각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얼어 죽은 요괴가 서른다섯. 순식간에 그만한 수의 요괴들이 죽은 것이다. 호기롭게 달려들던 요괴들의 움직임이 늦춰졌다. 그들은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우둔했던 서른다섯 명의 요괴가 간과하지 못했던 것.
그것은 오니란 숫자만으로 어떻게 해 볼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
처소 안에 머물고 있던 오니 중 몇몇은 화공에 이은 인해전술로 밀어 닥치는 요괴들의 공격에도 잠을 청하는 무신경의 극치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집이 불에 타고 있는데도 애인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데에 열중인 자가 있었다.
후자가 텐바쿠다.
그는 이부자리 위에서 자신의 애인과 한창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중이었다. 열띤 숨소리와 함께 그의 허리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의 밑에 깔린 채 흉악한 불방망이를 몸속으로 받아들인 자는 텐바쿠 정도는 아니지만, 오니다운 강건한 육체를 지닌 그러면서 비교적 순박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였다.
"흐읏.. 아아-!"
불방망이가 내장을 사정없이 휘저을 때마다 눈썹을 늘어뜨린 그의 입에서 새된 신음이 새어 나온다. 텐바쿠는 그런 그가 너무도 귀엽게 느껴져서 신음이 쉴 새 없이 새어나오는 입을 자신의 입으로 막았다.
혀와 혀가 얽히고, 불이 나 달아오른 공기가 더욱 후끈하게 끓어올랐다. 두 눈 뜨고는 봐 줄 수 없는 추잡한 육체관계. 열기로 인해 머리가 어떻게 될 것만 같은 그 공간에 약간이지만 시원한 바람이 몰아 닥쳤다.
"이 썩을 ㅁㅁ귀새끼! 오늘이 네 제삿날인 줄 알아라!"
그리고 그 바람과 함께 들어온 자는 농밀하면서도 격렬한 둘의 육체관계를 방해하려는 불청객이었다. 산통을 깨는 소리에 텐바쿠는 불만스런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뭐꼬?"
시선이 마주치자, 압박을 느낀 불청객은 주눅이 든 것처럼 아까 같은 기백을 보이지 못하고 주춤했다. 그러나 이내, 목청을 높여 분노를 토해냈다.
"이 얼굴을 잊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 잘 봐라. 네놈에게 ㅁㅁ당했던 구힌이다!"
"아아-! 니가. 그런데, 뭐하려 찾아온 기고? 혹시... ?"
그를 알아본 텐바쿠의 얼굴이 반가운 기색을 띤다.
"좋았던 거네. 그때는 싫다고 울더니만... 요런 내숭쟁이~!"
끈적이는 눈으로 구힌을 훑어보며 짓는 미소엔 질척한 음흉함이 드려나 있었다. 악몽 같던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 구힌은 질색하며 뒷걸음질 쳤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그를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그 더러운 주둥아리를 두 번 다시 놀리지 못하도록 갈기갈기 찢어 발겨주마!"
그가 텐바쿠에 대한 공포에도 물러서지 않는 것은. 이곳에 그 혼자만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등 뒤로 열 명이 넘는 요괴들이 당장이라도 공격할 기세로 서있었다. 전부 그의 상관인 카라스텐구였다.
텐바쿠는 그의 그런 분노조차 귀엽다는 듯 피식, 싱겁게 웃었다.
"일단, 네 뒤에 있는 놈들이 방해되니까."
말을 끝내기 무섭게 텐바쿠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아니, 그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던 애인도 같이. 그것도 서로 끌어안은 형태로 솟아 오른 것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천장까지 솟아오른 텐바쿠들에게로 향해졌다.
"구경만 하지 말고, 어서 저놈을 죽이십시오!"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던 카라스텐구를 질타하며 공격을 재촉하는 구힌. 카라스텐구들은 그의 말에 정신을 차려 잠시나마 느슨해졌던 경계를 단단히 굳혔지만, 이미 늦었다. 서로 볼을 맞대며 바라보는 그윽한 시선에 텐구들은 'ㅆㅂ!'하고 형용할 수 없는 더러움을 느끼며 단말마의 욕설을 외쳤고, 어느새 눈앞까지 당도한 그의 주먹에 의해 머리가 터져나갔다. 순식간에 카라스텐구 한명을 죽인 주먹은 애인과 맞잡은 깍지 손. 흡사, 2인 1각으로 춤을 추듯 호흡을 맞추며 못 볼 것 봤다며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카라스텐구들을 하나 둘 씩 죽여 나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카라스텐구는 절망하며 '저 변태새끼 손에 죽을 바에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심정으로 자결하려 했지만, 결국 미수에 그쳐 텐바쿠와 애인의 사이에 끼여 후끈하게 달아오른 사내의 가슴으로 축축한 땀의 감촉을 맛보며 죽어갔다.
그렇게 최악의 형태로 죽음을 맞이한 카라스텐구를 바라보는 구힌의 눈은 이미 죽은 듯 초점을 잃어 있었다. 설마, 이리도 간단히. 그것도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들 정도로 저질적인 공격에 유린 당해 죽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방해꾼은 인자 없으니까, 셋이서 천천히 시간 들여가며 즐겨보자앙~!"
어떻게 할지, 몸은 기억하고 있지? 하면서 애인과 함께 발을 맞춰가며 사뿐히 다가오는 텐바쿠. 구힌은 이전 텐바쿠에게 당해 닫히지 않게 된 엉덩이가 벌름거리는 것을 느끼며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