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맥 클라우드 만화작법서를 번역하신 김낙호 만화연구가가 [만화의 창작]이라는 책 말미에 해석을 달았는데 굉장히 유익한 정보라 연출과 관련된 부부을 일부 옮겨적습니다.
내용에 동의하든 안하든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글이니까 지망생들은 꼭 읽어보길 바라고 문제되면 자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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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머릿속에는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지만, 독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여줘야 이야기의 내용과 감수성이 가장 온전하게 전달될 것인가에 대한 의식적인 고민이 없다면, 종종 작가는 각 선택의 순간에 그저 가장 '익숙하게 멋진' 것을 선택하는 폐단에 빠질 수 있다. 익숙함에 대한 향유방식이 장르라는 단위로 움직인다는 점을 생각할 때, 연출의 장르적 도식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실 애초에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장르적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면 연출의 방향 역시 그렇게 간다고 해서 문제 될 일은 없지만, 그 반대로 도식화된 연출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전달하려는 이야기 자체가 안정적 틀 안에서만 안주하게 된다면 큰 문제다.
'대세'라는 말이 흔하게 사용되곤 할 정도로 특정 성공작의 방식에 대한 쏠림현상이 강한 한국의 경우, 이런 부분은 특히 유의해야 할 지점이다. 이야기의 중요성과 큰 관계없이 단지 장르적 도식에 따라서 칸을 깨고 배치되는 순정만화의 전신상, 이야기상의 감정변화가 담기지 않고 그저 일괄적으로 '멋진 포즈와 각도'로 일관하는 소년만화의 액션장면, 연재만화에서 독서의 흐름보다는 작가 자신의 원고마감의 흐름을 따르는 애매한 이야기 단위 잘라내기 등 크고 작은 세부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지면이 협소하고 (큰 돈이 되는) 취향이 한정적일수록 장르적으로 도식화된 연출에 안주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질 수 있기에, 장르적 요구보다 이야기 자체를 연출의 핵심기준으로 삼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한국에서 어느덧 이미 가장 중요한 주류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은 스크롤 방식의 온라인 장편만화의 경우 이런 지점들이 극명하다. 페이지 방식이 아니라 무한캔버스 방식으로 만화를 전개할 때 취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거의 예외 없이 똑같은 세로 스크롤의 조작방식을 취하는 것은 물론, 에세이에 가까운 내용의 만화는 칸 경계선 없는 자잘한 칸으로, 좀 더 진지한 이야기는 엄격하게 하나씩 전개되는 닫힌 가로 칸으로 가는 방식에서벗어나는 것을 발견하기 어렵다. 태동기에는 한국 웹만화의 연출방식 역시 여러 실험이 있었지만, 포털사이트를 매개로한 몇몇 초창기 대중적 성공작들이 나오자 다양한 발전가능성들은 급속하게 가지치기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칸 간 연출의 대담한 실험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져, 단지 영화의 스토리 보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양새가 대다수를 이루었다. 그렇다고 해서, 칸 속 연출이 비교적 헐렁하고 칸 간 흐름의 긴박감을 극대화하는 종이잡지용 소년만화의 연출을, 온라인의 스크롤 방식에서 개별 칸만 뜯어내어 세로로 배치함으로서 연출의 묘미를 잃어버리는 등의 사례가 빈번하다. 그림의 선택 역시 단지 컬러로 표현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컬러에 대한 집착을 한다거나, 이야기에 가장 합당한 그림체를 수련하고 구사하기보다 우선 아무 그림으로나 데뷔부터 하고 보자는 식의 조급함의 패턴도 나타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최악의 경우는, 시야의 단위를 능동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잃는 것이다. 만화의 독서는 개별적인 칸이나 요소들을 읽는 것과 함께, 한 번에 시야에 들어오는 단위가 중요하다(halim이라는 필명의 만화인은 이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한바닥'이라는 용어를 제안한 바 있다). 책 만화의 펼쳐진 두 페이지, 신문 만화의 전체 펼침 면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스크롤 방식의 웹 만화는 그 경계선이 모호하기 마련이다. 만화에서 연출 효과의 상당 부분은 배치된 시각적 요소들이 연속되면 만들어내는 유사성과 대비의 리듬감에서 발생하는데, 음악으로 치자면 각 마디에 해당할 그 호흡의 단위가 흐려지는 셈이다. 이 조건에 어떤 식으로 대체해야할지, 한가지로 정해진 답은 없다. 어떤 이는 공간낭비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중간에 도저히 하나의 단위로 간주할 수 없을 정도의 간격을 만들어 넣기도 하고, 다른 이는 급격한 내용 전환으로 심적인 경계선을 만들기도 한다. 다만, 중요한 점은 현재 대다수의 웹만화들이 쉽게 그렇게 하듯 그냥 굴복하고 리듬감을 희생하여 스토리보드만 죽 나열하는 것 보다. 적극적으로 박자를 맺어가며 리듬감을 만들어내도록 방법을 궁리하고 각 단계를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매체 간 이식이 이루어질 경우, 연출의 이식 문제 역시 중요하다. 특히 스크롤 방식 웹 만화가 주류하되어 있는 한국에서, 해당 작품이 인쇄물 출간을 위해서 종이 페이지 연출로 이식될 때 어떻게 할 것인지는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각 페이지를 2단으로 나누어 길게 늘여 놓을것인가? 아예 칸 단위로 분해해서 다시 페이지용으로 연출을 처음부터 새로 구축할 것인가? 그 경우 기존의 모든 칸을 다 활용해야 할까, 아니면 '순간의 선택'부터 다시 해야 할까? 혹은 반대의 경우라도 정도는 덜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마찬가지다.
본능으로 자동화되어 있는 경우 혹은 머리로 일일이 하는 경우가 모두 있지만, 연출은 항상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좋은 만화의 창작을 위해서는 열심히 데생 연습을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연출에 대한 다각적 고민과 실력 축적이 더욱 핵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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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저는 이분과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안정과 모험중 한가지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영역이라고 봅니다 .
지망생들은 재능, 노력, 꿈처럼 취하기 쉬운단어에 빠지지 말고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해야되는지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외에 캐릭터구축, 글쓰기(준비단계), 배경, 장르에 대한 연구,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가져야 하는 자세 이런 글들이 있는데 나중에 여유되면 또 적어보겠음. 책도 존나 유용하니까 만화 진지하게 준비하는 사람이면 꼭 읽어보세요.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으왕 좋은 자료에, 좋은 말씀!
제가 생각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글이네요. 요새 많은 작가들이 연출에는 신경안쓰고 스토리 전개에만 급급해서 좋은 주제를 통한 작품이 될 수 있음에도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많이 아쉽습니다.
그것보다 저그림 뭔가요 장난아니내
젤리와 비둘기왕이요
감사~좋은그림 알아감 ㅎ